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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9묘역에서 유격훈련도중 사망한 ROTC 출신 고 최승균 소위의 진혼식이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9묘역에서 유격훈련도중 사망한 ROTC 출신 고 최승균 소위의 진혼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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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는 동생이 축구 경기를 시청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죽었다고 했어요. 37년만에야 진실이 밝혀졌는데, 구타와 가혹행위로 동생을 죽인 가해자들은 이제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네요. 그렇다면 책임자가 사과라도 한 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구도 처벌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유가족 입장에선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 11월 27일 경기도 안산에서 만난 최정은씨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떨렸다. 최씨의 동생 고 최승균 소위(사망 당시 23세)는 지난 1984년 3월 학군(ROTC) 22기로 임관 후 육군 전투병과학교에 입교해 유격훈련을 받던 중 같은 해 4월 7일 갑자기 사망했다. 군은 매화장보고서에서 최 소위가 '54Km 행군 및 주간 체력단련, 야간 담력훈련 등을 마치고, 과로로 쓰러져 졸도 후송 도중 사망'이라고 적시했다.

군의관은 시체검안서에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기재했다. 청장년 급사증후군은 20~30대 남성이 수면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부검 상 특이 소견이 없을 때 쓰는 사인이다. 망자의 시신 전체에서 심각한 멍 자국이 발견되었지만, 군은 '평소 몸이 약한 최 소위가 힘든 유격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훈련을 같이 받았던 동기생들이 최 소위가 숨지기 전 가혹한 구타가 있었다는 사실을 유족에게 털어 놓았지만, 서슬 퍼런 군부정권 아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국립묘지에 묻힌 것만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은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뒤늦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최 소위와 함께 훈련을 받았던 한 동기생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사건과 관련한 기록들을 들여다보았고, 40여 명의 동기생들로부터 '유격대 교관들이 최 소위에게 집중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자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상무대에서 유격장까지 행군하는 과정에서 발목을 다친 최 소위가 선착순 구보에 낙오하자 교관들의 타킷이 되었다는 것이다. 동기생들의 진술에 따르면, 유격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최 소위는 이미 탈진상태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교관들은 이런 최 소위 목에 줄을 맨 채 개처럼 끌고 다녔고 나무에 묶어 놓거나 '선녀탕'이라고 불렀던 오물통 속에서 낮은 포복을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몇 몇 동기생들은 밤에도 교관들의 텐트로 끌려간 최 소위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끔찍한 폭력을 당하던 최 소위가 쓰러진 후에도 즉각적인 후송조치 없이 한동안 방치되었고, 당시 헌병대(군사경찰)가 고인의 시신에서 멍과 가해 흔적을 확인하고도 사인이 과로사로 기록된 것을 묵인했다는 정황도 확인했다.

지난 5월말 위원회는 최 소위의 사인을 "유격훈련 과정에서 교관들의 구타가혹행위로 인한 탈수와 그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 영양 결핍, 전신 폭행에 의한 손상 등에 의한 '쇼크사' 또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12월 23일까지 동생의 묘비 앞에서 사과하라"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9묘역에서 열린 ROTC 출신 고 최승균 소위의 진혼식에서 누나 최정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9묘역에서 열린 ROTC 출신 고 최승균 소위의 진혼식에서 누나 최정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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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벌벌 떨려서 위원회 결정문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어요. 구타가 심했다는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거꾸로 매달려 고문당하고 목줄을 맨 채로 끌려 다니고, 동생이 이런 일들을 당했을 줄은 차마 상상도 못했어요."

최씨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위원회가 가해자로 지목된 유격대 교관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동생이 23살이라는 꽃 같은 나이에 군대에서 죽었어요. 죽은 것도 억울하고, 이제야 진실이 밝혀진 것도 원통한데 가해자들은 조사도 못한다니요. 37년이 지나 처벌하는 것도 어렵다는데 그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면서 살아왔을까요."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최 소위의 동기생들은 가혹행위와 구타를 주도했던 교관들을 특정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위원회 조사에 협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십 명의 목격자가 있지만 가해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울러 위원회는 안전관리 책임자인 유격대장, 교육생들의 건강관리를 책임져야 할 군의관, 생활지도를 담당했던 구대장들 역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지속적인 구타·가혹행위, 극도의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와 탈진으로 최 소위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사실상 묵시적으로 공모한 혐의까지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위원회 결정이 나온 후에 적어도 가해자들이 떳떳이 얼굴 들고 다니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 무작정 ROTC중앙회 앞으로 편지를 썼어요. 다행히 그곳에서 '어떻게 이런 사건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지난 10월 2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ROTC중앙회 주최로 최 소위의 넋을 달래는 진혼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과 고인의 동기생들이 참석했다. ROTC중앙회는 진혼식에 앞서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육군 교육사령관, 육군 전투병과학교장 앞으로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군 관계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이 나온 후 최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4차례 글을 올렸고, 해당 청원은 모두 육군본부로 이첩되었다. 육군은 최씨에게 보낸 회신에서 "망인의 사망사건은 1984년에 발생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소시효가 도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해자들 역시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일 것으로 판단되며, 군수사기관의 경우 일반인에 대한 수사가 제한됨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

"이제라도 위원회의 노력으로 동생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군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위원회에서 진상규명 결정을 한 이후 국방부장관에게 사망원인에 대한 변경 요청을 했어요. 국방부에서 이를 수용해서 사인을 변경 조치했다는 서류를 위원회로 보냈는데, 이 문서를 가족들에게도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죠. 국방부 담당자는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느냐'면서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 필요하면 정보공개 신청을 해서 받아가라고 하면서요."

최씨가 요구하는 것은 3가지다. 책임 있는 기관의 사과표명, 동생 사망당시 군 관계자가 약속했던 중위 추서, 사망원인에 대한 국방부의 변경조치 문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라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들에 대한 사법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책임 있는 당국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 육군보병학교장을 지목해 오는 12월 23일까지 동생의 묘비 앞에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사인이 규명된 올해를 넘기지 말고 사과하라는 것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에 따라 사망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면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이다. 그렇지 않다면 동생의 사례에서 보듯 위원회의 활동이 그저 국가기관 간에 공문이 오가는 행정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은 37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살인사건, 과실치사 사건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지금 군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물론이고 지휘 책임이 있는 기관장의 사과와 처벌까지 뒤따랐을 사안 아닌가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지 못한다고 하면 국가를 대표해서 누군가는 진심어린 사과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동생은 대한민국 군인이었습니다. 동생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37년 전에는 대한민국이 없었습니까. 도대체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요?"

최씨는 지난 11월 29일 군의 책임 있는 답변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을 또다시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올렸다. 청원을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해당 청원을 국방부로 이송했다는 답변을 최씨에게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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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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