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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계절이다. 중3 딸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중학교 마지막 시험이라고 제법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하필 기침감기가 오래가는 바람에 학교를 못 간 날이 많아 더 걱정이었다. 저러다 마지막 시험을 망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 자존감에 상처가 나면 어쩌나. 시험 때마다 매번 들이는 노력에 비해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울상인 아이에게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위로했지만 부모 마음이라고 편할 수는 없었다.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딸은 3일에 걸친 시험이 끝날 때마다 가채점한 결과를 톡으로 보내왔다. 나쁘지 않았다. 이틀째까지 좋은 소식을 전하길래, 그날 퇴근길에 딸이 좋아하는 '연어초밥'을 사들고 갔다.

"딸! 이거 먹고 마지막까지 파이팅 해!"
"우와! 나 이거 먹고 완전 열심히 공부할게!"

사춘기의 끝자락에 접어든 딸이 이런 엄마의 행동을 (시험을 잘 보라는) '압박'으로 여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연어초밥을 먹은 아이는 마지막 시험까지 박차를 가해 주었고 덕분에 중학교 마지막 시험을 대체로 만족할만한 결과로 끝냈다.

딸에게 시험이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이듯, 내게도 한 해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 용어가 좀 거창하지만 '교원능력개발평가'의 학생, 학부모 만족도 조사 결과이다.

저학년은 학생 만족도 조사 없이 학부모 만족도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학부모 만족도 조사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 나의 1년이 평가된다. 물론 이 조사 결과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내 한 해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지표도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주신 담임교사에 대한 평가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교원능력개발평가 기간이 끝나고 업무 담당자가 열람이 가능함을 알려왔을 때, 즉시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평가 결과에 담담하지 못할 만큼 아직도 내 마음 그릇은 작다. 잘 못 나오면 어떠냐. 이게 나를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잖아. 어떻게 모든 학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겠어? 그렇게 나를 달래며 다음날 평가 결과를 조회해 보았다.

객관적인 문항 점수는 저학년 학부모들이 고학년 학부모들에 비해 후한 점수를 주시기 마련이라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내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평가는, 담임교사에 대한 좋은 점과 바라는 점을 쓰는 '서술란'의 내용이다. 서술란까지 굳이 채워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 내용을 기입하는 학부모라면 서술형 문장을 통해 담임교사에게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 감사하게도, 부모님들(대개 어머님들)은 내가 한 해동안 신경 써 왔던 부분을 놓치지 않고 만족을 표해 주셨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로서의 시선에 대해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뭉클했다. 마음이 비껴가지는 않았구나, 안도와 감사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바라는 점'란에 쓰인 한 문장에 울컥하고 말았다.

"늘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며 오랫동안 학교에 계셨으면 합니다. 너무 감사한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야 담임교사의 기본 책무이니 감사받을 일도 아니다. "오랫동안 학교에 계셨으면 합니다"라는 문장에 난 코끝이 시큰해졌던 것이다.

지금의 학교에 근무한 지 올해로 5년 차. 한 학교 근무 연한 5년 기준에 따라 난 올해 말이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학년 말이 가까워 오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인 동료 교사들과 근무지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우스갯소리도 한다.

"이제 학교 두어 번만 옮기면 정년이네."

짧으면 두 곳, 길어봐야 세 곳의 학교를 거치면 학교와 맺은 내 역사는 끝나게 될 것이다. 농담이었지만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그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난 언제쯤 퇴직을 하게 될까. 정년까지 한다고 말은 했지만, 나보다 훨씬 젊은 학부모들이 나이 든 교사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진 않을까. 아이들도 나이 든 선생님을 좋아하진 않을 텐데.

언젠가 퇴직하신 선배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퇴직 전의 그 선생님의 교육자로서의 기품과 열정을 아는 모 학교 교감 선생님께서 친히 부탁하셔서 잠시 그 학교에 근무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2학년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러한 상황이 불만이었던 그 아이가 씩씩거리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선생님은 할머니야!"

선배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이 말에 마음이 복잡해지셨던 모양이다. 누구보다 학교를, 학생들을 사랑하셨던 그분을 잘 알기에 선배 선생님께서 그때 느낀 착잡한 심경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언제까지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학교를 떠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음… 좀 애틋해진달까. 내가 아이들과 만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만날 시간이 훨씬 적게 남았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학교에 계셨으면 합니다."

이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 내게 남은 학교 생활을 묵묵히 해 나가야겠다. 평가의 계절에 선물처럼 주어진 정다운 문장 하나 새기며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brunch.co.kr/@gruzam47)에 함께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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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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