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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의 반환점을 돌았다. 반환점을 도는 6회차를 마치고 퇴원하는 날 우리는 지금까지 잘 버텨낸 시간에 대해, 서로의 애씀에 대해 축하하며 격려했다. 우리의 시간은 항암치료의 시간과 밀착되어 있고 시간을 잘 견뎌낸 것이 왠지 뿌듯했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이 되었다. 

퇴원하는 날, 의사는 중간점검 차원의 CT촬영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얘기를 듣는 순간 막연히 가슴이 뛰었다. 가족들 모두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으나 누구도 드러나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심정을 조용히 숨겼다. 한 주가 지나 병원에서 예약 문자가 도착했고 CT촬영을 했다. 결과는 다음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 말해 준다고 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이후의 치료 일정이 바뀐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소리도 들었던 바라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주를 보냈다.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막연한 기대를 담은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끼리의 위로와 격려에는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다.

기다렸던 검사 결과
 
퇴원하는 날, 의사는 중간점검 차원의 CT촬영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퇴원하는 날, 의사는 중간점검 차원의 CT촬영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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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다음 날 아침 회진에 의사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급한 수술이 잡혀 있어 오지 않았고 저녁 회진 시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심정을 의사는 생각했을까. 회진에서 의사는 검사 결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듯이 말했다.

"네. 결과 좋네요. 계속 열심히 치료받으시고..."

뛸 듯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의사는 5초 정도 눈을 맞추고 지나는 길에 건네는 안부처럼 덤덤하게 말했다고 했다. 길게 말하지 않는 담당 의사의 말버릇은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서운하거나 아쉬운 마음보다는 짧고 감동 없는 말이 오히려 엄청나게 기쁜 소식으로 들렸다. 

가족들에게 상세히 전하고 싶어 남편은 다시 간호사에게 상황을 자세히 물었고, 환자를 가까이에서 살피는 간호사는 정말 좋은 소식이라며 길게 설명을 해 주었다고 했다. 폐도 깨끗하고 장도 깨끗하다고.

항암의 회차가 지나며 먹는 약의 종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간을 보호하는 약, 위에 통증이 있어서 위를 보호하는 약도 처방받았다. 구역과 구토를 예방하는 약, 혈압약 등 기존에 먹던 약까지. 매 끼니마다 챙겨야 할 약들은 점점 많아졌고 항암의 후유증은 심해지고 있다.

항암제 투약과 먹는 약으로 인해 위와 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간수치가 좋지 않고, 속 쓰림과 위통, 예민한 대장 증상과 손발톱은 죽어가고 있고 혀의 감각은 점점 더 기능을 잃고 있다. 찌릿하고 저릿한 증상은 몸의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근육통과 식욕부진, 말초신경의 감각 장애와 구토 및 오한 등의 증상까지.

환자가 아니라서 체감은 못하지만 정상적인 세포도 죽인다는 항암제 투약은 온갖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입은 쓰고 얼얼하고 우주인이 된 듯 찌릿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입에서 가리는 음식과 몸에서 거부하는 음식을 빼고 나면 사실상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따끈한 국물이나 그나마 잘 먹던 국수도 외면했다. 저녁은 아예 챙기지 말라는 말로 확실히 의사를 표명했다. 혹시 당기는 음식이 있을까 싶어 몇 가지 종류를 얘기하면 그것에도 역한 반응이 올라온다고 했다. 집 안의 음식 냄새에 예민했다. 본인이 먹는 음식의 냄새도 역겹다고 했으나 매일 걱정하고 챙기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어주는 것은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달을 정신없이 살다 보니 가족 모두 여유라는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나와 아이들은 또 나름대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멍을 때리니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있었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누군가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에 써야 한다며 묻고 있었다. 문득 지금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는 뭘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
 
가족은 사랑과 운명의 공동체
 가족은 사랑과 운명의 공동체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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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남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심이 되는 남편의 일상도 여러 과정과 단계에 구속되어 있다. 이를 따라가려니 가족 모두의 일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려움은 많지만 아무도 그걸 내색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작은 것을 찾아 만족하고 웃고 행복을 찾는다. 환자의 울렁거림이 덜한 날, 환자가 만족할 만큼의 식사를 마쳤을 때, 작은 농담이 오갈 때. 순간의 기쁨을 하루의 행복으로 치환할 만큼 정신승리를 한다. 

어려움은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다 보면 내 안에 서운한 마음이 자리할 틈이 없다. 매일 생기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게 모르게 하나씩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2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의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 맞는 건가 싶은 지점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아득한 마음이었는데, 중간점검 차원의 CT촬영과 좋은 결과는 남은 항암치료를 열심히 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정말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과 더 완벽하게 낫기 위해 힘든 과정을 통과하는 거라는 위로 같은 느낌이었다.

걱정하는 가족을 웃게 하려고 전기 인간이라며 장난처럼 전기를 발사하는 동작을 취하기도 하지만 쉽게 피로해지고 기절하듯 잠에 취한다. 그럼에도 하루에 일정 시간은 충분히 움직이려고 애를 쓴다. 하루의 운동량이 적은 듯하면 저녁에라도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한 시간씩 걷고 들어올 정도로.    

암 치료의 경험을 다루는 많은 책들에서 강조한 것은 환자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암에게 대적하지 말고 암과 친구가 되라는 말도 쓰여 있었다.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일상의 흐름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우리 가족 모두는 마지막 힘을 내고 있다. 암과 친구가 되기 위해 예민한 증상을 무던히 받아 넘기기도 한다. 

힘든 치료의 과정에서도 잠깐의 루틴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잠시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안도하는 듯하면 긴장을 놓지 말라는 경고처럼 새로운 증상이 다시 찾아들고 모두를 괴롭히지만, 그 짧은 일상성 또한 가족 모두에게는 큰 의미가 되고 소중한 시간이 된다. 

프랑스 심리상담가 안느 바커스(Anne Bacus) 박사는 "가족이란 서로 톱니로 연결된 바퀴와 같아서 한 바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바퀴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가족은 사랑과 운명의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가족의 의미를 우리는 어느 때보다 공감하고 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몸도 하나가 되어 투병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암과 친구가 되기 위해 몸이 거부하지 않는 음식을 함께 찾고, 마비되고 죽어가는 손발을 함께 매만지며 암을 달랜다. 부디 가볍게 다가오는 순한 친구가 되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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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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