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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일 전남 여수에서 고등학교 3학년 홍○○씨가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다. 요트업체에서 일한 지 열흘째 날 12킬로그램 납 벨트를 허리에 찬 채 물 속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벗겨 내다 목숨을 잃었다.

현장실습 중인 고3 학생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들이 부주의해서일까, 일이 서툴러서일까? 둘 다 아니라고 외치며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백발의 활동가 하인호씨를 지난해 11월 만났다. 
  
그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생기는 데 디딤돌이 되었고, 실업계고 교사로 있으면서 그리고 퇴임 뒤에도 줄곧 청소년노동인권을 위해 활동해 오고 있다.
▲ 백발의 활동가 하인호씨 그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생기는 데 디딤돌이 되었고, 실업계고 교사로 있으면서 그리고 퇴임 뒤에도 줄곧 청소년노동인권을 위해 활동해 오고 있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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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호씨는 청소년 노동인권을 위해 삶의 대부분을 쏟았다. 1981년 경인여상(지금의 인천보건고)을 거쳐 2016년 8월 퇴임한 인천비즈니스고까지 줄곧 실업계고(지금의 특성화고) 교사로 있었다.

교사 시절을 비롯해 퇴임을 하고 난 지금도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라고 적혀 있다. 무엇이 그를 청소년 노동인권의 길로 가게 했을까?
 
그가 내민 명함에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라고 적혀 있다. 대표가 없는 네트워크 조직이라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활동이 이어져 온 비결이 아닐까 싶다.
▲ 하인호 씨 명함 그가 내민 명함에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라고 적혀 있다. 대표가 없는 네트워크 조직이라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활동이 이어져 온 비결이 아닐까 싶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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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인천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으로 복직했는데, 졸업생들이 은행에 취직하려면 '키 163센티미터 이상, 몸무게 53킬로그램 이하'라는 조건을 통과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여성민우회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죠. 여성민우회 이름으로 함께 자그마치 44개 기업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했어요."

1992년 하인호씨는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에 복직했다. 고발을 계기로 현장실습을 통해 학생들이 겪는 차별과 성폭력, 임금차별 등 갖가지 문제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교사들을 만나고 단체를 만나 의견을 듣기도 하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전교조 안에서 실업교육 분과를 맡아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업교육, 노동인권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공부하고 교사들과 연구도 했다.

2002년, 전교조에 처음 생긴 실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의 문제를 사회에 널리 알려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다. 당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의 실태와 문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가 주요 주제인 토론회 자리에서 하인호씨는 '청소년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실업계 고등학교의 현장실습도 문제가 심각함'을 알렸다. 

하인호씨는 토론회를 계기로 참여연대와 함께 현장실습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올해 일반고 학생이 96만여 명인 데에 견주어 특성화고(실업계고) 학생은 20만 명이 채 못 된다. 그만큼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은 각종 매체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렇듯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은 사건은 어느새 잊혀 간다.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현장에 가서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일할까 굉장히 궁금했죠. 그러다 전교조가 생기고 교육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현장 노동자들 만날 기회도 많아졌어요. 교사라고 하니까, 그것도 특성화고 교사라니까 노동법 이런 거 좀 가르쳐야 한다 그래요. 그걸 숙제로 안고 있었죠."

