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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오두마을에 유기견이 돌아다니고 있다. 오두마을뿐 아니라 농촌마을에 개를 유기하고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 오두마을 유기견 오두마을에 유기견이 돌아다니고 있다. 오두마을뿐 아니라 농촌마을에 개를 유기하고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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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울 무렵, 나는 첫차 버스를 타려고 마을 앞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버스가 서서히 다녀오는 게 보였고 앞집 박씨 아저씨(가명)는 오늘도 개의 이름을 부르며 뛰놀고 있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당혹스러운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버스가 50m 정도 거리에 왔을 때, 박씨 아저씨네 개가 차도로 뛰쳐나왔다. 개 목걸이는 했지만, 오늘도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개의 뒤를 따라가던 박씨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며 버스 앞을 막아섰다.

"멈춰, 멈춰!"

개에게 하는 소리인지 버스기사에게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장님 저희 개 좀 잡아주세요!" 도망친 개는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1살도 안 된 보더콜리 견종은 무언가 재밌는 놀이라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나도 평소 앞집 개를 자주 봐서 사람을 좋아하는 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멈춰 서서 자세를 낮추고 손을 내밀었다. 보더콜리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 틈에 개 목걸이를 단단히 쥐었다. 개를 주인의 손에 넘겨주고 난 뒤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이 황당한 일에 버스기사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개를 풀어 놓고 다닌대?!" 나도 이미 화가 나 있었지만 일단 박씨 아저씨도 우리 마을 사람이니, 기사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당혹스러운 일을 겪으니 식은땀이 나고, 화도 나고, 동시에 죄송했다. 나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불편한 공기가 감도는 버스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바둑을 복기(服朞)하듯이 마을에서 개들과 있었던 일들은 복기해 봤다.

마당 앞에 '대변'

몇 달 전, 집 안에 혼자 있는데 문 밖에서 '파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험상 고양이들이 뛰는 소리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야생동물이라도 다가왔을까 싶어서 조심히 집 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 커다란 그림자가 한밤중에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보더콜리가 주인과 같이 산책을 하는 모양이었다.

좋지 않은 첫 만남이었다. '남의 집 마당에 함부로 개를 들이면 어떡합니까?'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한 마을에선 최대한 싸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짧은 인사를 한 뒤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와 보니 '변'이 있었다. 크기로 보아 전날 만났던 그 보더콜리가 두고 간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개 주인이면 뒤처리를 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려다가 또 참았다.

보더콜리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봐서 참았던 것도 있고 '그게 저희 집 개가 싼 똥이라는 증거 있습니까?'라고 되물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개똥을 주워다가 유전자 감식을 맡길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목줄이 채워져 있지 않은 보더콜리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한 사람과 개가 떠오른다. 박씨 아저씨 이전에 개 목줄을 안 채우는 이씨(가명)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지금도 내 휴대전화 연락처에 '흰 개 집'으로 저장되어 있다.

이유가 있는 작명이다. 이씨 아저씨를 처음 본 날, 나는 초면에 "아저씨가 기르는 흰 개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남의 집 개들을 임신시키니, 목줄 좀 채워주시라"고 당부를 해야만 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씨 아저씨는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이씨 아저씨는 흰 개뿐만 아니라 여러 품종 견들을 기르는 걸 좋아했다. 나는 댁에 방문할 일이 잦아 갈 때마다 목줄이 채워져 있지 않은 개들을 만나야 했다. 목줄이야기를 넌지시 꺼내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이씨 아저씨 집 안에서 검은 중형견에게 다리를 물렸다. 그럼에도 이씨 아저씨는 목줄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이씨 아저씨 소개로 박씨 아저씨가 보더콜리를 키우고 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개 키우기 초보인 박씨 아저씨가 이씨 아저씨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목줄을 꼭 해야 한다!'고 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목줄 풀린 개들이 마을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녀서, 갓 태어난 강아지들도 젖을 떼고부터 목줄을 차야만 한다.
▲ 오두마을 새끼 강아지 목줄 풀린 개들이 마을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녀서, 갓 태어난 강아지들도 젖을 떼고부터 목줄을 차야만 한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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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을 채우지 않아 내가 개에게 물렸던 것처럼, 목줄을 하지 않아 개가 길가로 뛰어든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개를 기르지 않지만 도망치는 개는 달려서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개를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견주들에겐 얘기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개를 애완동물이라기보다 '가축'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농촌에서 지키는 펫티켓(동물을 기를 때 지켜야 하는 공공예절)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목줄을 채우는 것이다.

내가 가진 상식에 의하면 개는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 잘 물 수 있도록 태어났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건 목줄 등으로 이런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 

다행히 내가 이씨 아저씨네 개에게 물렸을 때, 나는 두꺼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가 물리고 난 뒤, 바로 뿌리치니 상처가 크지 않았었다. 더욱 다행으로 박씨 아저씨네 개가 버스 앞으로 뛰쳐나왔을 때 버스기사님이 침착하게 대처하셨고 개를 포함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어날 만한 일을 방치하고 '천만다행'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

최근 다른 마을에서도 개 물림 사고를 당했단 얘기, 그 개가 도살당했단 얘기를 들었다. 굉장히 안타까운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 안타까움과 무관하게, 사고의 책임은 견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도 사람을 공격하는데 개라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개와 인간이 오랫동안 공존했던 이유는 견주들의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임감이 없다면 개 물림 사고 때문에 상처 입는 피해자들과 목숨을 잃게 되는 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오늘도 개들에게 목줄이 채워져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며 마음을 졸이곤 한다. 원주민인지 귀농귀촌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들은 손에서 놓지 말고 꽉 쥐고 있어야 한다. 상호 간의 배려를 손에서 놓은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목줄부터 채우고 오시라"라는 말밖에 없다.

태그:#함평군, #해보면, #오두마을, #강아지, #펫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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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오두마을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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