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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때 잠깐 아이엘츠(IELTS) 시험을 준비했었다. 영연방국에서 주로 인정하는 공인 영어 시험이다. 여기에 쓰기(Writing)영역은 논술영역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주로 어떤 주제를 주고 찬반을 논하라 하거나, 문제에 대한 원인 및 해결을 서술하라는 식이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주제 중 하나는 그래피티(Graffiti)였다. 그래피티는 과연 예술(art)인가 범죄(vandalism)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도의 지문이었던 것 같다. 전에 생각해 본 적 없어 신선한 주제였다. 준비된 시청각 자료를 보고 그래피티라는 하위문화에 대해 조금 알고 이 영역이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미술계의 조류도 이때 처음 알았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자
▲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Thrower)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자
ⓒ Ban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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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라는 그래피티 작가는 올 초 재밌는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스꽝스럽게 재채기하는 할머니의 찰나를 그린 에취(Achoo)라는 이름의 벽화가 한 주택가 담벼락에 그려져 4억(약 30만 파운드) 남짓하던 집이 72억(약 500만 파운드)에 육박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낙서 같은 그림 담벼락에 그렸을 뿐인데 집값이 이렇게나 뛰다니 꽤 잘나가는 작가인가 했더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집 담벼락에 뱅크시 같은 유명한 그래피티 화가가 와서 밤새 몰래 그림을 그려 놓고 간다면 고가의 예술 작품을 그렸다고 기뻐해야 할 일인가 낙서 테러를 해 놓고 갔다고 분노해야 할 일인가. 공동주택인 아파트 벽면에 유명 그래피티 작가의 작품이 그려지는 게 과연 집값을 높이는 일인가.

세월이 흐르면 보수와 도색이 필요한 법인데 고가의 가치를 지닌 작품을 페인트로 덮어버려도 되는 건가. 그림의 주인은 누구이며 누구의 허락을 받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림을 보러 오려는 인파덕에 온 동네가 시끄러워지는 건 아닌가. 비싼 그림이라 별도의 처벌 없이 방치하면 너도나도 예술 하겠다고 우리동네 와서 낙서해 놓고 가는 것은 아닌가.

답도 영양가도 없는 질문이 물음표 살인마처럼 꼬리를 문다. 결국 뱅크시가 아니라면 달리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들이다. 허가되지 않은 장소 또는 사유지에 낙서를 하는 행위는 분명 불법이다. 허락없이 공공시설을 훼손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파괴적인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뱅크시가 전하는 메시지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불법행위를 모두가 열광하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어졌다. 지난 11일,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더서울라이티움 제 1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오브 뱅크시' 전(2021. 8. 20 ~ 2022. 2. 6)을 관람하고 왔다. 

뱅크시만의 통쾌한 도전과 풍자 

성수에서 열리는 뱅크시 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경찰모자를 쓰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사뭇 진지하게 관람객을 검문한다.

"전시 관람 전 잠시 사전조사 하겠습니다. 칼, 화기 류, 수류탄, 핵폭탄은 소지 불가입니다. 혹시 신발 밑창에 요정이나 천사를 숨겨놓진 않으셨나요? 확실합니까?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작품을 보다 보면 뱅크시는 양극단의 대척점에 있는 2개의 사물 또는 주제를 절묘하게 버무려버리는 풍자의 대가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전 영국수상 처칠의 이미지에 형광색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얹어 펑크록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에 데이빗 보위가 음악 컨셉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 '지기 스타더스트' 분장을 입히는 식이다. 살상 무기를 실은 아파치 헬기 프로펠러에 꽃분홍색 리본을 다는가 하면, 꿈과 희망의 왕국 디즈니랜드를 디지멀랜드(Dismal land 음울한 땅) 테마파크로 바꿔 개장하기도 했다.

뱅크시가 작품의 주제로 삼은 화두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카톨릭교회의 아동학대 스캔들에 대한 비판, 반전과 난민수 용 이슈, 인간의 무분별한 육식 소비에 희생당하는 동물권, 고전에 대한 도전, 상업적 미술계에 대한 비판 등, 세상에 대한 온갖 불평 불만의 향연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대신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정교하게 프린트한 파운드화 위조지폐는 작가의 반체제적 정서와 무정부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과 풍자가 위험해 보인다 느끼면서도 한편 통쾌하다. 스탠실 기법으로 그려진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그 위에 더해진 의미심장한 메시지와 재치 있는 제목에 매혹돼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 설득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불평하지만 선동하지는 않는다. '맘에 안 드니 다 엎어버리자'는 뱅크시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2020년 코로나가 최 절정기로 유행하던 시기 그는 히어로 캐릭터 대신 적십자 마스크를 쓴 간호사 인형을 가지고 해맑게 노는 아이를 그렸다. Covid-19시기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는 고생하는 의료인이고 그들이 이 시대의 영웅이라 말한다.

예술가는 시대정신을 지녀야 할 의무가 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는 장난처럼 보일지 언정 좌시하지는 않겠다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비록 다윗이 골리앗에 던지는 무망한 돌멩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무력감에 침묵하거나 못 본 척하는 것은 틀리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궤적은 그래피티라는 논쟁적 행위를 엄연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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