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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좋던 지난 10월 26일,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산안마을에 다녀왔다.

지난 11월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산안마을에 다녀왔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한번 더 산안마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안마을은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며 양계를 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사육 조건을 위해 양계장도 직접 고민하고, 독특하게 설계한다. 언뜻 보기에도 넉넉한 공간에서 닭들은 여유로이 거닐며 모이를 쪼았다. 양계장 입구마다 사육 중인 닭들의 숫자도 꼼꼼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가 봤던 양계장에는 '암컷 105마리, 수컷 7마리'가 적혀 있었다. 이론상으로 암탉은 쉬지 않고 매일 1개의 알을 낳을 수 있다. 1마리의 암컷이 1년에 최대 365개의 알을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계란을 어떻게 모으는지 묻자 양계장 뒤편에서 알을 낳도록 훈련을 시킨다고 했다. '닭들도 훈련이 가능하구나!' 조금 더 어둡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닭들이 그곳을 찾아 알을 낳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로 들어오는 병아리들은 따로 공급을 받는 건가요?"

태생부터 다른, 이른바 '종자가 좋은' 병아리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안농장의 달걀과 닭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달걀은 친환경 로컬푸드 매장에서 구할 수 있고, 닭고기를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들은 '토종닭보다도 더 튼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종자부터 다른 병아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그러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아니에요. 어느 양계장이나 똑같은 병아리를 받고 있어요. 친환경적으로 키우고 있는 거랍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 대화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고, 수많은 고민과 성찰로 이어졌다. 

하물며 닭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버려지고, 아이를 향한 어른들의 끔찍한 학대가 이제는 별다른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 중 일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폭력적인 사회 문화에 그대로 노출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별 거리낌 없이 성인들의 범죄를 흉내내고, 어두운 사회로 그대로 편입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실상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며칠 전 기사가 떠오른다. '새터민 아들, 22살 청년은 왜 알밤사탕을 훔쳤을까'이다. 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하여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새터민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 청년은, 아버지의 빚에 대한 볼모로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었던 어머니와 9년간 헤어져 있다가 어느 정도 빚을 갚고서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청년은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오랜 기간 헤어졌던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올봄에 가출했다. 가출 후 노숙생활을 한 이 청년은 무인편의점에서 2천 원짜리 알밤사탕을 훔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였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이 청년이 훔친 음식은 약 15만 원.

주거가 일정하지 않아 검거 후 바로 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피해자인 한 편의점주는 훔친 식료품값 3만8천 원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더해 200만 원의 배상을 청구했다. 

범죄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따져 묻고 싶다.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이 사회는 밖에서 들어온 아이들마저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중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참담하고 끔찍한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하물며 닭도, 똑같은 병아리를 받아도 잘 키우기만 하면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마당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입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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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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