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 됩니다.[기자말]
사랑의 발견
- 김안녕

낮과 밤
이불 속으로 눈이 내린다
귓속엔 자벌레들이 혀 짧은 소쩍새 털 많은 사내가 살아가려운 것투성이

아이비 이파리는 심장 모양
사람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는데

마스크를 쓰고부터는
웃음 비웃음을 다 가릴 수 있고
연습하지 않았는데 연기가 늘고

유일하게 늘지 않는 것은 시와 사랑이다
안 풀리는 4번 문제를 종일 풀고 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시를 망친다

마음을 먹는 대신
미움을 먹으려 하지만
마음과 미움은 한 끗 차이이지만

땡감이 비에 떨어지고 무화과 열매가 익고
잠글 수 없는 냄새처럼 열병이 퍼지고
모르는 순간 내게로 건너온 참혹은
물혹이 아니라서 칼로 도려낼 수도 불로 지질 수도 없다

씹자 붙인 껌처럼
사랑만큼 근력이 필요한 종목도 없다

- <사랑의 근력>, 걷는사람, 2021년, 12~13쪽


눈으로 읽었을 때는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들이 목소리로 읽으니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마다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르겠지만, '유일하게 늘지 않은 것은 시와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안 풀리는 4번 문제를 종일 풀고 있고, 그 때문에 사랑해야 할 시간을 다 보내고 있고, 그래서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삶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는 화자의 고백은 더더욱 현실적입니다.

미움과 마음도 한 끗 차이라는 화자의 고백도 현실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나도 손쉽게 미움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사랑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제대로 몰랐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천 마리의 양 속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쓴 늑대 한 마리, 늑대가 있다고 의심하기 전까지는 양들이 다 잡아먹혀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김안녕 시인의 시집
 김안녕 시인의 시집
ⓒ 걷는사람

관련사진보기

 
애정과 애증이 한 끗 차이이듯 미움과 마음도 비슷한 속성을 가졌습니다. 특히 애증은 사랑과 애정에서 출발합니다. 애정이 없다면 애증도 발생할 수 없죠.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도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설정됐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큐피드가 쏜 화살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화살촉이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삶의 노고는 사랑을 밀어내는 근육을 만들어내고 천천히 큐피드의 화살을 밀어납니다. 오래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선 큐피드의 화살을 꼭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반대쪽의 근육도 필요합니다.

한 사람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기 위해선,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요, 저 정성과 노력은 어떤 속성을 지녀야만 하는 것일까요.

너무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엄청난 공약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저 하늘의 달과 별을 따 주겠다던 약속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기에 낭만적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동반한 사랑은 낭만도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 의지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황한 말과 맹목으로 쌓은 사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연기는 필연적으로 실수를 동반합니다. 실수가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추가되는 실수가 그것을 증명하기까지 합니다.

깨끗한 사과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겠지만, 만약 '너도 그렇지 않았냐'고 언성을 높이거나 다른 사건을 내세워 덮으려고 한다면, 그는 분명 사랑이 아니라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때 그는, 애증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런 사랑이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애정의 눈이 무조건 그의 말과 행동을 긍정하려는 시선은 아니어야만 합니다. 사랑은 따끔한 지적도 필요로 합니다.

따끔하게 지적된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 잘못된 길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진심'을 가진 자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사랑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오늘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