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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 검찰 구형 하시죠. 
검사 : 무죄를 구형합니다. 
재판장 : 변호인 최후변론 하시죠. 
변호인 : 검사 구형대로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 : 2021. 12. 15.(수) 오전 10시 선고하겠습니다. 

지난 1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201호 법정에서 진행된 '반공법위반' 재판은 검찰의 무죄구형과 변호인의 맞장구로 마무리됐다. 보통 형사재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검찰의 엄벌구형, 이에 맞선 변호인의 열띤 최후변론은, 이 날은 볼 수 없었다. 

이 날 이루어진 증거조사 절차에서도 공판검사와 변호인은 형사재판에서 보기 드문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검사 : 공동피고인들의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에 보면 고문을 당했다는 자필기재 내용이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이기에 이 자료도 증거로 제출합니다.
변호인 :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까지 정리해 제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사 사건에서 우리가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에게 기대하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너무나 아쉬운 건, 당사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어 이 광경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피고인들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최후진술을 남겼을까? 아마도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을 것이다.  
 
군산지원 201호 법정 앞(2021년 12월 1일)
 군산지원 201호 법정 앞(2021년 12월 1일)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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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법상 불고지죄로 처벌받은 피고인 임도수, 양재천

지금은 고인이 된 피고인 임도수, 양재천은 1969년 2월 15일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52년 전 군산지원에서 선고된 판결문(69고2184)에는 "피고인 임도수, 양재천에게 각 징역 8월과 자격정지 1년에 각 처한다"는 주문이 적혀 있다.   

판결문상 범죄사실은 '고아무개씨가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활동을 찬양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 사실을 즉시 수사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적용된 '불고지죄'는 침묵의 자유 또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러 차례 위헌성이 제기된 바 있다.   

고아무개씨에게 적용된 '찬양고무죄' 또한 1990년 헌법재판소가 그 해석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어린이에게 노래를 잘한다고 말을 하는 경우에도 찬양고무죄 구성요건에 해당될 여지가 있기에 제한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아야 했을까? 고아무개씨가 북괴의 활동을 찬양했다는 범죄사실은 아래와 같다. 
 
"1963. 12. 중순 일자미상 15:00경 옥구군 미면 선유도리 번지미상 자가에서 상피고인 박OO에 대하여 "이북에 갔드니 고기와 쌀밥은 물론 치약과 치솔을 주는 등 좋은 대우를 해주고 공장을 보니 모두 기계화되어 있으며 나올 때는 열렬한 환영을 해주며 광목과 시계까지 주드라고 말하며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활동을 찬양하고"

"1966. 5. 중순 일자미상 20:00경 전남 얼마도 해상 상피고인 임도수 소유 선박 내에서 위 임도수 선원 임OO, 같은 장OO 등에 대하여 이북에 갔을 때 목욕과 이발을 시켜주고 쌀밥에 고기반찬을 주면서 극진히 대우해주고 차를 타고 공장과 농촌을 구경했는데 기계화 되어 있으며 농사도 기계로 편하게 하드라. 올 때는 굉장한 환영을 해 주드라고 말하며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활동을 찬양하였으며"

"1968. 5. 20. 16:00경 옥구군 미면 선유도리 번지미상 홍OO 경영 주점에서 상피고인 양OO, 같은 양재천 등과 음주하면서 이 사람들에 대하여 이북에 갔을 때 자동차로 해주가까지 가서 큰 여관에서 사과와 밥을 여자들이 갔다주며 환대하고 차를 타고 공장을 구경했는데 모두 기계로 되어 있으며 철물공장에서는 기계를 많이 만들고 영화를 보여주는데 김일성이가 비료공장을 시찰하는 것도 보았으며 나올 때는 굉장히 환송을 해주드라고 말하여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활동을 찬양하고"

공판검사는 이 날 무죄구형의 이유로, 피고인들의 듣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고아무개씨의 발언이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선 유족들이 올해 초 신청한 재심에 대해 군산지원 노유경 판사는 지난 9월 30일, 그 당시 체포가 위법했고, 폭행,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통해 확인된다며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두 번의 공판절차를 거쳐 이제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검사 구형대로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 있을까?

12월 15일 오전 10시 군산지원 201호 법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정규 변호사는 본문에 나오는 사건 재심청구인의 대리인, 고 임재천·양도수씨의 변호인으로 재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검찰무죄구형, #불고지죄, #찬양고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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