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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배추 인심이 박한 해는 처음이었다. 텃밭들마다 그 흔했던 배추가 자취를 감춘 김장철도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서도 돈을 주고도 배추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추 한 포기 먹어보라는 집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비싸도 한 포기에 2천원을 넘지 않던 배춧값이 5천원까지 치솟았던 해는 없었다.

배추 김장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기가 쉬웠던 것은 작년에 70포기나 담가놓은 배추 김치가 아직 남아 있기도 했고 새로 입맛을 자극하는 끄댕이 짠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증가했다는 '김포족'(김장 담그기를 포기한 사람들)에 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중천 마을 박명자님이 밭에 남겨 준 끄댕이무가 요긴한 셈이었다. 밭에서 끄댕이무를 뽑으면서 보니 일부러 씨를 촘촘하게 뿌려서 무와 이파리가 부드럽고 연하게 자라게 한 것이었다. 김치로 담가 놓으면 간장게장 뺨치는 밥도둑이 될 것 같았다. 다만 나의 어설픈 솜씨가 관건이었다. 다행인 것은 끄댕이무는 다듬어서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는 간단한 과정뿐이라는 것이었다.
 
박명자 님의 텃밭에서 끄댕이무를 뽑아서 다듬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 박명자 님과 손녀딸이 나의 끄댕이 무들을 1차로 다듬어 주고 있다. 박명자 님의 텃밭에서 끄댕이무를 뽑아서 다듬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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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트렁크 한가득 실어 온 끄댕이무들을 주방 바닥에 던져놓고 보니, 이 김치만 먹으며 1년 쯤 동굴에서 살아도 끄덕이 없을 양이었다. 마음은 벌써 김장 부자였다. 밭에서 1차적인 손질은 해 온 상태라 뿌리만 다듬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 놓았다. 박명자님은 너무 오랜 시간 절이지 말 것을 나에게 누차 강조했다. 시골살이 20 여년간 주워들은 풍월만으로도 우리 집 김치 정도는 직접 담가 먹을 수 있다고 자부한 것은 순전히 내 자의적인 위안이었다.

김치의 깊고 오묘한 맛은 세월과 내공으로 다져져 솜씨로 빛이 난다. 엄동설한에 밭에서 배추를 뽑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김장을 하며 익힌 손맛과 레시피로만 배운 김치의 맛을 어찌 따라 갈 수 있으리. 실패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각오로 나 홀로 끄댕이무 김치 담기에 도전했다. 전염병의 시기라서 함부로 사람들을 부르기도 어렵기도 하지만 시골마을에서는 겨우 이 정도 양으로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한다는 소리를 든는 것이 더 무섭다.

배추는 손이 많이 가는 김치 재료인데 비해서 무를 비롯한 다른 재료들은 일단 다듬어 놓으면 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적당히 소금을 풀어놓은 물에 손질한 끄댕이무들을 절여 놓으니 작년 김장 때처럼 혼자 동동거리던 때와는 달리 마음이 여유로웠다. 끄댕이무는 작고 무청이 많기 때문에 무를 더 썰어서 넣어야 시원한 맛이 난다.
 
사진 상으로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김치 냉장고 한대를 거의 채울 양이다.
▲ 우리 집 주방에 내려놓은 끄댕이무들 사진 상으로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김치 냉장고 한대를 거의 채울 양이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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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끄댕이무는 오래 절이면 아삭한 맛이 떨어진다. 줄기에 숨이 죽으면 씻어서 물기를 뺀다.
▲ 소금물에 절이고 있는 끄댕이무들 이 끄댕이무는 오래 절이면 아삭한 맛이 떨어진다. 줄기에 숨이 죽으면 씻어서 물기를 뺀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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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댕이무 김치 담기의 첫 순서는 큰무를 알타리 무와 같은 크기로 썰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과정은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다. 미지근한 물을 준비해서 소금 알갱이를 풀어놓는다. 처음으로 김장을 하던 날 찬물에 덜컥 소금을 던져놓고는 나무 주걱으로 젓느라고 시간을 다 낭비했던 시행착오를 겪었다.

학교 과학 시간에 소금이 일정량의 물에서는 더 이상 녹지 않고 실온보다 높은 온도에서 잘 녹는다고 배웠던 지식이 생활에서 이렇게 적용되는 것과는 별개로 여겨졌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항상 현실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이런 충돌을 겪는다. 지식을 시험지로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던 학력고사 세대의 비애를 시골 마을에 살면서 많이 느낀다.

끄댕이무들을 절여 놓은 다음에는 김치에 들어갈 각종 양념들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김치의 맛은 잘 발효된 젓갈 맛이 좌우한다. 채소와 발효된 단백질인 젓갈의 물리적 결합으로 생성한 것이 '김치란 무엇인가'의 정답이다. 부여에서는 오래전부터 백마강에서 잡히는 우어와 갈게(작은 민물게의 한 종류, 부여 사람들은 '갈긔'라고 발음한다) 등을 잡아서 소금에 절여 젓갈을 담가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해 왔다.

