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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도 인천에서 했다.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작 인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애관극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정확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사실을 불과 5년 전에 알 정도였다. 몇몇 분들에게 이를 여쭤보니 알고 계신 분들이 적었고 애관극장과 함께 자주 갔던 현대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등등 사라진 옛 극장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본 칼럼을 통해?사라진 인천의 옛 극장들이 인천시민 개인에게는 추억이었으며, 인천에는 평생 친구였고 우리나라에는 역사였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기자말]
1984년에 세워진 희망백화점은 1980~1990년대 인천을 대표하는 백화점이었다.
 1984년에 세워진 희망백화점은 1980~1990년대 인천을 대표하는 백화점이었다.
ⓒ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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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백화점 3층에 164석으로 희망극장이 개관됐다. 1985년 5월 18일자 <매일경제> 기사.
  희망백화점 3층에 164석으로 희망극장이 개관됐다. 1985년 5월 18일자 <매일경제> 기사.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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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희망종합상사가 설립됐고 1980년에 미도파슈퍼 간석점이 개점했다. 그 후 증축해 1984년 희망백화점이 세워졌다. 인천 최초의 백화점이자 1980~1990년대 인천을 대표하는 백화점이었다.

위는 1985년 희망극장 개관을 알리는 기사다. 희망백화점 3층에 164석으로 희망극장이 개관됐다. 특이하게도 어린이 전용극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공연, 영화상영과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그러나 1985년 11월 희망백화점 신문광고를 살펴보면 희망극장은 별관 5층으로 이전했고 <창밖의 여자>, <인자문살수> 같은 성인영화도 동시상영했다.

최영준의 모노드라마 '약장수'도 공연했다. 최영준은 인천에서 '약장수', '팔불출' 등을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렸고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도 제작해 직접 변사로 나섰다. 그때부터 무성영화 변사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대 마지막 변사인 셈이다. 

1988년 심형래가 나오는 <슈퍼 홍길동>이 희망극장뿐만 아니라 주안극장, 자유극장에서도 상영되었다. 심형래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우뢰매 시리즈 등 수십 편의 어린이 영화에 출연했다. 
 
지금은 흥행감독으로 알려진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은 <키드갑>이었다. 이 영화는 개봉1주일 만에 막을 내렸고, 관객 2만명에 그치고 말았다. 출처 1993년 7월 15일 <동아일보> 기사.
 지금은 흥행감독으로 알려진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은 <키드갑>이었다. 이 영화는 개봉1주일 만에 막을 내렸고, 관객 2만명에 그치고 말았다. 출처 1993년 7월 15일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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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영화포스터들
 2003년 영화포스터들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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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사도>,<황산벌>의 흥행감독 이준익의 데뷔작이 <키드캅>이었다. 개그맨들이 나왔던 기존 어린이 영화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삼성물산에서 투자받은 본격적인 어린이 영화였다. 그러나 개봉 1주일 만에 막을 내렸고 관객 2만 명에 그치고 말았다. 그 후 이런 어린이 영화는 다시 시도되지 않았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가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남기남 감독은 '한국의 에드 우드'라 불리는 독특한 감독이다. 그보다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을 찍어대는 감독은 없었다. 1989년 심형래가 등장했던 '영구와 땡칠이'는 비공식적으로 전국 180만 관객을 모으기도 했었다. 

<아키라>는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암울하고 반항적인 미래를 표현하고 있으며 무정부주의 세계관을 지향하는 작품인데 <폭풍소년>이란 엉뚱한 제목으로 1991년 희망극장에서 개봉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당시 일본영화는 극영화, 애니메이션 모두 상영금지였는데 수입사가 이를 홍콩영화라고 속여서 불법으로 상영한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문화부는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고 수입사는 영화업 등록이 취소당했다. 그 후 영화는 2017년 <아키라>라는 원래 제목으로 정식 상영됐다. 15세 관람가였다. 

희망백화점은 동인천 인천백화점, 부평의 동아시티백화점, 현대백화점을 제치고 인천 최대 매출의 백화점이었다. 1992년에 백화점 매출신장률이 서울 제외 수도권 1위를 차지할 정도였지만 1997년 관교동에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몰락하게 됐다. 결국 2004년에 부도가 나고 올리브백화점으로 변경했다. 이때 희망극장도 폐관됐다. 그 후 올리브백화점은 2016년 올리브아울렛으로 바뀌었다. 

글·사진 윤기형 영화감독
 
 현재 올리브아울렛
  현재 올리브아울렛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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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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