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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명인 김대균 선생
 줄타기 명인 김대균 선생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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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시작한 경기도 용인시 관내에 거주하는 무형문화재를 소개하는 '무형문화재를 찾아서' 연재 기사를 이제 막 내리려 한다. 그 마지막 주인공은 용인에서 줄타기 인생을 시작해 최연소로 국가무형문화제가 된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김대균 선생이다.

부채를 들고 줄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는 용인에서 줄타기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줄 위에 있는 그는 사뭇 진지하다. 또 세상 다 가진 듯한 자유로운 표정이다. 그만큼 줄타기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반증이다.   그의 첫 공연 역시 용인에서 시작했다.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한국민속촌에서 성공적인 첫 무대를 펼친 그는 민속촌 스타로 대성했다.

용인은 그에게 각별한 곳이다. 다시 태어나도 줄타기를 할 거냐고 묻자 단번에 "그럼요. 줄 타는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라면서 "줄판에서 잘 놀다간 사람으로 기억되면 족해요"라는 김대균 명인. 그는 여전히 줄을 보면 설레고 좋단다.

용인에서 시작해 정점 찍은 줄타기는 줄광대가 어릿광대와 함께 삼현육각(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으로 이뤄진 연주 형태) 연주에 맞줘 익살스러운 재담과 춤, 소리, 아니리를 섞어가며 갖가지 잔노릇(기예)을 벌이는 놀음이다. 줄타기는 마당놀이의 꽃으로 예로부터 팔관회, 구나와 같은 큰 축제에서 연희됐다.

2011년 세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위원회로부터 한국의 전통음악과 동작, 상징적인 표현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공연예술로 인간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유산으로 인정받아 세계 최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단한 전통연희인 만큼 배우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으리라.

9살 때 용인 한국민속촌 전시가옥으로 온 그는 그 안이 자신의 놀이터였단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줄타기 명장 김영철 스승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줄타기 인생이 시작됐다. 학교 끝나면 그는 스승에게 줄타기를 배웠다. 김 명장에게 광대 감성과 기초기술을 익혔고 외홍잽이, 쌍홍잽이 등 탄력을 이용한 잔재비 기술까지 모든 것을 배웠다.

그렇게 매일 같이 줄 위에서 놀던 그는 1980년 줄타기 전수자로 선정되면서 스승을 모시고 집중적으로 줄타기 훈련을 받았다. 1982년 5월 5일 드디어 첫 무대에 올랐다.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하는 그는 "석가탄신일이었어요. 한국민속촌에서 첫 무대에 올랐는데 그날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요"라고 회상했다.
 
김대균 명인의 줄타기 공연 모습. /사진제공 김대균
 김대균 명인의 줄타기 공연 모습. /사진제공 김대균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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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공적인 무대를 펼치고 그는 단번에 한국민속촌 스타로 떠올랐다. 줄 위에서 다양한 기술을 할 때마다 박수소리는 더 커졌고 그의 연희는 점점 완벽해져 가고 있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선생은 1988년 자신의 스승이 타개하면서 뒤늦게 방황을 하게 됐다.

"당시 뒤늦게 사춘기가 왔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떠나시고 저도 한국민속촌을 나갔어요. 전 줄타기만 할 줄 알았지 소리나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서울로 판소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더 앞만 보고 가자고 결심했죠."

여러 명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다양한 전통연희를 배운 그는 당시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판줄의 원형을 복원하기도 했고 공연에 물이 올랐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전국 각지로 공연을 하러 다닌 그는 1998년 경남 창녕군 부곡하와이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큰 부상을 당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초등학생들 앞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갑자기 줄이 끊어졌던 것이다.

"저도 놀랐지만 초등학생들이 더 놀라서 아픈 와중에도 '아저씨 괜찮다'면서 진정시켰어요. 그리곤 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죠. 1년을 꼬박 재활에만 집중했어요"

재활하는 동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학업에 대한 부족함을 깨닫게 됐고 그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98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그는 10여년을 학업에 매진하면서 자신의 공연 기록을 다 정립하고 데이터화했다. 더 체계적으로 줄타기를 배우길 바라서 이 같은 기록을 보존하고 남기고 있는 것이다.

줄타기보존회 설립 대중화·인재육성 나서

1991년 줄타기와 전통문화 보전과 대중화를 위해 '줄타기보존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그는 꾸준하게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그는 이수·전수자를 배출해야 하고 이들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그래서 그는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보존회가 있는 과천으로 출근한다.

올 봄 이수자가 2명 배출됐고 내년 봄에 1명이 이수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과천뿐 아니라 담양에서도 지도하는 등 전승에 적극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줄타기를 배우고 관심 갖길 바래서다. 그는 "아이들 세상에서는 줄광대가 대접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면서 줄타기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그런 그가 4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만장일치로 사단법인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제2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40여 년을 줄타기 명인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연희인들의 저변 확대와 결속력을 응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는 전통연희를 되살림으로써 전통문화의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2006년 설립된 단체다. 그는 전통연희의 원형 발굴과 보존·활성화화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전통연희 결속력을 다지고 저변 확대 기반 마련이 가장 시급해요. 전국에 퍼져 있는 연희단체를 규합하는 데 중점을 두고 활동할 생각이에요"

그는 내년 용인에서 열리는 '2022년 경기도종합체육대회'에서 전통연희 향연을 펼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용인시와 구체적인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신명나는 공연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다.

"용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희단체도 제법 있어요. 전국에 있는 단체들과 협업해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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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시에 걸맞은 문화도시 위해 무형문화재 협업 필요

용인시에 거주하는 국가, 도, 시 무형문화재가 10여 명이 이른다. 본지는 5개월 여에 걸쳐 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다양한 무형문화재를 소개했다. 이들은 용인시가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와의 교류, 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무형문화재가 고루 분포하고 있지만 용인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는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ㆍ무용ㆍ연극ㆍ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무형문화재는 국가, 도, 시 지정에 따라 지원이 다르다. 국가, 도 지정의 경우 전승교육비, 전수활동 기반시설 등을 지원하며 용인시에서 지정한 향토문화재의 경우 매달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전통문화 보존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민들 관심은 정작 높지 않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에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시에서 적극적인 협업이 필요하다고 무형문화재들은 말한다.

관내 무형문화재들은 "무형문화재들이 함께 사용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전수회관을 만들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며 "그런 공간이 있으면 주기적인 공연과 체험을 통해 무형문화재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고 일상생활에서의 문화 향유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인시는 내년 1월 특례시로 격상되는 만큼 이에 걸맞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절실하다. 무형문화재가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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