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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죽었다. 아니 죽었단다. '살인마' 전두환이. 실감이 오지 않았다. 40년이 넘도록 피눈물을 흘리며 그를 '살인마'라 불렀던 그 누구도 그놈 잘 죽었다, 박수 치지 않았다. 만세를 부르지도, 해방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 죄가 열몇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의 수 천 수 만 곱절은 더 되는 자가 죽었다는데!

그런데 그는 정말 죽은 걸까?

전두환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대선 정국에서 행세깨나 하는 자들이 명복을 비니 마니 조문을 가니 마니 허튼 말들을 내뱉던 며칠 전 저녁의 일이다. 나는 내년이면 일흔이 코앞인 한 선배를 부산시청 부근 북면막걸리라는 선술집에서 만났다. 그의 이름은 이광호. 한 잔 술을 나누자마자 그는 얼마 전 단숨에 쓰게 된 글이라며 그것이 적힌 손전화를 내게 내밀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그였다.
 
40년이네

소위 칠성판
온몸 멍든 채 빨가벗겼지
싸늘한 스텐 철판 등대고 눕혀져
성기에 전기 코드를 갖다대며
치욕과 배반, 굴종을 강요당했던 기억

그때 함께 했던 동지들
지우지 못한
온몸 몹쓸 기억으로
하나 둘 자꾸 아프고
또 하나 둘 자꾸 떠나가고

나도 때로는 내가 아닌 듯
대상도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한
분노의 독설로
사랑하는 사람들 상처를 줄 때가
자꾸 느는 것 같아
날 고문했던 사람처럼

벌써 40년이네
아픈 기억 지우면서
따뜻한 심성으로
화내지 않고
망월동 푸르런 흙땅을
밟아야 할 텐데.
 
아, 나는 그런 줄 몰랐다. 그가 아직 대학생이던 1980년 5월, 부산 망미동 소재 3.1 공사라는 간판을 단 보안사에 여러 동지들과 같이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는 건 알았어도, 그가 가끔 그때 일을 내게 토설은 했어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고문의 기억이 그를 압도하곤 한다는 건 미처 생각 못했다.

전두환이 죽었다는 바로 그날 광주 5·18 때 계엄군의 총을 맞은 후 오랫동안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 온 이광영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비보를 내가 접한 것은 그 선배를 만난 다음 날이었다. '통증에 시달려 오다 결국은 내가 지고 간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이광영씨는 유서에 썼다고 했다. 그런 기사를 읽었을 때 그 선배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전두환과 이래저래 엮여왔거나 한패였다고 할 힘깨나 쓰는 정치인들 중에 누구는 문상 가고 누구는 어떻게 말하고 하는 등등에 관한 한 나는 관심이 없다. TV 뉴스 화면에 등장한 왕년의 쿠데타 주역들의 조문 행렬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새삼, 이 나라 도처에 전두환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는 건 말해 두자. 그래서 무서워도 진다.

그것은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나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전씨의 분향소를 차리려 한 '태극기혁명운동본부' 사람들처럼 대놓고 팔을 걷어붙인 이들 때문이 아니다.

'평가는 역사가 할 일'… '인간적 차원에서 조문'… '전직 대통령이니까 가 봐야'…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내가 전두환의 환영을 보는 것은 이런 미끈한 말의 주인공들에게서다. 그래서 나는 섬찟해지는 것이다. 국회의사당, 검찰청, 법원, 그리고 유수한 언론사의 구석구석에 건재해 뵈는 이들은 사람 좋은 얼굴에, 탁월한 말솜씨에, 대단한 학식과 경력과 금력과 권력을 가진 선량이며, 고위공직자며, 학자이며, 정치가들이기에.

그날이 오기를

'전두환은 갔지만 전두환 시대는 갔는가?'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던진 말이다. 전두환 죽음 정국에서 가장 내 가슴에 꽂힌 한 마디다. 나는 이렇게 물어본다. 

전두환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언제 죽은 존재가 되는가?

1980년 5월 그 일을 겪은 후 교사가 된 이광호 선배의 삶은 씩씩하고 용감무쌍한 것이었다. 부산교사협의회 공동대표, 전교조 해직교사, 전교조 부산지부 연대사업위원장, 부산교육연구소 초대 소장, 부산민예총 초대 사무총장, 동아시아 어린이 희망학교 교장, 부산민주공원관장,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설립.

이러한 역정은 전두환으로 상징된다 할 이 땅의 비인간·반민주·반민족 세력과의 싸움, 고문과 유형무형의 폭력과의 싸움, 요컨대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공존의 가치를 지키려는 싸움이며 한마디로는 호시탐탐 자신을 무너뜨리려 한 전두환(들)과의 싸움이 아니었던가,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삶이 그토록 씩씩하고 용감무쌍했던 그임에도 그가 내게 보여준 슬프고 아픈 고백의 시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특히 내 가슴을 친다.

'나도 때로는 내가 아닌 듯/ 대상도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한/ 분노의 독설로/ 사랑하는 사람들 상처를 줄 때가/ 자꾸 느는 것 같아/ 날 고문했던 사람처럼'

그는 몇 년 전부터 모든 사회적 역사적 책무의 짐에서 벗어나 함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전두환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의 진짜 사망의 때는 언제일까? 이광호 선배가 꿈꾸었던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때는 나도 전두환의 죽음을 소리 높여 선언하며 춤을 출지도 모르겠다.

이광호 선배가 '아픈 기억 지우면서/ 따뜻한 심성으로/ 화내지 않고/ 망월동 푸르런 흙땅을' 밟기 전에 그날이 오기를 나는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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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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