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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표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는 강완식 어르신. 한 팔엔 ‘실용수학’ 교과서가 안겨 있다.
 수험표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는 강완식 어르신. 한 팔엔 ‘실용수학’ 교과서가 안겨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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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나 꽁보리밥 도시락 싸들고 중학교에 가던 날이면, 누나는 밥을 짓고 교복 칼라에 풀을 먹여 깨끗한 차림으로 보내주곤 했다.

예산중학교(충남 예산군 소재) 18회로 졸업했지만 고등학교는 가지 못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형의 권유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선뜻 학교에 가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돈 벌어 집안살림에 보태는 게 가장 효도인 줄로 알던 시절이었다.

농사일을 돕다 수도방위사령부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에서 학생용품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막노동도 했다. 고향 대흥 금곡리로 돌아온 건 58살이 되던 해였다. 그리고 9년 뒤인 2019년,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 '늦깎이 고등학생'이 됐다.

올해로 70살이 된 1952년생 강완식 어르신은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뒤늦게나마 배움을 향한 한을 풀고 싶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들고 다닌 회색 책가방을 보여주며 교과서를 한아름 품에 안은 얼굴이 19살 소년처럼 빛났다.

그는 "이장을 지낸 2015년에 금곡리가 '취약지역 생활여건개조 프로젝트사업 공모'에 선정돼 사업비 18억5700만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중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 그렇게 큰 사업을 어떻게 따냈냐'며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안 되겠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만학을 결심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전교생 180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음에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교과서를 보며 인터넷강의를 들었고, 총학생회장을 맡아 한 달에 2번씩 이뤄지는 등교수업을 하는 일요일에는 등교시간 50분 전인 8시부터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았다. 급한 사정이 생겨 수업종료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일을 마무리한 날도 아랑곳 않고 달려갈 정도로 열심이었다. 
 
농사일로 고단한 하루에도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강의를 듣는 그가 수업내용을 받아적는 데 열중하고 있다.
 농사일로 고단한 하루에도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강의를 듣는 그가 수업내용을 받아적는 데 열중하고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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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골 교육농장'을 운영하며 밤과 고사리 등을 재배하는 강 어르신은 "농사 지어가며 공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몸도 피곤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그거 해야 되는데' 하고 일할 게 생각나요. 그래도 수업 들을 때 안 졸고 개근상도 받았어요"라며 웃었다.

코로나19가 있기 전인 1학년 땐 일반 학교와 똑같이 버스를 타고 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로 소풍을 다녀오고, 운동회도 열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즐거웠다. 학생들은 그처럼 학업의 기회를 놓쳐 수십 년이 지나서야 학교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만큼 사연도 많았다고 한다. 

"방통고가 대전하고 홍성에만 있어 당진이나 서산, 대천 등 여러 지역에서 많이 와요. 주로 50~60대 여성인데 고등학교를 못 나왔다는 거, 나이 먹고 학교 다닌다고 하는 게 창피하니 남편이나 자식 모르게 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생각해보면 창피할 게 뭐 있어요. 나는 우리 가족들한테 다 얘기해요."

11월 18일, 그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장(홍성고)을 찾았다.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기회였어요. 내가 내일 죽을지 5년 뒤에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왜 기회를 놓쳐요. 그래서 수능을 본 거에요. 소식 듣고 주변에서 '대단하다'며 떡이고 엿이고 선물을 많이 보냈어요. 한 친구는 '이 나이에 대학 간다니 이런 경사가 어딨냐'며 돼지 잡는다고도 했고요. 식구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어요."

들뜬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에 이웃과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이 실려오는 듯했다. 든든한 지원군인 다섯째 남동생은 수능 당일 아침 응원메시지를 보내왔다. 학교 갈 때 좋은 것 입고 다니라며 옷과 가방을 선물했던 동생이다.
 
존경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의 형님, 오늘 대학입학수능시험날이네요. 우리 형님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새벽기도했으니 잘 될 거에요. 대학 합격하면 입학금은 제가 낼게요. 마음 편하게 시험보고 오세요. 파이팅!

70년을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난생 처음 치르는 수능 앞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 OMR답안지에 컴퓨터사인펜으로 정답을 마킹하며 실전처럼 준비를 했는데도 전날 밤에 잠을 설치고 소화가 잘 안 됐어요. 이번에 수능 보는 19살이 2003년생이에요. 나랑 51년 차이가 나는 거죠. 나이 70에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그 친구들은 오죽할까 싶었어요."

작은 에피소드도 있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그를 수험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감독관이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제지했던 것. 시험을 보러 왔다는 말에 '잘 보시라'며 응원을 건넸다고 한다.

"책상에 앉으니 5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이루지 못한 걸 이룰 수 있어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평생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계속 한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는 게 몸은 많이 고됐지만 끝나고 나니 홀가분하고 참 흐뭇했어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강 어르신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기업학과에 진학해 마을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단다. 내년 봄, 하얗게 센 머리를 휘날리며 책가방을 메고 대학 교정에 들어설 70대 신입생의 도전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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