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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아이는 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시켜 놓고도 술래가 지나갈 때면 괜히 부스럭 소리를 내고 '큭큭' 웃음소리를 흘려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만다.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한다. 꽁꽁 숨어버리고 싶으면서도 빨리 날 좀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놀이의 규칙을 따르면서도 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는 이상한 마음이 놀이 내내 아이를 사로잡는 것 같다.

우리는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걸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공존하기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나의 가슴속에 담고 있는 걸까.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순의 마음에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마는가 보다. 

내 안에도 모순적인 마음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누군가 알아주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 어느 날엔 한 사람도 아는 이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가도 어느 날엔 누가 날 좀 알아봐 주고 말을 걸어줬으면 싶어지는 것. 개인적으로는 삶에 만족하면서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때로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게 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내적 가치와 외적 가치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홍길표 옮김, 문학동네)에는 모순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야콥 폰 쿤텐'은 귀족 가문 태생이지만 자발적으로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삶을 선택한다. 

야콥이 찾아간 벤야멘타 학교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수업도, 선생님도 없는 그곳에서 학생들은 무위(無爲)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개성이란 전혀 없고 인내와 복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성실하게 생활하는 크라우스가 충직한 하인의 표상으로 추앙받는다. 로베르트 발저는 왜 그런 학교와 인물들을 그려냈을까.

야콥은 벤야멘타 학교에서 새로운 규정과 가치관을 습득하며 변모해간다. 출세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대상에 부여된 의미를 거부하면서 새롭게 경험하길 바란다. 금기시되는 반항을 일삼고 도시를 탐색하거나 산책을 즐기며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는 그는 벤야멘타 학교라는 성벽을 넘어서려 시도하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교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친구들을 존중하면서도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질문과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야콥. 그가 겪는 의문과 혼돈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에게도 혼란을 안겨준다.
 
"나는 세상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은밀하게 세상이라 일컫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중요하고 매혹적인지를 느낀다. (…) 내겐 모든 것이, 심지어 가장 하찮은 일조차도 큰일이다. 몇몇 사람들이라도 완벽히 알아나가는 것. 거기에는 한평생이 필요하다." - 130쪽

소설에서 크라우스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 없이 타인을 위해 충성하는 인물이 존경받는 설정은 신선한 자극을 준다. 존재감을 지우고 말없이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일을 우리 사회는 크게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조명과 박수를 받는 사람은 역경을 딛고 성취하는 사람, 경쟁을 이기고 승리하는 영웅적 인물이다. 그래서 주류 사회의 경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가며 고난을 자처하는 이들이 낙오자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경쟁에서 이겨 더 나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기준에서 보면 하인학교의 인물들은 볼품없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책임을 묵묵히 해내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또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세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서 벗어나 동급생들 개개인의 삶에서 개별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야콥의 시선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모두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야콥만은 벤야멘타 원장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영(零)인 존재가 되었지만 생(生)과 주체를 탐색하고자 하는 열망만은 버리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그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영(零)이면서 무한대 같은 존재가 된다. 로베르트 발저는 야콥을 통해 사회적으로 부과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새로 만드는 자유의지를 옹호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 모두가 화가 나 있는, 채찍을 휘두르는 조야한 시대 사상에 지배되는 노예일지도 모른다." - 87쪽
  
성공과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를 따르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태도, 더 나은 것을 바라 욕망의 굴레에서 허덕거리느니 자족적으로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마음,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것의 노예로 사는 우리에겐 어느 것이 더 필요할까.

사회적 성취만을 바라 현재의 의미를 망각하는 게 답은 아니겠지만 수동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미래의 희망을 놓아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테다. 그렇다고 야콥처럼 모든 것을 떨쳐내고 자아를 찾겠다고 떠나는 일도 쉽지 않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한 외적 가치로 인한 압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내 안의 요구와 외적 요구가 충돌하면서 모순은 발생한다. 공존할 수 없는 두 마음이 만드는 괴로움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배우고 경험하고 성찰한다. 반드시 하나의 답을 찾거나 괴로움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속에서 내게 맞는 것, 조금 더 자연스러운 것을 찾으며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런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대변하는 야콥과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정에 충실한 크라우스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좌표를 선택하고 살아감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어느 쪽을 따라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자리를 존중해줌으로 사회라는 틀 안에서 그려볼 수 있는 자유의 폭을 가능한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삶에서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사회적 성공과 인정일까, 개인의 자유와 만족일까. 그러나저러나 고민할 필요 없게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 영(零)의 사회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로베르트 발저 (지은이), 홍길표 (옮긴이), 문학동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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