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로 일년의 절반 이상을 가정보육 해왔다. 가정보육 하는동안 낡고 작은 평수의 집에서도 매일 즐겁게 노는 아이를 보며 집에 담기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 즐거운 우리 집 코로나로 일년의 절반 이상을 가정보육 해왔다. 가정보육 하는동안 낡고 작은 평수의 집에서도 매일 즐겁게 노는 아이를 보며 집에 담기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우리 집은 지은 지 25년 된 작은 평수의 아파트다. 영등포 다세대 주택을 첫 신혼집으로 시작해 거기서 1년을 살고 얻은 두 번째 보금자리가 지금의 집이다. 아버님의 오랜 군 생활과 교직 생활로 어릴 때부터 이사를 밥 먹듯 해왔던 신랑은 늘 안정적인 우리 집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집은 그래서 생긴 첫 번째 우리 집이다. 비록 지금도 안방 하나 정도만 우리 것이고 나머지는 은행 집이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결혼 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던 날, "와, 우리 집이라니" 하는 신기함과 약간의 설렘으로 이삿짐을 올리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니 스무 살 훌쩍 넘은 이 집의 나이도, 그리 넓지 않은 이 집의 크기도 이렇다 할 아쉬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햇살이 잘 들어 좋네, 앞뒤로 바람이 잘 통하니 환기가 잘돼서 그것도 좋네, 베란다 큰 창문 앞이 트여있어 저기로 공원길이 보이니 그것도 마음에 드네. 하는 생각만 들뿐.

내 손길이 닿은 곳 

몇 년을 살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우리 집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종일을 보내다 잠깐 빨래를 널러 나간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깥 풍경이 좋다. 저 앞으로 작은 공원과 아파트 단지마다 가득한 나무들이 계절마다 제 색을 내며 변해가는 모습이 반갑다.

봄꽃들이, 여름 녹음이, 가을 단풍이, 겨울 눈꽃이 때마다 다정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작년 한 해를 생각하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은 집안일을 하는 중에도 내게 작지만 생생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아침 햇빛으로 환하게 채워지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내가 고른 벽지와 아침 햇빛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색의 밝음이 좋다. 좋은 기분으로 많은 아침을 보내는 일이 하루를 시작할 때 받는 고마운 응원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해 질 무렵 작은방으로 밀려드는 노을빛도 좋아한다. 해지면 드리우는 그늘이 아니라 붉그래한 노을빛으로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아는 게 좋다. 노을빛이 드는 방 안에서 오늘 하루도 나름 잘 살았네, 하는 생각이 가만히 드는 것이 감사하다.

손이 느려 뭐든 남보다 시간이 배로 걸리는 내가 매일 청소하고 정리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크기의 우리 집이 좋다. 평생 야무진 살림꾼은 못될 체질인 내가 그래도 집 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손을 보고 세련된 안목은 아니어도 내 맘에 흡족하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아담한 우리 집이 좋다.

이 집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안방엔 탁 털어 주름 없이 펴진 이부자리와 깔끔하게 정리된 화장대가, 작은방엔 안 쓰는 물건과 옷가지들을 잔뜩 덜어낸 후련함과 내 책들로 채워진 책장이, 주방엔 설거지를 마치고 비워진 싱크대가, 거실엔 매일 나와 앉아 묵상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이 책상이 있는, 부족한 살림꾼인 내가 마음으로 닦고 가꾸며 만들어 온 우리 집.

집은 삶이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마음이 있다. 예전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시언 씨가 오래도록 살던 빌라를 떠나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마 거실에 방 하나 주방과 화장실이 있었던 평범한 빌라. 그 집에 오래도록 살았다는 이시언씨는 이사를 나가던 날, 비워진 집안 곳곳을 훑으며 눈물을 쏟았다.

오랜 무명의 힘든 시간을 보내며 살았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다던 집. 그 집을 떠나며 그는 많이 울었다. 고마웠다고 되뇌면서. 그 모습을 보는데 그의 말이,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삶이 거기 있다. 그 집에 사는 동안 기뻐하고 힘들었던 모든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수와 모양에 상관없이 '우리 집'은 사람에게 그런 의미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집은 모두에게 자신의 삶이기도 할 거다.

모양과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 집'을 좋아하는 일. 찾으려고 들면 금세 보일 단점보다 구석구석 내 손이 닿아 있는 우리 집을, 그래서 조금씩 내 마음과 삶도 담아가는 우리 집을 좋아할 이유를 더 섬세하게 살펴 기억한다. 내 삶이, 우리 가족의 삶이 오늘도 여기서 서로 위로받으며 채워져가고 있다. 나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먼저 게재 한 글 입니다.


태그:#우리집, #아파트, #작은집, #구축아파트, #가정보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의 오늘을 기록하는 짧은 글과 그림을 남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