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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시연(가명)씨가 돌아가셨다. 그의 60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고작 1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그의 삶은 이전보다는 평안했을까.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봄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설신고조차 하지 않아 사람이 일상을 보내는 데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썩은 내 진동하는 은행처럼 귀찮은 존재로 대우받던 곳. 그곳에서 시연씨는 살아왔다.

사랑으로 삶을 밝혀야 할 시설장은 돈을 밝혔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시연씨와 시설의 거주인들은 돈보다도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선택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짓밟혀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꾹꾹 눌러 걷고, 말없이 빤히 사람을 쳐다보던 그는 내 아버질 닮았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 내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듯 웃는 모습이 내 아버질 닮았다. 야위고 하얀 손, 쭈글쭈글 한 그 손, 가는 다리, 좁은 어깨가 아버질 닮았다.

그와 옷을 사러 갔다. 긴 시간을 살아왔던 시설에서 세상으로 함께 나온 그의 물건은 작은 가방 하나에 모두 담길 정도로 적었다. 봄의 끄트머리에서 함께 여름을 준비했다. 속옷과 편한 옷들을 고르고, 외출할 때 입을 셔츠와 바지를 샀다. 동주민센터에 가서 신분증을 다시 발급받고, 은행에 함께 가서 은행 업무를 봤다.

은행에서 통장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시연씨가 천천히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커피믹스 한 봉지를 꺼내면서, 정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길 시작했다. "뭐라구요? 죄송해요. 제가 못 알아들었어요.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 시연씨가 한 걸음 한 걸음을 꾹꾹 눌러 걷듯이,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말을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곤 그 하얗고 야윈 손으로 커피믹스를 내게 건냈다.

건강이 아주 좋지 않던 시연씨를 오래 만날 순 없었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싫다며 물을 마시는 일조차 힘겹고, 눕기조차 힘겨워 소파가 헤질 때까지 앉아만 계시다 결국 병원으로 가셨던 아버지와는 달리, 시연씨는 병원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021년 어느 날 아침,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시연씨가 돌아가실 것 같은데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연락 가능한 가족들을 더 알고 있냐고. 얼마 뒤 다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시연씨는 돌아가셨고, 가족들이 오지 않으면 가족들의 인수거부에 따른 무연고자 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연고자 처리의 경우 망인을 추모하는 별도의 예식 없이 말 그대로 '처리'가 된다는 것이 가장 슬픈 점이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시연씨를 마지막 여행마저 혼자 떠나게 하기는 싫었다. 이곳저곳 연락을 하고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시연씨의 장례식에는 가족들이 함께했다. 생을 혼자 마감하는 고립사는 현재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비슷한 통계인 무연고자 시신 처리 현황으로 갈음하는 분위기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작년 무연고 사망자는 2880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에는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536명, 2020년 2880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분명 우리 주변엔 지금도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 추모받지 못한 죽음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평생을 지옥 속에 몰아넣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11월 23일 아침, 시연씨가 다시금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은 쓰신 정한별님은 사회복지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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