갈게(작은 민물게의 한 종류)는 백마강 갯벌에 아주 흔했다. 1년 내내 잡히기는 하지만 가을철에 가장 많이 잡았다.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부여 사람들은 액젓을 담글 갈게를 잡으러 백마강 뻘로 가곤 했다. 갈게는 한밤중에 이슬을 받아먹으려고 뻘 속에서 나온다.

강 갯벌에 횃불을 켜놓으면 갈게가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냥 쓸어 담듯이 한 가마니씩 잡아서 젓갈을 담갔다. 튀겨 먹기도 하고 양념을 해서 먹기도 했다. 갈게를 한 항아리 가득 넣고 소금에 재워 놓으면 간장처럼 맑은 액젓이 우러났다. 갈게 액젓은 칼칼하고 감칠맛이 났다. 옛 부여 사람들은 이 갈게 액젓으로 겉절이와 김치를 담가 먹었다. 지금은 더 이상 갈게를 구경할 수 없지만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부여 사람들은 말한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감태 김밥에 무청김치를 을 먹고 있는 연예인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우리 동네 용어로 '끄댕이 김치'였다. 영화 <곡성>의 배우 천우희의 부모님이 직접 심어서 가꾼 끄댕이무들로 담근 김치였다. 천우희 배우가 김치통을 여는 순간 푸른 무청을 깔고 올망졸망 맛깔나게 담겨 있는 끄댕이무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일단 눈으로 보는 식감에도 군침이 돌았다. 끄댕이무는 체면 불구하고 손으로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고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 나는 김치이다. 출연한 배우들이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라고 극찬을 했다. 배우들이 아작아작 씹어 먹는 소리까지 맛있는 김치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니, 나의 끄댕이무 김치 담기 도전은 설익은 자부심에 자신감까지 얹어졌다.

액젓과 새우젓에 단것으로는 개복숭아청을 준비해 놓았다. 쪽파와 양파, 마늘, 고춧 가루도 꺼내다 놓았다. 감칠맛 담당인 멸치와 다시마 육수도 미리 끓여서 식혀놓고 찹쌀가루풀도 쑤어놓는다. 아! 참, 육수와 찹쌀 풀을 미리 끓여서 식혀놓는 과정이 첫 번째 과정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역시 나의 김치 담기는 곁눈질로 배우고 속성으로 익힌 것이라 곳곳에 시행착오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 마을 주부들은 1년 내내 김장 거리를 준비한다. 봄에는 새우를 사다가 젓갈을 미리 담가두기도 하고 매실 청 같은 각종 수제 청들을 마련했다가 김치에 넣는다. 시골에 살다보니 나도 남들을 따라서 매실청이며 개복숭아청을 담가 놓기는 했다. 수제로 멸치와 새우젓까지 직접 담그는 집들도 있다.
 
 이만큼을 혼자서  해놓고 흐뭇했던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도시에 사는 동생에게 두 통을 보냈더니 고맙다고 화장품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 커다란 다라이 두 개에 가득 찬 끄댕이무 김치  이만큼을 혼자서 해놓고 흐뭇했던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도시에 사는 동생에게 두 통을 보냈더니 고맙다고 화장품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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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로 담그는 젓갈은 콤콤하면서도 입맛이 당기는 맛이 난다. 한번 맛을 보면 시중에서 사는 젓갈 맛은 시시해진다. 매년 수제로 젓갈을 담가 보려는 시도를 했다가 식구도 없는데 너무 큰 살림을 벌이는 것 같아 망설이다 시기를 놓치곤 했다. 대신 동네에서 담근 멸치젓갈을 한 바가지 얻어온 것이 있었다. 역시 나의 시골살이의 원동력은 동네 사람들이다.

'무수 짠지는 고춧가루를 많이 안 치는겨'라고 박명자님이 꿀팁 한 가지를 전수해 주었다. 그래야 고유의 색깔도 살고 무청 원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혼자 쪼물락거리며 김치를 담글 때는 이런 꿀팁들을 잘 챙겨야 한다.

끄댕이무들이 절여지면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놓고 너무 길어서 먹기 불편한 무청줄기들은 잘라 놓기도 한다. 그 다음은 기본적인 김치 양념에 가풍에 따라 수제로 준비한 젓갈과 과일청들을 섞어 놓은 양념에 끄댕이무들을 버무린다. 맛을 보면서 양념을 가감하면 김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담그는 김장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맛을 완성하기 위해 간을 맞추려면 여러 사람들의 입맛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패스하고 얼렁뚱땅 끄댕이무 김치를 담가보았다. 처음으로 혼자 끄댕무 김장담기를 해놓고 자족감에 젖는 맛도 괜찮았다. 끄댕이무들의 알싸한 맛이 감칠맛으로 익어갈 때쯤 친구들을 불러 밥 한 끼 먹자고 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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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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