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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민 50명이 참여하는 비대면 공동집필 프로젝트 ‘리-라이트’는 비대면문화연구소 ‘시흥 Arts-LAB’을 통해 발굴한 신규 문화예술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 청년, 지역예술가, 이주노동자, 지역상인 등 각양각층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난파된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에세이, 사진, 일러스트 등과 접목해 하나의 공동집필서로 완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리-라이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한 인터뷰입니다. [기자말]
코로나19 이후 노인들은 모일 공간을 잃었고,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은 집에서는 비대면 프로그램도 무용지물이었다. 전자기기 사용이 자유로운 청년들은 시니어에 비하면, 비대면 생활에 강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할까? 아니다.

떨어지는 취업률과 가족 갈등, 젊다는 이유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열정을 불태워야 하는 이들에게 출구란 없다. 그래서 고달프고 힘든 청년과 예술가가 함께 만나 서로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예술을 통해서.

지난 10월 1일, '2080 예술로 청춘 대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청년과 시니어가 예술로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 (주)아무놀이터의 한세나 대표와 신지혜, 최치현 복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좌측부터 최치현, 신지혜, 한세나
 좌측부터 최치현, 신지혜, 한세나
ⓒ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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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분들은 세 분이 어떤 분일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각자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신지혜: "이 프로젝트에서 캘리그래피(calligraphy)를 담당하고 있는 신지혜입니다."
최치현: "저는 목감종합사회복지관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어요."  
한세나: "저는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주)아무놀이터의 한세나입니다."
 
- 세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한세나: "저와 지혜는 살사 동호회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10년 넘게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고요. 마음이 잘 맞아서 이번 프로젝트도 함께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무작정 이곳의 문을 두드렸는데요. 복지관에서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좋은 공간을 쓰게 됐고, 멋진 복지사님과 선배 시민도 만날 수 있게 됐죠."
 
-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취약 계층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치현씨께서는 그 심각성을 더 강하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모임마저도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 소외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실상은 어떤가요?
최치현: "코로나 이전에는 취약계층 분들이라고 해도 경로당이나 복지관에서 모이고, 사회활동 할 수 있는 기회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면 중단된 상태고요. 이런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일반인보다는 취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댁에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터넷이 있어도 휴대전화 활용을 못하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또 본인이 감염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나로 인해 혹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크셔서 외부 활동도 일반인보다 위축되는 경향이 있죠. 그런 요인들이 우울감을 심화시키고 있어 문제죠. 심리적인 상태는 신체적인 건강 상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아요."
 
- 인터넷 접속 환경이 원활하지 않다거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르신 분들이 겪는 어려움은 어떻게 해소하고 계세요?
한세나: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가능한 분들을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리고요. 혹시라도 못 들어오시는 분들은 소외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댁에 인터넷이 설치된 분들과 여러 번에 걸쳐 리허설을 했고요. 익숙해진 분들을 리더로 지정해서 참여 못 하신 분들을 챙겨드리자고 이야기했어요."
 
서로가 찍어준 사진으로 완성한 ‘청춘사진관’
 서로가 찍어준 사진으로 완성한 ‘청춘사진관’
ⓒ 한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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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0 예술로 청춘대화'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신가요?
한세나: "캘리그래피 작가와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표현하면서 글로 써보는 시간도 가졌고요. '청춘사진관'이라고 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어요. 선배 시민은 필름 카메라로, 청년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요. 최대한 편한 도구로 서로를 찍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시선을 공유하고자 했고요. 완성된 작품은 이렇게 복지관에 장식해서 전시하고 있답니다."
 
전시 중인 사진들
 전시 중인 사진들
ⓒ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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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참여자 분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한세나: "처음에는 무슨 말씀을 드려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먼저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돼?' 하는 정도로 반응이 달라진 게 놀랍죠. 작은 성공을 많이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또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최치현: "우리가 하는 일이 이분들이 남들과 어울려 사실 수 있고, 건강하게 소통하실 수 있도록 개개인의 역량이 커지도록 돕는 일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우선은 작은 변화에 의미를 두는 편이에요.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좋았던 게 참여자분들이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었어요. 서로 식사를 초대할 수도 있고,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게 굉장히 고무적이죠.

일례로 여기 참여하시는 분 중에 굉장히 무력감에 빠진 분도 계셨어요. 본인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셔서 늘 모자를 쓰셨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모자를 벗고 나오시더라고요.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으신 거 같아서 정말 뿌듯했죠."
 
전시회 준비를 같이 하는 선배 시민
 전시회 준비를 같이 하는 선배 시민
ⓒ 한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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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부분도 많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한세나: "2주 전만 해도 저희가 기버(Giver)로서의 역할이 더 컸어요. 아무래도 젊은 저희가 더 동작이 민첩하고, 인지적으로 빠르게 반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시 작업을 같이 하면서 선배 시민 분들의 태도가 많이 열린 것을 느꼈어요. 예를 들어 종이를 자를 때도 그전에는 제가 잘라드렸다면, '이것 좀 잘라주실래요?' 하고 부탁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이게 제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었거든요. 우리가 그분들에게 무언가 알려드리고 도와드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같이 참여하실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거요. 그것이 청춘대화가 시작된 이유니까요.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돌보게 하는 것. 저희 청년들도 돌봄 받고 싶으니까요."
 
-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근본적으로는 노인 세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세나: "대부분의 기획자나 예술가가 시니어 분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기버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쉬운데 나이만 많을 뿐 동등하게 작업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 그렇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는 우리 자체로 존귀하고 존중받고 싶으니까요. 내가 어르신의 나이가 됐을 때,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런 마음가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좌측부터 신지혜, 최치현, 한세나
  좌측부터 신지혜, 최치현, 한세나
ⓒ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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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시행착오도 있었고,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열정을 다한 만큼 프로젝트가 끝난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하시겠어요.
 
한세나: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던 게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잖아요. 그래서 참여한 분들이 지금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어요. 왜냐하면 이분들의 삶 속에서 어떤 한 그림이 이만큼 채워졌는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훅 빠져나가는 거거든요.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이별하는 게 좋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또 그분들이 기버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들에 대해서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시니어는 무조건 도움을 줘야하고, 받을 것이 없다고 바라보는 우리의 가혹하고도 단호한 시선에 대하여. 신체의 기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갑절이 더 필요한 이유다.

청년에 비해 무엇이든 더 많은 시간이 걸려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은 인정하되,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삶의 연륜과 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앞서 나가는 발걸음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리 후배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반대로 청년에게도 빠르게 앞서나가라고 강요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당당하게 걸을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야말로 그 길을 지나온 우리가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조그마한 발걸음을 내딛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그들에게도 따스한 응원을 보내보자고 다짐하며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2021년 10월 1일에 진행되었으며, 2021년 12월 1일자로 시흥시에서 발간한 <리-라이트> 책자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시흥시, #리-라이트,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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