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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책바에 방문한 손님들을 맞이하는 입간판
 골목길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책바에 방문한 손님들을 맞이하는 입간판
ⓒ 안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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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는 세계적인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물 당시 즐겨 찾던 '바(bar)'가 있다. '작은 플로리다'라는 뜻을 가진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다. 그는 이곳에서 한때 다이키리 열세 잔을 연거푸 들이킨 적도 있을 만큼 칵테일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즐겨 앉던 자리엔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쿠바 여행자들에겐 동상 옆자리에 앉아 그가 즐겨 마시던 '파파 헤밍웨이 스페셜'을 마시는 것이 필수 코스이자 하나의 의식이 됐다.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좇아 그의 행위를 따라해 보는 것이 여행을 풍부하게 해준다.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다. 글뿐만 아니라 책에 나온 책 속의 장소를 찾아가 보고, 등장인물들이 먹고 마시고 즐겼던 것들을 따라해 보는 것. 그야말로 책의 내용을 온몸으로 읽어내는 것이 아닐까.

연희동의 어느 좁은 골목 끝자락, 그 끝에서도 한발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책바(chaegbar)'는 바로 그런 곳이다. 책바는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중에서도 특히, '술 한 잔'을 즐겨보길 권한다.

술과 책을 동시에, 책바

책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어둡다. 대신 책을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자리마다 옅은 주황빛 조명을 배치해 뒀다. 소리도 줄였다. 은은한 재즈 선율과 칵테일 쉐이커 소리, 속삭이는 듯한 주문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전부다. 빛과 소리를 최소화해 손님들이 오롯이 술과 책에 빠져들도록 했다. 
 
책바 내부 전경
 책바 내부 전경
ⓒ 안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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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에서 술을 주문하면 비치된 판매용 책을 10%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다.
 책바에서 술을 주문하면 비치된 판매용 책을 10%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다.
ⓒ 안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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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다소 협소한 공간이 마음에 걸릴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중앙 테이블은 물론 맞은편 벽도 책들이 가득 메우고 있고 좌석은 왼쪽 구석에 두 자리가 전부이기 때문.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책바의 공간은 15평 남짓. 책으로 가득한 벽 너머로도 열댓석 정도가 마련돼 있다. 좌석 간 공간도 충분히 널찍한 편이다. 벽 너머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책장을 잘 살펴보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주인장이 '책바 사용설명서'라고 적힌 메뉴판을 건넨다. 첫 장을 넘기면 술의 도수에 따라 '시', '에세이', '소설' 등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해 놓았다. 그 분류 아래에 술의 이름과 책 제목, 술이 소개된 책 속 단락을 발췌해 두어 '메뉴판'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하다.

메뉴판을 봐도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살짝 주인장을 불러보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의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는 칵테일을 추천해 줄 것이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다 보면 자리로 술을 가져다준다. 이제부턴 취할 시간이다(단, 만취는 금물이다).

준비해 온 책을 읽어도 좋고 책바에 비치된 책을 대여해도 좋다. 이곳의 책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김영수, 알랭 드 보통 등 다양한 작가들의 책들이 꽂혀 있어 취향에 맞는 책 한 권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책바에서는 판매용 책도 비치해두고 있는데, 술을 주문하면 10%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다.

술에 대한 글도 쓸 수 있어요
  
윤재성의 <외로움 살해자>와 어울린다며 추천 받은 칵테일 '올드패션드'
 윤재성의 <외로움 살해자>와 어울린다며 추천 받은 칵테일 "올드패션드"
ⓒ 안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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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해 온 윤재성의 <외로움 살해자>를 꺼냈다. 주인장에게 이 책을 읽겠다고 했더니 외로움, 고독이라는 키워드와 어울린다며 함께 곁들일 칵테일로 '올드패션드'를 추천했다. 올드패션드는 라이 위스키 베이스에 핸드메이드 설탕 시럽, 앙고스투라 비터스, 오렌지 필을 섞어 만든 칵테일이다.

40도에 가까운 알코올 도수를 자랑하는 올드패션드를 한 모금 들이키자 몸이 뜨겁게 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도수가 높은 탓에 칵테일 속 책바 로고가 선명한 각얼음을 녹여가며 천천히 마셔야 했는데, 술 한 잔을 책 읽는 속도에 맞춰 오래도록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주인장의 탁월한 추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책 한 권,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사색과 고독을 즐기고 싶은 나홀로족이라면 연희동 어느 좁은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숨은 공간 책바를 방문해보자. 고요에 쌓인 채 입으로는 술 한 잔을, 눈으로는 소설가의 유려한 문장을 음미할 수 있는 행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책바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주문을 마치고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출입문 오른쪽 벽에 붙은 '빌보드 차트'라는 문구가 확 들어온다. '빌보드 차트'는 책바에서 진행하는 백일장이다. 주인장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 짧은 글을 지어 벽에 게시하면 다른 손님들이 가장 마음에 와닿은 글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게시글 중 매달 하나를 선정해 작성자의 필명과 함께 책바 홈페이지와 SNS에 공고한다.

당선자는 무료 음료 한 잔과 함께 책바에서 발행하는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의 작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은 매년 책바가 진행하는 '책바 문학상'에 당선된 작품과 빌보트 차트 당선작들을 엮어 발행하는 책이다. 모집 부문은 단편 소설과 에세이 두 가지이며, 자유 주제로 쓰되 반드시 술이 고유명사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책바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연다. 운영 시간은 늦은 7시부터 자정까지다. 1인 손님이 주를 이루며, 함께 온 손님은 최대 3인까지만 방문 가능하다.
 
출입문 오른쪽 벽에는 책바에서 운영하는 <빌보드 차트> 출품작들이 걸려있다.
 출입문 오른쪽 벽에는 책바에서 운영하는 <빌보드 차트> 출품작들이 걸려있다.
ⓒ 안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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