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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구로공단'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단', '공업단지'라는 말은 '산업단지'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구로공단'은 이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었다. 1996년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공업단지'가 '산업단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21년 2분기 현재 산업단지 숫자는 총 1246개에 달한다. 그중 개수로는 지방일반산업단지가 690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외에 농공단지 476개, 국가산업단지 47개, 도시첨단산업단지 33개에 달한다.

이 많은 산업단지는 어디에 있을까?
 
충남 예당 제2산업단지 조감도. 좌측 하단으로 보이는 민가 밀집지역이 상장리 2구다. 산업단지가 마을 바로 뒤로 들어설 예정이다. 주민들은 환경·건강 문제를 우려하며 제2산단 추가 조성을 반대하고 있다.
 충남 예당 제2산업단지 조감도. 좌측 하단으로 보이는 민가 밀집지역이 상장리 2구다. 산업단지가 마을 바로 뒤로 들어설 예정이다. 주민들은 환경·건강 문제를 우려하며 제2산단 추가 조성을 반대하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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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울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포함해서 총 4개의 산업단지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1246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산업단지들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산업단지들은 농촌으로 갔다. 아마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농촌을 지나가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업단지라는 명칭을 무수히 볼 것이다.

그리고 산업단지는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특례법으로 인해 급속하게 늘어났다. 특히 많이 늘어난 것이 일반산업단지다. 일반산업단지는 시·도지사가 승인권한을 가진 산업단지다. 일반산업단지 숫자는 2007년 12월말 250개에서 2020년 12월말 685개로 2.7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산업단지가 급속하게 늘어나게 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08년 제정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규제개선을 명분으로, 산업단지 지정절차부터 실시계획 승인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지던 행정절차를 통합적으로 시행하게 했다. 소요기간과 비용을 단축시키게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이 법률로 인해 산업단지는 농촌지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됐다.

그로 인해 농촌에서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집과 땅을 빼앗기는 농민·주민들

첫째, 농민들과 농촌주민들이 마을에서 쫓겨나고 땅을 빼앗기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마을이 없어지고 주민들은 이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단지로 지정된 토지 중에 농지가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농사짓던 농민들이 밀려난다.

특히 식량주권 차원에서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농업진흥지역 내의 농지(절대농지)까지 대규모로 사라지고 있다. 한 예로, 최근 충북 진천군에 추진되고 있는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와 관련해서는 32만8225㎡의 농업진흥지역이 한꺼번에 해제됐다.

둘째,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민간기업들에게 토지강제수용권까지 부여되면서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 산업단지 중에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민간기업이 단독으로 추진하거나(민간개발),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사업을 추진하는 형태(절충형)이다.

절충형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지분(10~20% 정도)만 갖고 다수 지분은 민간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민간개발뿐만 아니라 절충형도 산업단지 개발이익의 대부분이 민간기업에게 들아가는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취득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업체가 토지강제수용까지 할 수 있다. 토지수용을 당하는 지역주민들 입장에서는 '민간기업이 자기들 돈벌이하려고 추진하는 사업에 왜 내 땅을 강제수용당해야 하나?'라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셋째, 당초에는 첨단산업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이후에 분양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유해물질,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업종으로 바꾸는 사례들도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공장들이 들어선 옆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례들로 인해 농촌지역 주민들이 유해물질,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넷째, 산업단지가 워낙 많이 추진되다 보니, 분양률과 실가동률이 낮은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 통계상으로는 일반산업단지의 경우 7%, 도시첨단산업단지의 경우 27.8%, 농공단지의 경우에 4.1%가 미분양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실제가동률은 더 낮다고 얘기한다. 산업단지 관련 통계를 분석해보니, 조성이 완료된 지방일반산업단지 중에서 가동률(가동업체/입주업체)이 50% 이하인 산업단지도 55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2021년 지정계획이 있다고 발표된 신규 산업단지만 해도 98개에 달한다. 분양이 안 돼 산업단지가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18년 3월 충남 서산시청 앞 환경관련시설반대 집회 모습.
 사진은 지난 2018년 3월 충남 서산시청 앞 환경관련시설반대 집회 모습.
ⓒ 자료사진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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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산업단지로 인한 손실까지 떠안아

다섯째, 산업단지를 무분별하게 추진했다가 지자체가 손실부담을 떠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감사를 해 2021년 6월에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가 산업단지로 인한 채무나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충북 괴산군의 대제산업단지의 경우에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산업단지를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에 152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민간업체들은 손실을 전혀 부담하지 않은 반면, 괴산군만 159억 원(도비 34억 원, 군비 125억 원)의 보조금을 지출해 손실 전부를 부담했다는 것이다.

여섯째, 일정 규모 이상 산업단지 내에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의무설치하게 돼 있는 법조항을 이용해서, 업체들이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처음부터 산업단지와 함께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 사리면에 추진중인 '괴산 메가폴리스'가 그런 사례다. 업체의 입장에서는 산업단지 사업을 벌여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 얻을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운영을 시작한 충주메가폴리스의 경우에는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특수목적법인이 얻은 누적이익(2020년 연말 기준)은 108억 원 정도인 반면,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는 업체가 얻은 누적이익은 647억 원이 넘는다. 산업단지 조성 자체보다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이 훨씬 큰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니 업체 입장에서는 산업단지 설치를 명분으로 해서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 돈을 벌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지자체 합작품, 이제 중지시켜야

이처럼 전국의 농촌지역이 산업단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허술한 법제도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만든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으로 인해 산업단지가 묻지마식으로 무분별하게 추진된 면이 있다. 이제는 이 법률을 폐지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역발전을 내세워서 일부 민간업체들과 협약을 맺고, 무분별하게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특혜 의혹, 유착 의혹, 예산낭비 의혹 등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농지가 대규모로 훼손되고 있다. 농촌지역 주민들이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내년에는 대선과 함께 지방선거가 있다. 선거 시기 산업단지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만든 특례법의 폐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역 차원에서는 지금까지의 산업단지 추진으로 인한 주민피해와 각종 의혹 문제가 공론화돼야 한다.

이제 이런 식의 산업단지 추진은 멈춰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농촌·농민·농업을 위한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제주대 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태그:#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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