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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산아제한 정책 포스터
 1960-70년대 산아제한 정책 포스터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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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 사회로 달려가는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도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까지는 내 일이 아니야'하면서 마음 편히 있을까.

초등교사인 나는 힘겨운 시대에 아이들이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래서 적어도 어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동안에는, 먹고사는 어른의 걱정은 뒤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이미 아이들은 많은 사실을 직시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힘들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

태어난 지 10년 조금 지난 학생의 입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힘들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한창 생의 기쁨을 즐길 나이가 아닌가. 아이들은 나름 심각했다. 교사의 예상보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꽤 중차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디서 정보를 습득하고 어떻게 가치 판단을 하는 걸까. 나는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여러분은 아직 돈 벌 나이도 아닌데 어른 같은 걱정을 하네요."
"엄마 아빠가 부동산 뉴스 나올 때마다 그러시거든요. 저러니까 결혼을 안 하지. 애를 안 낳지."


쓴웃음이 나왔다. 4학년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문제 인식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나면 아이가 마주해야 할 가혹한 현실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저출산에 관심을 갖는 현상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상 최악의 저출산 국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닌가. 본인도 궁금한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지. 그리고 기왕 태어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은 '발전의 모순' 같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4학년 사회 교과 3단원에는 변화한 마을의 모습이 나온다. 버스 도착 시간 알림 기계가 정류장에 세워지고,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갖춰진 한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한국이 발전한 것이다. 발전은 좋은 것이 아닌가. 그만큼 세상이 좋아졌다는 의미일 텐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아이들은 여기에서 혼란을 느낀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기에도
 
오징어게임 포스터
 오징어게임 포스터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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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발전한 세상의 어딘가가 뒤틀려 있고, 사람들이 그 뒤틀림을 감내하기 힘들어한다는 막연한 추측은 있는데 언어로 명확히 잡아내지는 못 한다. 대신 힌트는 있다. 얼마 전 <오징어 게임> 시청을 주제로 계기 교육 시간을 가졌다. 최근 학교에서 19금 드라마와 관련한 놀이나 불건전한 언행이 자주 나오니, 앞으로는 나이대에 맞는 영상물을 시청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 함께 <오징어 게임> 전편을 시청한 아이가 있어서 물어보았다. 정말로 궁금해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인데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어?"
"진짜 게임 같았어요. 456억 벌려고 경기하고 그런 게."


돈과 생존. <오징어 게임>을 끝까지 시청한 학생이 주목한 단어다. 풍요와 발전은 둘째 치고, 살아남기가 기본인 세계. 사회 교과서에서 그린 차분하고 평온한 발전 모습과는 괴리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 정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돈의 위력은 막강하고 즉각적이다. 하다못해 초등학생이 즐겨하는 모바일 게임에서도 '현질'(과금)한 사람이 세다. 시간 투자와 능숙한 기술로도 넘을 수 없는 뚜렷한 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정당화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고도자본주의의 속성을 내재화한다.
     
셈이 빠르고 돈의 흐름에 관심 많은 아이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다. 당장 나부터 집에 있는 두 자녀에게 어떤 걸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잘 살기를 바라지만, 당장 십수 년 뒤에 독립할 시기가 오면 주택을 마련해줄 만한 자본이 없다. 수도권이라면 전세도 어렵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 같지는 않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절반 넘게 손을 든다. 결혼과 출산의 장단점을 충분히 토론해 본 후 나온 결과이므로 충동적인 응답은 아니다. 자라면서 사고체계와 가치관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우리 반의 현재 결혼 희망자는 40%다. 결혼 희망자가 이 정도이니 출산율은 더 낮을 것이다. 확실한 건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기에도 지금 여기의 현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십 년 뒤 사회 교과서에서는 2020년대의 모습을 뭐라고 표현할까. 저출산이라는 단어로 부족해서 초저출산, 혼인 기피 같은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빌려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반 학급당 학생수도 지금처럼 21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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