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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여영국 대표와 배진교 원내대표 등 의원 및 당직자, 당원들이 11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대회에서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와 배진교 원내대표 등 의원 및 당직자, 당원들이 11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대회에서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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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1년 11월, '개인의 기본적 인권 보호 및 인간의 존엄과 가치구현'을 기치로 내세우며 설립되었다. 지난 11월 25일 인권위 20주년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 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인권위원회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으며, "전 세계가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일도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하여 이만큼 진전된 입장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집권 4년 차인 시점에 나왔다는 사실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지난 4년 동안, 문재인 정부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충분했다

차별금지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노무현 정부 집권 시기였던 2007년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했으나, 좌절되었다. 그 이후 노회찬, 박은수, 김한길 의원 등에 의한 발의가 일곱 차례 있었지만, 반대에 부딪혀 폐기되거나 자진 철회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18대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던 2012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7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기독교계와의 만남에서는 입장이 크게 달라졌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간 진행한 한 대선토론회에선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 해 휩싸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차별금지법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회적 논쟁을 유발하는 내용'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에도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나 동성애에 대해 목회자들이 종교적 가치를 피력하는 것을 막는 법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교계 지도자들을 달랬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공격하는 보수 개신교계를 과하게 의식한 결과였다. 종교계의 우려처럼, 차별금지법이 호모포비아 발언을 모두 처벌한다는 것은 낭설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란 차별금지사유(성별, 성적 지향, 장애, 정치 성향, 인종, 민족, 학력 등)를 지정하고, 고용, 교육, 재화 용역의 이용 공급, 행정 서비스 등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막고자 하는 법안이다. 즉, 개인의 발언을 강제적으로 형사 처벌하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UN의 사회권위원회(2009), 여성차별철폐위원회(2011), 아동권리위원회, 인종차별위원회(2012), 자유권위원회(2015) 등 여러 기구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 하에 한참을 주저하는 동안에도, UN의 권고와 우려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변희수 하사에게 대답해야 할 때

그러나 올해는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라는 공기가 만들어졌다. 2020년 6월 인권위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시민 88.5%가 차별금지법 입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으며, 올해 6월 16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권인숙 의원 등을 포함한 24명의 여권 국회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평등법)'을 발의했다.

올해 6월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미온적인 정당인 국민의힘의 이준석 대표 역시 '차별금지법의 여러 조항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며,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이 직접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회에게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것일까. 일부 의원들이 꾸준히 입법을 추진하고 있고, 시민 사회의 열망도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여야는 사안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5일, 평등법 찬반 토론회를 주최하긴 했지만, 여야 간의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되지도 않은 상태다. 거대 정당이 장악한 법제사법위원회는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처리기한을 21대 국회의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했다. 법안에 대한 심의 없이 청원 심사의 기간을 늘린 것이다. 평등법의 대표 발의자인 이상민 의원은 법사위의 결정을 두고 '괘씸하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수 개신교계를 의식했던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차별금지법 발의에 이름을 올릴 때마다, 보수 개신교인들의 '전화 폭탄'이 줄을 잇는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지역구 내 종교 세력과 교인들의 표심을 무시하기 어렵다. 이상민 의원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전화 폭탄'과 '문자 폭탄' 등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전화 폭탄은 순간에 머물겠지만, 한국 사회의 진보는 역사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성원이 그 어떤 생득적, 후천적 차별 사유로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이며, 우리 사회가 근대성을 딛고 현대성으로 나아간다는 상징이다. 정기국회의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에'는 없다. 차별금지법은 임기 종료 6개월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과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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