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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직접적인 피해 지역인 광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곳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의 4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광주시민들은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죽음 앞에서 배려의 마음도 보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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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11월 23일 향년 9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사망 전까지 5·18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결국 사죄 없이 숨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친동생을 5·18 희생자로 둔 B(63, 남)씨는 담담하게 말한다.

"'죽음죄'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이 사과를 하고 세상을 떠났든 그냥 떠났든 크게 바꾸어질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사과 없이 죽은, 죽음 그 자체가 '죽음죄'에 해당되겠죠. 이미 1987년 6월 항쟁과 1990년대 사법부의 1심 사형, 대법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국민이 내린 판결을 정치권과 사법부가 확인 판결한 것이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죠. 전두환은 살아 있어도 죄, 죽음 그 자체도 죄입니다. 5·18 영령들을 뒤로 하더라도 국민과 역사적 판결로 보면 사형이 마땅하지만 일부 국민이 선심을 베풀었으니 저 세상에서라도 국민께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학 교수(45, 남)는 그의 죽음을 위트 있게 표현한다.

"'직무유기'죠. 그런데 누가 직무유기를 했느냐, 즉 주어가 중요해요. 저승자사들이에요. 그를 좀 더 뒀어야 했어요. 용서도 받아내고 제대로 된 죗값도 치르게 해야 했어요. 저승사자들이 그를 실수로 데리고 간 거예요."

대학시절 데모 꽤나 했다고 자기를 소개한 K(52, 남)는 죽음 앞에서 좀 더 너그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전두환은 성경으로 보면 모든 때와 기한을 놓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모든 기회를 다 놓친 불쌍한 사람이죠. 주변에도 그에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한번쯤 되돌아볼 기회를 준 사람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자기 맘대로 그리고 패거리들끼리 파이팅하다가 끝낸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제 적어도 그 주변 사람들(부인, 자식, 측근)이 전두환을 추모하려면 고인의 과오에 대해서 대리사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앞에서는 사람들이 좀 관대해졌으면 합니다. 사회가 죄인에게 아량을 베풀고(이를테면 노태우 같은 정도의 국장) 그 유족과 측근들에게 역사 앞에서 겸허하게 고인의 잘못에 대해 사죄를 촉구하는 것이 어떨지, 물론 그들이 사죄하지 않을지라도 예의를 다하는 것이 더 높은 방식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그 정도 아량이 있어야 요즘 같은 갈등의 시대에 뭐랄까,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광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죽을 때가 됐으니 죽지 않았을까요"라고 하는 대학원생이 있는가 하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놓고 울 아버지보다 더 편하게 갔어요,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라고 말하는 주부도 있었다.

이 중 30년 째 공무원으로 밥을 먹고 있다는 김아무개(58, 남)씨는 "저는 점심 때 그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슬퍼졌어요. 한 시대가 일단락되는구나. 87년 체제. 87년 체제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때 만들어놓은 사회 시스템이 이제 좀 일단락되어가는구나. 전두환 개인적인 것을 떠나서. 다음 세대들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잖아요. 이제는 '니가 죽든 내가 죽든 싸우던 시대'가 아니라 '상생'의 시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기원했다.

그의 죽음보다 장례절차를 진행하면서 본 몇몇의 행태들에 더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는 대학 교수(61, 남)도 있었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여전히 5·18민주화 운동을 '빨갱이짓'이라고 호도하거나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것을 매스컴에서 볼 때마다 실은 속이 뒤집혀집니다."

꾸준히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탈춤을 춰온 한국무용가 김아무개(47, 남)씨는 행동하는 시민을 촉구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저는 전두환의 죽음을 오히려 무시하고 광주가 지금 5·18 진실 주간으로 추모행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광주 5·18에 관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열흘 동안 신문에서 살인마 전두환이 광주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콘셉트로 열흘간 희생된 분들을 찾고 그 희생을 추모하는 애도기간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접하자마자 했어요. 전두환의 죽음을 통해 다시 5·18 민주영령들이 깨어나는 기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5.18민주화운동 구속자 및 부상자, 삼청교육대 피해자 등 전두환 독재정권 피해자단체 회원들이 25일 오전 전두환씨 빈소가 설치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앞에서 ‘사죄 없는 역사의 죄인 전두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제라도 전두환씨 유가족이 5공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 ‘불의한 재산을 피해자와 대한민국에 환원할 것’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5.18민주화운동 구속자 및 부상자, 삼청교육대 피해자 등 전두환 독재정권 피해자단체 회원들이 25일 오전 전두환씨 빈소가 설치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앞에서 ‘사죄 없는 역사의 죄인 전두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제라도 전두환씨 유가족이 5공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 ‘불의한 재산을 피해자와 대한민국에 환원할 것’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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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27일 설악산 백담사에 숨어 지내던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손자를 업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民(민)을 거스르면 民(민)이 버린다'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리면서 한때 군홧발로 국민을 짓밟은 정권의 비참한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民(민)을 거스르고도 반성 없이 죽은 사람의 비참한 사후가 어떤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망자의 명복을 마땅히 빌어야 예의지만 생전의 고인과 그의 가족들은 앞서 간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명복은커녕 위로 한 마디 전하지 않은 채 여전히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며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건 여전히 불편하다.

무엇보다도 반성 없는(처벌 없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고 늘 그렇듯 그 희생자는 국민들임이 자명하다. 그 증거가 바로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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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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