'참교육'을 알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체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당장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어려움이 있을 때면 여전히 목소리는 위압적이고, 말투는 위협적이고, 지도는 강압적이었다. 몸에 밴 폭력성을 씻어 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3권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공감은 했지만 실천에 옮길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노동'을 교육하기까지는 못했어요. 노무사에게서 노동법 강의를 듣고, 실천 사례를 함께 나누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현장실습과 취업을 나간 뒤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에 대한 안타까움과 도움을 주고 싶다는 동정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역시 청소년을 지도의 대상으로 놓고 노동, 노동권, 노동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고민이 쌓여 가던 2004년,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의 배경내씨가 찾아왔다. 청소년이 노동인권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노동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 낼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자고 했다. 청소년 단체들과 1년 6개월을 부대끼며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단체 이름으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를 펴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노동인권학교를 열고, 교사 및 교육 활동가를 위한 노동인권교육 워크숍을 마련하고,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하며 현장실습이 정상화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5년 출간된 <똑똑, 노동인권교육하실래요?> 당시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지침서 역할을 했다.
▲ <똑똑, 노동인권교육하실래요?> 2005년 출간된 <똑똑, 노동인권교육하실래요?> 당시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지침서 역할을 했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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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등학교는 3학년이 되면 현장실습을 나갔다. 3학년 때 정작 배워야 할 전공과목을 공부하지 않은 채, 예비 노동자로서 갖춰야 할 공부를 하지 않은 채 노동자도 아닌 실습생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고 자존감을 가질 수도 없게 되었다. 취업했다는 것으로 만족한 채 말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적어도 3학년 수업을 3분의 2는 마치고 현장실습을 갈 수 있도록 개선을 하게 했다.

책이 나오고 워크숍과 연수를 통해 교육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실천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2005년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워크숍. 이때 하인호씨는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들기’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워크숍 2005년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워크숍. 이때 하인호씨는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들기’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하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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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혼자 하자니 모르기도 하고 꾸준히 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2006년부터 문학정보고 전교조 분회원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 워크숍'을 했죠. 그 뒤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교육부가 학생들보다 기업 걱정을 해서야

현장실습은 박정희 시대인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면서 생겼다. 그때는 학교 시설이 열악하여, 시설 좋고 전문가가 있는 현장에서 전공과목을 배우자는 취지였다.

1997년에는 교육부가 현장실습을 더 독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현장실습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더욱 불거졌다. 성폭력 피해, 사고와 질병 등 재해도 늘어났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여전히 취약했으니 사회적으로 더욱 약자인 현장실습생들의 권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다.

2003년 전교조 실업위원회와 참여연대 등이 실태조사를 하면서 현장실습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실습생들은 죽거나 다쳤다. 2005년에는 현장실습생이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보호 장구도 없이 일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이때의 자료를 보면 현장실습 의무화로 저임금과 노동력 착취, 인권 유린 등의 문제가 심각함이 드러났다. 게다가 현장실습은 곧 취업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학교나 교사들의 실적으로 평가되었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말로는 학습 중심 현장실습이라고 해요. 하지만 누구도 '실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부 부처도 교사들도 학부모도 학생도요. 다 그냥 조기 취업. 조기에 취업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오래됐어요. 60년대부터."
 
2014년 인천비즈니스고 축제 중 노동인권 부스. 하인호씨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안심알바신고센터’를 운영했다. 새벽까지 일하느라 씻을 시간 없이 등교하는 학생을 위한 샤워실과 쉴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움직임이 노동하는 학생의 존엄을 지켜주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 학교 축제 중 노동인권 부스 2014년 인천비즈니스고 축제 중 노동인권 부스. 하인호씨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안심알바신고센터’를 운영했다. 새벽까지 일하느라 씻을 시간 없이 등교하는 학생을 위한 샤워실과 쉴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움직임이 노동하는 학생의 존엄을 지켜주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 하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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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취업하니까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의 해결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

하인호 씨를 비롯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나 전교조 등은 현장실습 제도를 이젠 멈추고 폐지하는 방향에서 다시 접근하자고 한다. 현장실습 제도 자체가 말처럼 실습이 아니라, 저임금에 취약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자리 제공일 뿐이라고 한다.

실태조사에서도 그런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정상적인 수업을 통해 전공과목 공부를 하고 나아가 예비 노동자로서 갖추어야 할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노동인권교육도 해당한다. 노동자로서 맞닥뜨리게 될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당당하게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준비된 노동자로서의 교육이라 하겠다.

