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나 부탁이 있어."

뭘까. 궁금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꼭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암투병 중인 지인의 언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녀에게 '쌀주머니'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거였다. 딸의 지인과 그의 언니까지 두 개를 주문했다. 기특한 마음이긴 한데 꼭 필요한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유기농 수제 쌀주머니
▲ 쌀주머니 유기농 수제 쌀주머니
ⓒ 이정숙

관련사진보기

 
막내아들을 뺀 우리가족 네 명은 각자의 쌀주머니가 있다. 추워서 몸을 녹여야 할 때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약보다 먼저 찾는 온열도구다. 내 경우는 한여름을 제외한 모든 날의 애용품이어서 이불 속에 상주하는 물품이다.

가까운 이웃 몇 명과 우리끼리야 그 효력이 입증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고가의 온열기에 비하면 소박하다 못해 허접해 보이는 주머니일 뿐.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처음 쌀주머니에 대해 듣고 느꼈던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딸에게 지인의 언니에 대해 물었다. 추위를 잘 타는지 손발의 체온에 대해 물었지만 정보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용할 사람이 원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일단 딸과 오랜 기간 지내온 지인에게는 필요할 것 같았고 투병 중인 언니에게는 시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쌀주머니를 만나기 4년 전, 평소 장 건강이 안 좋았던 나는 식간이나 식후에 찾아오는 아랫배의 불편함으로 예민해 있었다. 습관적으로 배를 문지르는 손바닥에 냉기가 느껴지곤 했다. 밥을 먹었는데 힘이 나는 게 아니라 기운이 빠지는 바람에 쇼파에 기대는 시간이 많았다. 나름 좋다는 것은 다 해보고 있는데 막막했다. 타고난 체질이려니.

4년 전 유방암 수술 후, 환우들을 위한 쉼터와 집을 오가며 건강관리를 할 때였다. 처음 2주일은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첫 시간에 강조했던 내용은 체온 1도 높이기였다. '체온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체온과 면역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손발이 차갑다 → 배도 차갑다(장이 약하다) → 면역력이 낙제다 → 암에 걸렸다'로 정리되었다.

이론에 의하면, 나는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고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내 어리석음을 확인했다. 우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야만 병과 싸울 수 있는 면역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막연하기만 했던 치유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족욕과 수면양말, 생강, 계피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일에 전념했다. 먹으면 금세 효과가 있는 진통제처럼 변화를 기대했다. 허나 오랫동안 고수해온 몸의 시스템은 몇 가지 식품 추가로 쉽게 바뀔 몸이 아닌 듯했다. 그렇지. 사고가 아닌 다음에야 건강이란 게 하루아침에 무너지거나 지켜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체질이 문제라면 체질이 바뀌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즈음 우연히 지인과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내 사정을 말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쌀주머니를 권했다. 탁월한 기능을 자랑하는 신제품도 아니고 특별함이 전혀 없는 고리타분한 재래식 요법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몇 달이 지났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쌀주머니의 효력과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그날을 넘기지 말고 만들 것을 다짐받았다. 투자해도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니 꼭 시도해보라는 그의 안타까운 심정이 전해왔다.

'그래. 재봉틀이랑 천은 있으니 쌀만 사면 돼.'

재봉틀을 꺼냈다. 쌀주머니는 말 그대로 쌀을 넣어 만들지만 주머니로 상상되는 모양보다 훨씬 크다. 가로세로 약 삼십센티의 천을 반으로 접어 이중박음질을 한 후 현미찹쌀(약 2키로그램)을 넣으면 아기베개 크기의 쌀주머니가 탄생한다. 주머니가 터지지 않도록 여분을 두어야만 데우거나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5분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배에다 올려 놓았다. 좋다고만 표현하면 너무 싱거울 정도로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기대를 하지 않아서 만족도가 높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실한 건, 구들장 아랫목과 전기매트의 따뜻함이 다른 것처럼 내 몸이 그 미미한 차이를 알아차렸다.

며칠이 지났을까. 쌀주머니는 몸을 녹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체온을 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체질들은 안다. 냉골인 발이 양말이나 침대 속에 넣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그런 발도 쌀주머니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따뜻함을 빨아들인다. 장점은 또 있다.

구수한 현미 누룽지냄새가 솔솔, 허브향을 능가하고 두 세 시간은 넉넉히 이불속을 뎁힌다. 촉감에서도 자연친화적이랄까. 몸의 곡선 어디에 놓아도 적당한 무게감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쌀주머니의 매력은 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이 후, 난 쌀주머니 마니아가 되었다. 가성비를 자랑하는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나 온열기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 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게다가 시중에서 쉽게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만들기도 번거롭다는 거였다. 이대로 물러서면 공수표가 되어버릴 게 뻔했다.

쌀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나처럼 몸이 차가워서 고생하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팥주머니가 좋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왜 꼭 현미찹쌀이어야만 하는지를 덧붙여 설명해야 했다. 팥은 냉한 곡식이고 현미찹쌀은 그 자체로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으니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지인의 말을 되새김했다.

쌀주머니가 생활필수품이 된 지 3년이 되었다. 매일 매순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으뜸이. 이제는 내 반려주머니로 승격시켜도 무방할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여행길에 챙겨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니까.

배가 따뜻해지면서 쌀주머니는 점차 종아리나 발밑으로 내려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발 주변을 쌀알들로 포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이완되고 양질의 수면 양말 효과를 경험한다. 한밤중 이불을 걷어차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내가 덥다는 게 말이 돼?'

그동안 20여 개를 지인들과 나누었다. 열심히 써서 지저분해졌다며 리콜이 들어오기도 한다. 햇수를 넘겨서까지 잘 쓰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차다. 물론 쓰다가 안 쓰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그만큼 건강하다는 신호로 생각한다. 딸의 지인에게 전달 될 쌀주머니를 만들었다. 내 기쁨이 1도 올라간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및 블로그에 게제할 예정입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