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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법조일원화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사법개혁의 일환이자 핵심 과제로서 도입되었다.
 10년 전 법조일원화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사법개혁의 일환이자 핵심 과제로서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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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하나가 부결되었다.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되는 건 이례적이다. 문제의 법안은 법원조직법 개정안, 이른바 '법조일원화 완화' 법안이다.

법조일원화는 기존 시험성적 중심의 관료제적 법관 임용을 벗어나, 사회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법조인들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이다.

이를 위해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법조인들만을 법관으로 임용하여야 한다. 지금은 그 제도 완성을 위한 경과규정 중으로, 법적으로 올해까지는 최소 5년 이상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법관을 지원할 수 있고, 2022년부터는 최소 7년 이상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법관 지원이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2022년 이후로도 경력 5년만으로 법관을 지원할 수 있게 이 법을 바꾸려다 실패한 것이다. 법안 부결 후, 언론에는 내년 법관 충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이 크게 보도되었다. 이는 법원이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하며 내세운 핵심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며, 법원의 책임을 지우는 언사이다. 애초에 관행적으로, 관료적으로 법관을 임용해왔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개혁인 만큼 현실에서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은 법 개정 당시부터 이미 예상되었던 바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감안해서 무려 법 개정부터 완성까지 13년에 달하는 중간 유예기간(2013년~2026년)을 둔 것이다. 이 13년은 법이 법원에 준 준비기간이었고, 법원은 그 준비기간동안 경력 법조인들을 충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법원은 과연 지난 시간동안 그 노력을 충실히 했을까?

법원이 개혁에 저항하는 방법

10년 전 법조일원화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사법개혁의 일환이자 핵심 과제로서 도입되었다. 과거에는 판사를 뽑을 때 오직 시험성적만을 보고 뽑았다. 법률가로서 시민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활동한 관록 있는 변호사들조차 순혈주의를 고집한 법원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무경력, 저연차 엘리트들로 충원되어 관료화된 법원은 점점 시민들과 괴리되어 갔으며, 법원은 기수문화 및 승진시스템 등 관료조직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인사제도를 통해 법관 관료화를 부추겼다. 법조일원화는 바로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즉 사회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아 검증받은 법조인들을 법관으로 충원해 관료화와 기수문화를 타파하고, 재판받는 시민들과의 소통 강화로 판결의 신뢰도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신규법관 임용 결과로 확인되는 실상은 이런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못한다. 법조일원화가 명문화된 2012년 이래 법원의 법관 임용 행태는 한마디로 '최대한 경력 없는, 최대한 법원 내부 엘리트 출신으로'로 요약된다. 법조일원화의 취지와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뽑아온 것이다. 

2013년 처음으로 법조경력 3년 이상 규정이 적용된 해, 법원이 뽑은 최종 합격자 103명중 과반을 넘는 54명이 3년 경력 법관이었다. 이듬해에는 82명 중 51명이, 그 다음해에는 115명 중 88명이 3년차였다. 거의 80%에 육박하는 비중이었다. 2018년부터는 5년 이상 경력자들로 뽑아야 했는데, 여지없이 법원은 5년 법조인들 중심으로 뽑기 시작했다. 2018년 최종 38명의 신규 법관 중 20명이 5년 경력자였고, 2019년에는 82명 중 43명이, 2020년에는 158명중 109명이 5년경력자였다. 그리고 올해 2021년에는 최종 합격자 157명 중 112명이 5년경력이다. 이는 70%를 넘는 비중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최소 3년이상 경력자를,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경력자를 임용해야 한다. 법원이 매년 법이 허용하는 최소경력 중심으로만 법관을 임용한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 법조일원화 도입 이후 법조경력별 임용 비중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최소 3년이상 경력자를,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경력자를 임용해야 한다. 법원이 매년 법이 허용하는 최소경력 중심으로만 법관을 임용한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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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만이 아니라 출신도 문제다. 지난 10년간 임용된 신규 법관의 대부분은 군 법무관이나 국선변호사,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이었다. 군 법무관 출신은 경력 3년 규정이 적용되었던 2013년~2017년 동안 신규 법관의 무려 절반 이상(50.4%)을 차지했다. 로클럭(재판연구원) 출신과 국선변호사 출신도 12%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의 법조경험이 부족한, 이른바 법원 '순혈'이라는 점에 있다. 법무관은 군 법원에 속해 기껏해야 1년 10여 건의 군사재판 경험을 하고, 그 특성상 다루는 사건의 성격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로클럭과 국선변호사는 법원 안에서 법원에 고용 혹은 채용되어 일하는 직종이다. 법원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검증된 법조인이라는 법조일원화의 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2018년부터 법원은 현역 단기 법무관 전역예정자들에게 로클럭 지원 기회를 주면서, '법무관 3년-로클럭 2년-바로 법관 임용'이라는 신종 법관 지원 공식까지 만들었다. 실제로 2020년 이후 다시 임명되기 시작한 로클럭 출신들은 대부분 이런 코스를 거쳐 법관에 지원했다.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의 맹점과 한계를 이용해 최대한 취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개혁에 저항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법관 내 순혈주의를 유지하려는 의도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법원은 법조경력이 5년으로 상향되기 전까지는 줄곧 과반 이상을 법무관 및 국선변호사와 로클럭 등 외부경력이 없는 법조인 중심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최소경력의 상향으로 외부 변호사출신들도 점차 증가한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 법조일원화 도입 이후 신규 법관의 출신 분포 법원은 법조경력이 5년으로 상향되기 전까지는 줄곧 과반 이상을 법무관 및 국선변호사와 로클럭 등 외부경력이 없는 법조인 중심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최소경력의 상향으로 외부 변호사출신들도 점차 증가한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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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년 규정을 앞두고 법원은 법 개정을 요구했을까

