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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모습.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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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생각하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바람이었다. 이번 겨울방학부터는 외국에서 한 달 살기가 다시 가능할 줄 알았다. 지난해 여기 지면을 빌려 여행기를 연재했지만,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 난 이탈리아에서 한 달 동안 머물고 있었다. 이내 공항이 닫혀 귀국이 닷새만 늦었어도 영락없이 그곳에 갇힐 뻔했다. 

코로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과거 '사스'나 '에볼라'처럼 잠깐 스치듯 지나갈 줄 알았는데, 꼬박 두 해가 지난 지금 어쩌면 영원히 마스크를 벗지 못할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든다.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위한 2년짜리 적금 만기가 곧 도래하는데, 만기일을 얼마나 더 늘려야 하나 싶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근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카톡이 울린다. 언뜻 최근 우리 학교를 제외하곤 주변의 모든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온 성싶다. 안내 문자가 도착하면 담임교사는 곧장 반 아이 중에 확진자가 발생한 학교에 형제나 자매가 다니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방역지침에 따라 곧장 귀가해서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다시 등교할 수 있다.

카톡이 울린 뒤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니 벌써 빈자리가 여럿 보인다. 묻기도 전에 확진자가 나온 학교에 동생이 다니는 경우라며 답해준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이틀간 등교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빈자리가 얼추 세 명 중 한 명꼴인 교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도를 나가기도 뭣하다. 

얼마 전 전면 등교가 시작되고, 정부가 '위드 코로나' 방침을 밝힌 뒤 학교마다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어느 정도 예상된 바여서 그다지 놀랍지 않을뿐더러 학교도 그다지 당황한 기색은 없다. 방역지침에 따라 조처하면 될뿐더러 솔직히 학교만큼 충실히 이행하는 곳도 드물다는 생각에서다. 

갑자기 귀가 조처된 아이들, 집에만 머물러 있을까
 
지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보건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추위를 견디며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보건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추위를 견디며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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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학교의 조처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단순하다. 언뜻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앞서 말한 대로, 방역지침은 동거자나 가족이 확진자가 발생한 학교에 다니는 등 밀접 접촉이 의심되는 경우 인지한 즉시 집에 보내도록 규정돼 있다. 사실상 학교는 해당 학생을 파악해 귀가 조처만 하면 그걸로 끝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느닷없이 귀가 조처된 아이들이 가만히 집에만 머물러 있을까. 반드시 그래야 하지만, 부모가 일터에 나가고 없는 텅 빈 집이라면 그들은 '완전한 자유'다. 귀가 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없는 데다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도 없으니 휴일과 다를 바 없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형제나 자매 덕분(?)에 일찍 하교하는 친구를 하냥 부러워하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의 등 뒤에다 "곧장 피시방 가지 마라"며 농을 거는 모습에서 치기 어린 시샘이 읽힌다. 그들 중에 집에 순순히 머무는 경우는 반의반도 안 될 거라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 오전에 일찌감치 귀가한 아이를 퇴근길에 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태연하게 문구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방역지침에 따라 동생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걸 간과한 거다. 이런 경우 귀가 조처가 능사가 아니란 이야기다.

다행히도 해당 학교에서 더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고, 그의 동생도 검사 결과 음성이어서 이틀 뒤 그는 다시 학교에 나왔다. 교과별로 과제물이 부과돼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어서 결석 처리만 되지 않을 뿐 수업 결손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이마다 수업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나마 다 큰 고등학생의 경우라면 과제든 원격수업이든 별 어려움 없이 눙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만약 초등학생이 학교로부터 느닷없이 귀가 조처를 당한다면 여간 난감한 문제가 아닐 테다. 더욱이 부모가 맞벌이인 가정이라면 사실상 방치될 수밖에 없다. 당장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인근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는 일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다. 

동생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한 아이의 사연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17일 오후,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서울 송파구 잠실고등학교 교실을 소독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17일 오후,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서울 송파구 잠실고등학교 교실을 소독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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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는 얼마 전 확진자가 나온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학교로부터 귀가 조처를 당하자 온 가족이 초비상이 걸렸다는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가 서둘러 조퇴한 뒤 동생을 건사했는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다음 날엔 아버지가 휴가를 썼다고 한다. 오빠로서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재학생 중 밀접 접촉자를 파악해 집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학교는 과연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초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생들조차 방치될 우려가 큰 현실에서 학교 울타리 안만 안전하면 된다고 여기는 걸까. 단언컨대, 학교 밖이 안전하지 않으면 학교 안도 안전할 수 없다. 

목도하고 있듯, 알파에서 어느새 오미크론까지 전 세계적으로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러다 오메가까지 끌어다 쓰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쓸데없는 궁금증까지 인다. 국경을 걸어 잠그고 추가 접종에 목매달기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라는 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는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나도 안전할 수 없다는 선언의 다름 아니다. 

학교는 밀접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밀집 공간이면서, 동시에 방역지침 준수에 철저한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모순된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넉넉한 여유 공간을 활용하고 운용의 묘를 잘만 살린다면, 가정과 학교 밖 방치되고 관리되지 않는 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고 본다. 이 와중에 학교는 기꺼이 '돌봄 시설'을 자처해야 옳다.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일시적 관찰실'이 설치돼 있다. 아이가 일과 중에 고열과 기침 등 의심 증상을 보일 때 일시 격리하여 추후 상황을 지켜보도록 만든 공간이다. 대화 및 이동을 금지하는 학생 행동 수칙과 학부모 연락 및 보건 교사와의 실시간 정보 공유 등을 명시한 교직원 매뉴얼 등이 꼼꼼하게 마련된 상태다.

이와 비슷한 공간을 확보하면 어떨까. 지역과 학교에 따라 사정은 다를 테지만, 근래 학생 수가 크게 줄어 학교마다 빈 교실이 적지 않다. 그곳을 '대기실'로 활용한다면, 맞벌이 부모의 걱정과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 아이를 길거리에서 마주칠 일도 없게 될 테다. 

지금 학교에 절실한 기능은 '입시 교육'이 아니라 '돌봄'

물론, 교사의 업무 과중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도 기존의 수업과 생활지도에다 급식소와 교실의 방역 관리까지 하루해가 짧다. '일시적 관찰실'에다 '대기실'까지 생기게 되면, 요일별 순번제 같은 방식 등 가욋일이 늘어나게 뻔하다. 학교가 병원은 아니잖으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예산이 투입되고 학교에 대한 책임 부담만 줄여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등굣길에 방역을 관리하고 일과 중에 보건 교사의 업무를 지원하는 도우미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학교마다 한두 명씩 더 배치해 아이들을 하교 때까지 돌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 

한편, 감염 확산에 대한 학교의 책임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문책과 징계에 대한 공포다. 이게 어디 학교 업무뿐이랴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이 없다는 생각에 애초 일을 떠맡지 않으려는 게 교사들의 일반적인 생리다. 마음은 있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길 주저하는 것도 그래서다. 

인터넷만 보면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어 온갖 비난을 받는 처지이지만, 기꺼이 감염병의 고통을 나누려는 선한 교사들이 주변엔 많다. 지금 방역의 최전선에서 '몸을 갈아 넣고 있는' 의료인들에 어찌 견주랴마는, 정부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준비가 돼 있다. 요컨대, 지금 학교에 절실한 기능은 '입시 교육'이 아니라 '돌봄'이다. 

태그:#위드 코로나, #학교 방역지침, #일시적 관찰실, #돌봄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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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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