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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조경태 의원님. 반갑습니다. 저는 경기도에 사는 스물아홉 살 청년입니다. 2014년 4월 29일에 입대한 육군 예비역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군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소총수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저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경기도 포천에서 약 2년 간 군 생활을 했습니다. 소복이 쌓여있는 부대 뒤 설산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눈 오는 밤 풍경을 만끽할 틈도 없이 연병장으로 제설을 하러 나가야 해서 괴로웠지만요.

제가 갑자기 수년 전 전역한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 11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의원님께서 하신 발언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장학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지요.

의원께서는 이 러닝(e-learning)을 통해 군인들이 학점을 이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으셨습니다. "군대에 가 있는 60만 군인들이 다 이런 식으로 취지를 이용해하겠다면 군대가 당나라 군대가 된다"고 발언하셨고, "국방부가 책임지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기술을 연마시키는 것이 맞다. 군대를 대학 개념으로써 교육 기관처럼 운용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 군 기강이 이상해질 수 있다"라고도 하셨습니다.

학점 이수가 군 기강 해이? 당혹스러웠다

말씀대로라면 저도 당나라 군대에 다녀온 모양입니다. 저는 상병 시절, 다른 장병들과 함께 인근 학교에 토익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제 동기 중에는 밤에 '연등(취침 시간인 오후 10시 이후 허가를 받아 점등하는 것)'을 하고 영어나 한국사를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저희가 상관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자기 계발을 잘하는 사람이 군생활도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상관의 말을 차치하고도, 우리는 병영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던 우리들은 늘 '어쩌다 여기에 끌려왔냐'라는 식으로 자조하곤 했습니다. 바깥세상으로부터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월급은 10만 원대에 그쳐서, 야전 훈련에 필요한 소시지나 맛다시, 참치 통조림 등 식량들을 사다 보면 금방 동나곤 했지요(2015년도 상병 월급은 15만 4800원이었고 2021년 기준 상병 월급은 54만 9200원입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을 때여서 그런지, 책도 많이 읽었고 시디플레이어로 음악도 열심히 들었어요.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여러 사유가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눈이 내리는 주말에는 데미안 라이스 같은 가수의 앨범을 열심히 들었었지요. 저한테는 그 개인 정비 시간이 소중한 추억이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군 기강을 해치는 일탈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조경태 의원님의 발언에는 현세대 장병들의 군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러닝 수강 등의 활동은 모두 평일 일과가 끝난 자기 정비 시간, 혹은 주말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기 주도적 군생활을 권장하는 병영 문화와도 궤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와 동일 선상에 놓기는 어렵겠으나, 모병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초반 군 경력 인증(Verification Military Exercise & Training)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얻은 학점을 통해 학위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군인을 도구적 존재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전역 이후의 삶과의 연속성을 고려한 것이지요.

군인은 기계도, 소모재도 아닌 청년일 뿐이다

의원님께서는 '자갈치시장 지게꾼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서민을 대변하겠다고 말씀하셨더군요. 저는 의원님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 결국 징집된 군인들도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하고 미숙한 청년들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D.P.>에는 다양한 탈영병들의 사연이 등장합니다. 특히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홀로 보필하다가 군대에 왔지만, 할머니 걱정에 부대 밖으로 뛰쳐나갔던 탈영병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지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강철 부대'가 아니라 평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24시간 동안 주특기와 군에서 필요한 기술만을 숙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군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안보를 지상 과제로 삼는 보수 정당의 정치인으로서 응당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건강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군인은 기계도, 소모재도 아니니까요.

조경태 의원님. 제가 의원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5월 '쇠고기 청문회' 당시 활약하셨던 모습입니다. 농림부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에 '조포스'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 역시 기억납니다. 망국적 지역감정에 맞서 부산에서 다선 의원이 된 것, 그리고 지역감정의 무용론을 입증한 것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절의 날카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당나라 군대 발언'이 대표적인 순간입니다. 여가 시간의 군인에게 대학 학점을 들을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는 군대가 어떻게 '군인다운 군인'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까. 차분하게 미래를 보아주십시오. 의원님께서는 과연 군인들을 위해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태그:#조경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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