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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가 보행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령자가 보행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박선민,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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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부근 7차선 횡단보도. 녹색불이 깜빡이자 한 노인이 재빠르게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금세 빨간불로 변한다. 신호가 바뀌는 순간 배달 오토바이가 노인을 가로지르고 차량과 버스가 횡단보도로 몰리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펼쳐진다. 노인은 미안하다는 듯이 차주에게 눈짓을 보내며 겨우 인도에 발을 내딛는다.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을 받아 가던 강모(68) 할머니는 "내가 이거(지팡이) 때문에 더 늦게 가. 넉 달 전에 무릎 수술을 했는데 아직 다 낫지도 않아서 힘들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횡단보도는 강씨를 포함한 대다수 노인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지대'와 다름없다.

이날 찾은 탑골공원은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무료급식을 받아 가려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가 하면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워 유모차나 자녀에게 본인의 몸을 지탱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횡단보도 건널 때 어려움이 없으시냐"는 질문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서울 종로구 거리에서 한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다.
 서울 종로구 거리에서 한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다.
ⓒ 박선민,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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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권(86)씨는 본인의 보행속도에 비해 녹색불 지속시간이 짧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두렵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종로에 올 때마다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북적여서 평소보다 걷는 게 더 힘들어. 일부러 신호를 기다렸다가 다음번에 건너는 게 더 낫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윤씨는 5년 전 시내버스를 타고 있던 중 차가 급회전하면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고관절을 다쳤다. 인공뼈로 대체하는 대수술을 받은 뒤 윤씨는 지팡이에 두 다리를 의존하고 있다.

보청기를 착용해서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은 데다 관절 등 건강 상의 이유까지 더해지다 보니 청장년층에 비해 노인들이 보행 시 겪는 어려움이 더 큰 상황이다. 통상 횡단보도 보행 시간은 보행 진입시간 7초에 횡단보도 1m당 1초를 더한 값을 기준으로 삼는다. 고령자 등 교통약자 밀집 지역은 횡단보도 0.8m 당 1초로 보행시간이 더 긴 편이다.

경찰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들의 보행속도는 1초당 0.85m로 측정되며 지팡이 등 보조 장치를 동반하는 경우 초당 0.7m로 더 낮은 수준이다. 고령자가 교통약자 밀집 지역이 아닌 일반 구역을 건널 시 사고 위험이 더 큰 것이다. 

20대인 기자가 약 22m 7차선 도로를 건너는 데 18초가 걸렸다. 경찰청의 셈법에 의하면 고령자는 25.8초가 걸리고 보조 장치를 한 고령자는 이보다도 1초가 더 든다. 기자에 비해 고령자 보행속도가 약 1.5배 더 소요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종로5가 파출소 관계자는 "노인 보행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교통경찰이 노인정에 직접 방문해 교통사고 예방 교육 등을 실시 중"이라고 말했다.

전체 보행자 사망자 중 절반이 노인
 
보행자 사망자 수 통계 (그래프 1, 그래프 2)
 보행자 사망자 수 통계 (그래프 1, 그래프 2)
ⓒ 박선민,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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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보행자 사망자 수 1093명 중 절반 이상이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보행 중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프1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전체 보행자 사망자 수는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반면 노인 보행자 사망자 수는 큰 변화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조사한 '노인 10만 명 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서도 한국이 10년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자 보행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를 위한 보행 지침을 마련하고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행사고 사망자 중 노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도 노인보호구역사업은 노인의 신체적 특성 등을 섬세하게 반영하지 않았다"며 "고령자의 특성을 고려해 정책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사람이 차보다 먼저'라는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며 인식 개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홍성민 박사는 "다차선 도로에 있는 횡단보도인 경우 고령자가 중간에 쉴 수 있도록 '보행섬'을 설치하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며 "보행자가 횡단 중일 때는 인도에 도착할 때까지 차량이 기다려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창원시 ‘보행신호 자동연장시스템’
 창원시 ‘보행신호 자동연장시스템’
ⓒ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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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자 보행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지자체가 나서 고령자, 어린이 등 교통약자를 위한 보행신호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기도 한다. 실제로 창원시는 지난 19일 4천만 원을 들여 '횡단보도 보행신호 자동연장시스템'을 초등학교 앞 도로에 설치하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하면 알아서 녹색 신호를 5~10초 정도 연장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창원시 신교통추진단 관계자는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경찰청 보행신호 자동연장시스템 표준규격에 따라 도로교통공단이 성능검사 인증을 한 국내 첫 사례"라며 "교통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초교 정문 앞에 설치했는데 시민들의 반응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성민 박사는 "보행속도가 느린 노인들이 횡단보도를 채 건너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 서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줄여줄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며 "지자체별로 도로 폭, 신호 연장 시간, 위치 등을 고려해 노인 친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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