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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전의 해평습지의 모습. 드넓은 모래톱이 곳곳에 존재하는 모래의 강이었다. 이곳을 찾은 겨울철새들들로 이곳은 장관을 이루었다. 강 주변에는 먹이터로서의 드넓은 논이 존재한다.
 4대강사업 전의 해평습지의 모습. 드넓은 모래톱이 곳곳에 존재하는 모래의 강이었다. 이곳을 찾은 겨울철새들들로 이곳은 장관을 이루었다. 강 주변에는 먹이터로서의 드넓은 논이 존재한다.
ⓒ 다음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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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해평습지는 낙동강 하구를 제외하면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였습니다. 낙동강 안에는 철새들이 쉴 넓은 모래톱이 곳곳에 존재하고, 강 주변에는 드넓은 먹이터로서의 논이 강 양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평습지는 특히 흑두루미 도래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매년 10월 말이 되면 해평습지에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뚜루루 뚜루루'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면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그 큰 날개를 활짝 편 채 활공을 합니다. 그런 후 하늘로부터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은 그대로 장관입니다.

해평습지에는 흑두루미 외에도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찾습니다. 수가 많지는 않지만 재두루미도 찾고, 쇠기러기, 청둥오리가 오고, 고니들도 찾아오는 그야말로 겨울 철새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겨울 해질 무렵 이곳을 찾으면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철새들의 소리는 여느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은 장엄미가 느껴졌습니다. 그 소리는 이곳이 바로 철새들의 낙원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4대강사업 전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큰 날개를 펴고 활공을 하면서 장관을 이룬 채 내려앉는다.
 4대강사업 전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큰 날개를 펴고 활공을 하면서 장관을 이룬 채 내려앉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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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습지의 수난

그런 해평습지가 수난을 당한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가 자행한 4대강 사업 때문이었습니다. 4대강 사업은 유명한 철새도래지로서의 해평습지의 존재도 무시한 채 강을 그냥 밀어버렸습니다. 철새들이 오건 말건 상관이 없었습니다. 마치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의 성스러운 숲이 망가지듯 해평습지는 무참히 망가졌습니다.

드넓던 모래톱은 수십수백 대의 중장비에 의해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 모습을 당시 방한한 세계적인 하천학자인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자연에 대한 강간이라 했습니다. 낙동강의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시절이었습니다.
 
해평습지의 수난. "자연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고 있는 낙동강 해평습지의 모습.
 해평습지의 수난. "자연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고 있는 낙동강 해평습지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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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습지는 사라지고 '해평 호수'만이 남은 모습이다
 해평습지는 사라지고 "해평 호수"만이 남은 모습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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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깊이 파였습니다. 그런 후 완공된 칠곡보에 물을 채우자 이전의 해평습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거대한 물길 가운데 하중도만이 덩그러니 남아 그곳이 해평습지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해평습지가 아닌 '해평 호수'만이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이 심각한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한 것은 흑두루미였습니다. 10월 말 이곳을 찾은 흑두루미들은 당황 했습니다. 오랜 세월 그들의 유전자에 박혔을 이동 통로에 심각한 변화가 생겨버린 것이니 당연합니다. 창공에서 선회하면서 방황하던 흑두루미들은 내릴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흑두루미들이 급히 찾은 곳이 바로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였습니다.

감천 합수부마저 외면하는 흑두루미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에 감천에서 내려온 모래가 낙동강으로 쌓여 제법 거대한 모래톱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모래톱을 대안으로 선택한 흑두루미들은 그곳을 매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교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곳을 찾는 흑두루미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흑두루미 수는 줄어들기 시작해 급기야 작년과 올해는 한 마리도 찾지 않은 것입니다.
 
낙동강 감천 합수부에 모래톱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낙동강 감천 합수부에 모래톱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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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해평습지를 찾았지만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버린 것입니다. 지난 11월 4일 해평습지 상공 위로 80마리의 흑두루미가 지나쳐 내려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동통로로서 '낙동강 루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다만 "낙동강에 내려서 쉬어가지 않고 바로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흑두루미에게 체력적으로 무리가 많이 가게 마련이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다"란 것이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의 설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중간 기착지로서의 낙동강을 포기하고 그냥 일본으로 바로 날아가버리는 선택을 했을까요?
   
▲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의 비행 …낙동강 해평습지를 외면하다 왜?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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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모래)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흑두루미들이 천적인 삵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안심하고 도래하기 위해서는 사주섬이 있어야 한다."

이기섭 박사의 진단입니다. 모래톱이 있지만 섬 형태로 된 모래톱이 있어야 이들이 천적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쉬었다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평습지에 부는 반가운 바람

교란당한 감천 합수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래 칠곡보의 수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1미터 정도 수위밖에 내리지 않았지만 감천 합수부 모래톱에는 약간의 변화는 찾아왔습니다. 사주섬 형태의 모래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칠곡보 수문 개방은 더 넓게 드러난 감천 합수부 모래톱. 모래섬 형태도 보인다.
 칠곡보 수문 개방은 더 넓게 드러난 감천 합수부 모래톱. 모래섬 형태도 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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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칠곡보가 수위를 더 내릴 수 있다면 더 넓은 모래톱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흑두루미들에게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감천 합수부가 인식이 된다면 흑두루미들은 다시 도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하면 중간 기착지를 넘어 이곳에서 월동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봅니다. 왜냐하면 강 옆으로 아직 농경지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흑두루미 먹이터로서의 논이 아직 많이 존재하고 있고, 구미시에서 먹이주기 활동을 계속해주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이곳이 흑두루미들의 월동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해보는 것입니다.

환경부에서도 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앞으로 칠곡보 수문을 더 열어서 강 수위를 더 내릴 수 있다면 감천 합수부의 모래톱은 더 넓어질 것이고 그 공간은 곧 흑두루미들을 불러모을 것입니다.
 
감천 합수부를 찾은 흑두루미. 모래섬 형태의 모래톱에 내려앉아 쉬고 있다
 감천 합수부를 찾은 흑두루미. 모래섬 형태의 모래톱에 내려앉아 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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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두루미 한 가족이 이곳에서 월동을 하고 있습니다. 재두루미가 월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흑두루미도 월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이곳이 흑두루미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새들을 위해서 칠곡보 수문을 더 열어야

관건은 역시 칠곡보입니다. 칠곡보가 사라지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빨리 안된다면 겨울철 칠곡보의 수문을 열어 수위라도 더 많이 떨어트릴 수 있다면 새들에겐 더 없이 좋은 공간으로서의 해평습지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행히 겨울철에는 양수장 가동도 없고 취수장도 해발 19.1미터까지는 수위를 내려도 괜찮도록 취수장도 개선을 했으니 칠곡보 관리수위 해발 25.5미터에서 5미터 정도를 수위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해평습지는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것입니다.
 
흑두루미들의 활공. 뚜루루 뚜루루 반가운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흑두루미들의 활공. 뚜루루 뚜루루 반가운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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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와서 다시 해평습지에 철새들의 반가운 울음소리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봅니다. 특히 '뚜루루 뚜루루' 하며 내려앉을 흑두루미들의 반가운 울음소리가 해평습지에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희망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십수년 동안 낙동강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태그:#낙동강, #4대강사업, #해평습지, #흑두루미, #감천 합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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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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