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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신종 코로나 최초 집단 발병이 일어난 지 2년이 흘렀다. '언택트(untact)'에서 '위드 코로나(with Corona)'에 이르기까지 꽉 채운 2년 동안 우리의 생활 양상도 많이 변화했다. 

청년층이 비교적 언택트에 익숙하면서도 적응도가 높은 데 비해, 사회∙문화적으로 고립된 노인들이 받을 타격은 훨씬 클 것. 과연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상황 속에서 노인들의 실상은 어떠할까?

고독사나 노인 우울증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는 가운데, 방역 수칙의 테두리 안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는 두 고령화 마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할매 디제이'들의 놀이터, 풍정 라디오 
 
좁지만 아늑한 이 공간에서 일일 디제이들의 입담이 쏟아진다
▲ 풍정마을의 라디오 부스 좁지만 아늑한 이 공간에서 일일 디제이들의 입담이 쏟아진다
ⓒ 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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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풍정리 풍정마을, 평균 나이 80세를 웃도는 최고령 마을의 주민은 30명 내외지만 사람 사는 소리가 매일 끊이지 않는다. 마을회관에 위치한 라디오 부스에서 일일 '할매 디제이(DJ)'가 구수한 입담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본도, 규칙도 없다. 그저 그날의 디제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할 뿐이다. 마침 방송이 없던 지난 11월 26일, 올해로 10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이상배씨를 만났다.

-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실감했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다. 같이 라디오에 출연할 때는 어르신들이 옷매무새도 정돈하고 머리도 만졌는데, 자주 오지 못하다 보니 더 빨리 늙는 것 같았다. 60을 넘긴 나에게도 1년이 참 짧게 느껴지는데 어른들의 1년은 얼마나 짧겠나. 그래서 아쉽다."

코로나 확산 이후 내려진 집합 제한으로 마을회관에 모이지 못하자 노인들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상배 이장은 제한된 여건이지만 풍정 라디오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평균 5명 정도의 디제이가 출연했지만 요즘에는 1~2명 정도의 최소 인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록 옆에서 맞장구치는 동료 디제이는 없어도, 어느덧 능숙하게 기계를 만지는 할매 디제이들은 앉았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시집오던 날, 금쪽같은 자식을 품에 안은 날, 그리고 남편을 먼저 보내던 순간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한 가닥 풀어놓다 보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자연스레 풀어진다. 

아쉽게 일일 디제이로 선정되지 못한 다른 노인들은 열혈 청취자가 된다. 밭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집 마당에 잠깐 앉아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사연에 함께 웃고 울면서 진한 공감대를 쌓아나간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는 말처럼 풍정 라디오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 잔잔한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유튜브 '예천산채' 중 일부
▲ 풍정 라디오 방송 모습 유튜브 "예천산채" 중 일부
ⓒ 이상배 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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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풍정 라디오는 마을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상배 이장은 코로나로 타지 생활을 하는 자식들이 고향에 오지 못하자 인터넷 방송을 활용해 어머니, 아버지의 소식을 열심히 실어나른다. 

- 인터넷 방송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시도했다고.
"명절에만 오던 자식들이 코로나 이후로 고향에 오지 못하자 어르신들의 우울과 걱정이 늘어났다. 라디오 방송 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간단히 편집해서 올리면 멀리 있는 자녀들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디제이로 나서기 부끄럽다고 했던 어른들도 자식들에게 '동영상 잘 봤다'는 안부를 듣고 나서는 너도 나도 출연하길 원한다."  
 
이상배 씨와 정선희 씨
▲ 풍정마을 이장 부부 이상배 씨와 정선희 씨
ⓒ 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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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풍정 라디오를 시작하며 마을은 많이 바뀌었다. 적막하던 마을에 라디오 소리와 함께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쉽게 하지 못했던 속 얘기들을 함께 나눈 주민들은 더욱 돈독해졌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마을에는 주춤, 브레이크가 걸린 듯했지만 굴하지 않고 마을 어른들의 소식을 담는 창구로, 또 누군가에겐 감정의 해우소로써 풍정 라디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마을에선 모두가 시인입니다 
 
시를 쓰고 있는 박옥영 어르신
 시를 쓰고 있는 박옥영 어르신
ⓒ 김만호 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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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자연을 품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가계리 가계마을, 이곳에서도 이장의 주도로 노인들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고 있다. 6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김만호씨는 불리는 이름이 많다. 그중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 소리. 지난 11월 29일 경로당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문예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만호 이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평균 나이 80대 초반의 만학도들 사이에는 김만호 이장의 어머니, 박옥영 어르신도 있다. 올해로 87세인 어머니는 어릴 때 6.25가 일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관둬야 했다. 하지만 아들이자 선생님인 김만호 이장의 지도 아래 늦깎이 시인이 됐다. 
 
김만호 이장의 어머니가 지은 시
▲ 박옥영 시인의 <아파요> 김만호 이장의 어머니가 지은 시
ⓒ 경남평생진흥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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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산청군의 지원을 받아 문예 수업이 열리던 가계마을에도 어김없이 위기는 닥쳤다. 코로나로 인해 경로당 폐쇄 조치가 내려지고, 집합 제한으로 수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만호 이장은 마을에 드리운 그림자를 회상했다. 

- 마을 어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단 모두 답답해했다. 동네 경로당을 열지 못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TV만 보면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시장이나 병원을 방문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니 불편함이 컸을 것이다."

고심 끝 김만호 이장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직접 학습지를 제작해 문예 교실 수강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교재들을 참고해 수강생들의 실력에 맞게 예문과 문제를 만들어 전달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어른들은 학습지를 통해 '숙제'라는 명목으로나마 외부와 소통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됐다.

- 숙제 검사 및 독촉도 한다고.
"(어른들이) 혼자서 숙제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면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같은 동네에서 마주치거나 이장 일로 방문할 일이 있으면 '숙제 꼭 하세요'라고 독촉 겸 독려를 한다. 내가 이장이라서 물품 배부 등의 일이 있을 때 집에 방문해 상태를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계마을 문예교실 선생님
▲ 김만호 이장 가계마을 문예교실 선생님
ⓒ 김만호 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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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된 어른들은 집에서 시도 쓰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직접 쓰기 어려운 어른들도 생활의 질이 대폭 개선됐다. 문예 교실에서 배운 한글로 은행에 가서 ATM기를 사용하거나 혼자서도 간단한 용무 해결은 가능한 정도이다.

김 이장은 "코로나로 마을이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문예 교실이나 평생교육처럼 노인들의 참여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면 노인층의 코로나 블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마을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사각사각 기분 좋은 글 쓰는 소리와 글 읽는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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