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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40대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대학 동아리 단톡방에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동기의 부친상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기수 대표로 갖은 고생을 도맡았고 졸업 후에도 20년 간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기들의 경조사를 묵묵히 챙긴 친구였다.

코로나 시대라 해도 마음만 전하기엔 아쉬움이 컸다. 마침 위드 코로나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행된 터라 근처 사는 친구들과 조심스레 움직여 보기로 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시간 맞춰 합류하기로 했다.

부고 소식 듣고 만난 친구들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만난 친구들. 영화 <써니>의 한 장면.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만난 친구들. 영화 <써니>의 한 장면.
ⓒ CJ E&M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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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지만 최근 몇 년 간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고 경조사도 뜸하면서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수년 만이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도 시간이 모자랐다. 앞과 옆자리에 앉아 서로와 최근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농담에 배를 잡고 웃다가 진지하게 속 깊은 이야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야, 옛날이랑 똑같다야!" 외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새겨진 얼굴이 어떻게 그때 그대로일 수 있을까? 이미 우리의 피부에 돌던 윤기와 보송보송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월은 분명 우리를 그때와 다른 모습, 다른 곳에 데려다 놓았지만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미 군살이 붙고 여기저기 쑤시고 지병을 두 개 이상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해도 마음만은 스무 살 그때 그 감성이었다.

한창 대화에 몰입 중인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우리가 자주 갔던 호프집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긴 세월을 함께 해 오며 나의 좋은 점도 부족한 점도 잘 아는 오랜 친구의 말이 얼마나 힘이 되었던가. 세월의 강력한 힘에도 잊히지 않고 남는 건 끈끈함과 든든함이었다. 그 힘으로 20대의 불안함, 30대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지금에 무사히 안착한 것이 아닐까.

그 사이 누군가는 머리 수술을 받기도 하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했고, 실직 후 다시 재기하기도 했다. 긴 시간 구직을 하느라 친구들의 우려를 듣던 나와 다른 동기도 지금은 조직과 상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도 각자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철없이 해맑던 시절부터 삶의 무게를 떠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금까지, 함께 한 세월은 우리의 시간에 나이테처럼 켜켜이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결국 예정된 시간에서 한참 더 초과한 시간에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례식장을 나와서는 헤어지기 전에 모두 모여 손을 포개고 기합까지 넣었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합이 안 맞아서 두 번 만에 성공하고서야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모처럼 만난 기쁨에 이별의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친구 둘은 결국 부산까지 나들이를 했다.

2차로 마련한 자리에서 대화는 더욱 깊어졌다. 다들 예전 체력이 아니라서 술잔 대신 수다를 주고받았다. 가정, 육아, 일, 건강과 같은 마흔의 고민들이 오가고 한결 무거워진 앞날의 고민도 이어졌다. 이어서 오랜만에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최근 치열하게 고민 중인 문제를 꺼내들었다.

가만히 듣던 한 친구가 나와 관련된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남들 다 취업 준비할 때 교환학생 갔다 와서 휴학하고 알바해서 혼자 3개월 간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던 모습을. 나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친구가 기억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마흔의 고단함과 무게에 짓눌려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나였다. 부족하고 불안정했지만 꿈꾸고 행동하던 용감한 이십 대의 내가 친구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었다.

친구는 지금 고민도 나라면 그때의 용기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힘을 북돋워주었다. 한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마움과 동시에 뭉클했다.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나 사이에 놓인 세월의 간격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 자신을 잊고 산 세월을, 그 너머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40대의 시간에 필요한 것
 
세월 속에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고 예전 같은 체력과 열정도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추억 속의 새파란 우리들의 모습과 함께 나눈 뜨거운 우정이었다.
 세월 속에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고 예전 같은 체력과 열정도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추억 속의 새파란 우리들의 모습과 함께 나눈 뜨거운 우정이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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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말부터 관심을 기울인 재테크와 자기계발 책과 강의에서는 성공하려면 친구를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목적도 없이 모여 앉아 추억 팔이, 감성 팔이 하는 시간은 인생의 독이라는 것이다. 친구 만나는 게 쓸모없는 시간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고독한 시간에 자신을 벼를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40대가 되어보니 꼭 그게 정답인 것 같지만은 않다. 자신만의 시간도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친구의 무용론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였다고 옛날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지지는 않는다. 돈으로 환산된 숫자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드물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오랜 친구들뿐 아닐까?

서로 가진 것에 끌려서 우정을 쌓아온 것이 아니듯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 무슨 차가 있는지는 적어도 이 관계에서는 부차적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던 시절, 불안감을 서로 이겨내려고 밤새워 고민을 들어주고, 없는 주머니를 털어 학생식당 밥과 자판기 커피로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며 함께 버텨온 시간의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늦게 취업하고 결혼한 친구들도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마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연애와 구직 때문에 밤새 술잔을 기울였던 것이 무색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PD의 히트곡 '친구여'의 가사처럼 '우리들의 얘기로만 긴긴 밤이 지나도록' 미처 다 채울 수 없을 아쉬움은 다음으로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마주할 날은 몇 달 뒤일까, 몇 년 뒤일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헤어짐 앞에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세월 속에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고 예전 같은 체력과 열정도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추억 속의 새파란 우리들의 모습과 함께 나눈 뜨거운 우정이었다. 그 온기로 잠시 몸을 녹이고 다시 차가운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겠지만' 이 온기를 오래 간직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종종 생각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저만치 걸어가는 친구들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마흔으로 돌아갈 시간, 야심한 늦가을, 혼자 걷는 거리가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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