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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민 50명이 참여하는 비대면 공동집필 프로젝트 ‘리-라이트’는 비대면문화연구소 ‘시흥 Arts-LAB’을 통해 발굴한 신규 문화예술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 청년, 지역예술가, 이주노동자, 지역상인 등 각양각층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난파된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에세이, 사진, 일러스트 등과 접목해 하나의 공동집필서로 완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리-라이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한 인터뷰입니다. [기자말]
두 번째 인터뷰 타자는 어린 시절 배우를 꿈꿨다는 오선명씨. 그때에 비해 나이가 들었고, 자녀도 있지만, 그렇다고 꿈을 접은 건 아니다. 지난해 시흥시가 추진하는 '영유아를 위한 공연 창작개발 심화과정'에 참여해 배우로 거듭났다. 올해는 '시흥 영유아를 위한 공연 온라인 창작워크숍 결과공유회'에서 작품도 시연했다. 

배우의 꿈을 이룬 것에 바로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도 아니다. '선명한girl'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올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이 영상을 본 EBS 다큐멘터리 팀에서 <디지털, 치매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며 연락을 해왔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멀리 떨어져 사는 어머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촬영을 수락했다고 한다.
 
치매 걸린 어머니와의 소소한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오선명씨
 치매 걸린 어머니와의 소소한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오선명씨
ⓒ 오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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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촬영 과정이 마냥 신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는 낯선 환경에 놓이는 부담감과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거듭 토로해왔다.

"촬영 때문에 엄마가 서울에 와서 회상 치료와 VR 훈련을 받았거든요. 다 끝나고 내려가는 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나 봐요. 뭘 많이 하긴 했는데 기억이 뚜렷하지 않으니까 굉장히 스트레스로 다가갔던 모양이에요. 갑자기 '다음엔 안 올끼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엄마하고 나하고 병원에서 훈련도 받고, 의사선생님도 만나고, 그걸 다 찍었어. 촬영한 게 곧 테레비에 다 나올 거야. 그러면 내가 나중에 엄마 없어도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설명을 하니까 그걸 들으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뭔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가 그랬나?' 하시는 거예요.

"엄마 이야기를 들으니까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뭘 했는지 자꾸 회상을 시켜주고, 환자가 두려워하는 걸 내가 한 번 걸러주면 훨씬 나아지잖아요. 나 같아도 어디 가는데 기억이 안 나고, 그러면 집에만 있을 것 같아요.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어머니를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되잖아요. 바깥 활동을 해야 외부 세계와도 연결되고 고립되지 않으니까요."

거듭 고충을 털어 놓는 어머니의 언어로만 그 고립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혼자만의 세계에 본인을 가두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선생님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에 엄마한테 갔을 때, 내가 엄마랑 같은 방에서 잤거든요. 아침에 일찍 깼는데 엄마가 내가 옆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전에는 내 옆에 와서 다리도 주무르고, '네가 몇 살이고?' 이렇게 질문도 계속했거든요. 그걸 보니까 혼자만의 세계에 고립되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슬픈 거예요. 치매 환자가 이렇게 고립되는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걸 그냥 지켜보면 안 되겠더라고요. 엄마를 더 자주 깨워서 우리가 옆에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계속 깨우쳐줘야겠더라고요."

짐작도 할 수 없는 고독의 심연 속에 사는 어머니를 깨우기 위해서 선생님은 매일 전화하고, 최대한 많이 찾아가고, 사랑을 많이 표현한다고 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녀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녀
ⓒ 오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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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서울에 왔다가 내려가실 때도 엄마가 울컥해하는 거예요. 가까이 사는 사촌 언니가 있어도 자식하고는 다르니까요. 자식은 다 커서 나가고, 본인은 점점 더 약해지니까 슬프고 외로운가 봐요. 전화하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네가 지금 내 옆에 있다' 하기도 하시고, '여 가짜가 있는데 진짜가 왔네! 전화해줘서 고맙다.' 그러세요. 저는 그때마다 끊임없이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그래요. 그리고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요."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치매환자를 보는 시각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기억력을 잃어가기 때문에 판단능력도 약해지고, 감각도 퇴화될 것이라 생각한 것은 모두 그릇된 편견이었다.

"치매환자라고 하면 옷도 안 사줘도 되고, 용돈도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줘도 다 잊어버리니까요. 자식들 입장에서는 마음 써서 사다준 걸 기억해주고, 단 며칠이라도 더 고마워해줬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요.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엄마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서울에 온 엄마를 보니까 옷이 너무 낡은 거예요. 영상은 한 번 찍으면 계속 남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그걸 보면 마음이 어떻겠어요. 영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추석 때 내려가서 옷을 여러 벌 샀어요.

쨍한 분홍색에 소매 끝에 꽃무늬가 있는 옷을 사서 입혀 드렸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치매환자라고 다 잊어버리는 게 아니더라고요. 엄마도 똑같은 여자인 거예요. 새 옷을 입으니까 거울을 안 봐도 벌써 기분이 좋은 거야. 옷을 몇 번이나 만지고, 소매도 접어보고 하면서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누가 샀노? 네가 샀노? 너무 예쁘다. 마음에 쏙 든다!' 하시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엄마 방에 커튼도 해드렸어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안방에 있는 분홍색 커튼을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누워서 커튼을 볼 때마다 '참 예쁘다. 이건 얼마주면 하노?' 하고 계속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해드렸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이 사랑과 관심 때문에 엄마가 행복해하는 걸 보니까 마음이 너무 기쁜 거예요. 어떤 병에 걸린 환자일지라도 분명 거부하고 부인하는 시기가 있을 거예요. 치매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족들이 빨리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환자를 세심한 배려와 존중으로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어머니는 늙고, 기억을 잃어가고 있기에 자식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온몸에 나이테처럼 새겨온 고결한 삶의 가치관은 자식들에게 여전히 울림을 준다. 그게 바로 선생님이 어머니를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자식 키우다 보면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잖아요. 엄마랑 통화하다가 애들이 밉다고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어요. 엄마가 그 말을 듣더니 '야야, 그러면 안 된다.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사랑해줘야 돼.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식은 부모가 곁에 없어도, 이 세상을 떠나도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엄마의 인생을 다 담고 있는 말 같더라고요. 우리가 치매환자라고 하면 사리분간 못한다고 생각해버리잖아요. 근데 그게 아닌 거예요. 아무리 치매 걸려 기억을 잃어도 본인이 평생 동안 지켜온 가치관은 안 사라져요. 온몸에 스며들어있어요."

유튜브를 하면서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으면서 선생님은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론이고, 여전히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어머니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기억은 잃어도 평생 지켜온 가치관은 남는다는 오선명씨
 기억은 잃어도 평생 지켜온 가치관은 남는다는 오선명씨
ⓒ 오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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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어머니를 닮기 싫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가치관을 봤고, 흔들림 없이 나를 품어준 큰 사랑도 느꼈잖아요. 그게 지금의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준 원천이었더라고요. 내가 어떤 기준을 갖고 인생을 반듯하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치매가 걸려도 여전히 내 자식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제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EBS 촬영을 하면서 어머니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선생님은 앞으로도 어머니의 딸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유튜브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고, 매일 그림 그리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림을 통해서도 세상에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단다. 

어머니의 큰 사랑을 이어받아 멋진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선생님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 이 인터뷰는 2021년 10월 2일에 진행되었으며, 2021년 12월 1일자로 시흥시에서 발간한 <리-라이트> 책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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