이 역시 지금까지 신규법관의 주류를 차지해온 직역들의 특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쉽게 말해 2022년부로 법관 임용시 요구되는 최소 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되게 되면, 더이상 기존 관행대로 법원 밖에서의 법조 경험이 없는 사람을 법관으로 뽑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출신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단기 군 법무관은 애초에 병역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법무관 생활 만으로는 3년의 경력 밖에 채울 수 없다. 법원이 로클럭 지원 기회를 열어주었지만,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 로클럭 임기까지 모두 채워도 내년 최소 요건인 7년에서 1년이 모자라 법관으로 뽑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법무관 출신이나 로클럭 출신들도 최소 1년 이상 변호사나 다른 법조 경력을 쌓지 않고서는 법관으로 지원할 수 없게 된다. 즉 법원 입장에서는 더이상 사회경험 없는 법조인들을 신규 법관으로 충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법원은 이러한 과정에 발맞추어 외부 법조인을 충원할 방법을 고민하기는커녕, 국회에 로비를 해서 아예 법 자체를 바꾸려 했다. 역설적으로 이는 법조일원화가 원칙을 지키며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법 개혁, 법원에게만 맡길 수 없다

최소 요구 경력을 5년으로 고정해달라는 법개정을 요구하면서 법원은 이것이 법조일원화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위원회를 만들어 경험 많은 법조인을 뽑을 방법을 논의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게 법원의 진심이라면 왜 지난 10년이란 세월 동안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견 법조인들이 법관직에 매력을 못 느껴 지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법원이야말로 그간 진지하게 법관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상술했듯 로클럭의 임기를 늘리고, 법무관들에게 로클럭 지원 기회를 열어주는 등 기존 관행대로의 법관 인선을 최대한 연장하려는 노력만 보였을 뿐이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법조인들이 법관이 되고, 이들이 법원 주류를 교체하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나면 법원의 체질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시험 엘리트 법관들이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관료 조직이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해본 경험과 프라이드를 바탕으로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이면서 독립된 법관들의 총합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0여년 전 사법개혁 논의가 목표했던 길이며, 시민들이 신뢰할만한 사법부가 생겨나는 길이고, 법조일원화의 원칙을 지켜야 할 이유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사법개혁 자체가 여러가지 개혁과제가 맞물려 있는 만큼, 해결해야 할 여러 현실적인 요건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법관 임용 심사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과거처럼 시험문제만 잘 푸는 능력이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하는 능력,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감수성, 기득권이나 권력자들에게 치우쳐지지 않는 공정성을 중심으로 심사 및 선발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그런 역량과 경험을 갖춘 법조인들이 법관에 지원할 수 있도록 법관 근무조건도 개선해나가야 한다. 

지속적이고 다각도적인 사법개혁만이 법원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법원만이 아닌 국회와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만 한다. 사법서비스의 수요자는 국민이고, 사법개혁 또한 법원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참여연대는 지난 11월 24일, 이슈리포트 '법조일원화 10년, 법관 임용 실태와 문제점'을 통해 지난 10년간 법원의 신규 법관 임용 행태를 분석했습니다. 본 기사의 수치 및 근거는 해당 이슈리포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슈리포트 보러가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김태일 간사입니다.


태그:#사법개혁, #법조일원화, #참여연대, #경력법관제, #법원조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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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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