이들은 대학생이 졸업한 뒤 취업 활동을 하듯이 특성화고도 졸업을 한 뒤 또는 적어도 학기가 끝난 12월에 취업을 할 수 있게 제도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인천여상 축제 기간에 운영한 노동인권 부스. 학생들이 줄지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 학교 축제 때 운영 중인 노동인권 부스 2017년 인천여상 축제 기간에 운영한 노동인권 부스. 학생들이 줄지어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 하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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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특성화고노동조합, 특성화고권리연합회 그리고 특성화고 일부 교사나 학생 등은 조기에 취업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노동할 수 있게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해 달라고 한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청소년이 있고, 현장실습 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취업률이 떨어질 거라 걱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은 현장실습생뿐만 아니라 일반 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일자리라고 보는 거예요. 일자리가 너무 없으니까. 그 일자리가 돈도 더 주고 또 더 안전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럴 수는 있죠. 그런데 본질을 꿰뚫어 보면 그리 될 수 없는 구조잖아요. 더 나빠지고 비정규직화되고 플랫폼 노동을 하고. 이렇게 나빠지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지 않은 거죠. 일단 이 제도를 멈추고 더 이상 운영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논의를 거쳐서 제대로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2017년 현장실습 폐지를 요구하며 인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하인호씨.
▲ 인천교육청 앞 1인시위 2017년 현장실습 폐지를 요구하며 인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하인호씨.
ⓒ 하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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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호씨는 현장실습 제도의 역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모순된 제도인데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만 피해를 줄 뿐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취업을 알선하는 업무는 노동부 등에 넘기고, 특성화고 학생들이 온전하게 교육을 받고 당당한 주체로 사회에 나갈 수 있게 하는 데 신경 쓰길 바란다.

또한 노동조합들은 현장실습 제도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현장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와 교육부에도 쓴소리를 덧붙였다.

"학교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인데... 졸업할 때까지 이러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니 산업체는 이러이러한 협조를 해 달라고 해야죠. 그런데 우리 학생들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하는 형편에 이르는 거죠."

여론에 따라 정부에 따라 흔들리는 교육부가 아니라 존재 목적에 맞게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교육부가 되면 좋겠다. 자기 철학이나 소신이 없이는 불가능할 테다. 덧붙여 하인호씨는 2011년 기아자동차 현장실습생이 주 72시간 노동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을 언급하며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사고가 드러난 건 노조가 결합해 대책위를 꾸렸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규직이 휴가를 가면 그 자리를 실습생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노조도 조금 더 양심적으로 실습생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적극 나서라고 주문한다.

나이에 따라 노동도 가볍거나 무거운가?

산업재해도 그렇지만, 현장실습생 사고나 사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실태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해마다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현장실습이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근본적인 검토를 하려면 일단 멈춰야 해요. 재학생들까지는 하더라도 3년 뒤의 입학생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해서, 서류로만 실습생인 제도를 없애고 대안을 만들어야죠. 이미 잘하는 나라들이 있어요.

또 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하죠. 실습생, 알바생이라는 표현도 그래요. '학생'인 거잖아요. 학교 밖 청소년은 배제가 되는 거죠. 공부가 본분인데 짬을 내서 일을 하는, 그러니까 공부하는 학생이 노동 현장에 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청소년 노동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는 거죠."


그의 말처럼 나이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다르다는 인식이 문제일 수 있겠다. 청소년이나 노인의 노동, 돌봄노동 등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뀐다면 모든 노동을 존중할 테고, 온전하게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노동 현장이 안전하고 존중받는다면 어떤 사람이 노동을 하더라도 차별을 받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여전히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떠안고 있다. 노동자로서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떠나면 해마다 새로운 실습생으로 교체되기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

문제가 있음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나 해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갈등도 있을 듯하다. 이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땜질하듯 처방하기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지혜가 모아졌으면 한다.

"노동인권 교육을 하는 분들이 스스로를 '강사'라기보다 '활동가'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바꾸려면 강의만으로는 안 되며 운동성을 가진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하인호씨가 한 이 얘기가 오래도록 남는다. 그의 말을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은책(www.sbook.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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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운 일을 한다. 책을 만들고 초중등 친구들과 토론을 한다. 살림, 텃밭, 목공, 바느질, 뜨개, 수제맥주, 자전거정비 들을 자주 한다. 리페어 '공방책방'을 만들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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