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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40대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오래간만에 친구들과의 회포
▲ 친구와의 술자리 오래간만에 친구들과의 회포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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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올해 들어 첫 모임이었다. 거의 1년 만이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만날 엄두를 못 내다가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면서 다행히 약속을 잡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벌써 알고 지낸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스무 살의 파릇했던 모습에서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배도 불룩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네 명이 만나는데, A란 친구는 사는 곳이 멀어서 10분 정도 늦는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시내로 나갔는데,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스크만 썼을 뿐이지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적당한 횟집에 자리를 잡고, 먼저 온 친구들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분 탓인지 다들 몇 년은 늙어 보였다. 살도 좀 찐 것 같고, 코로나가 활력을 모두 앗아간 듯 보였다.  

10kg가량 감량한 친구가 나타났다

소주잔을 오가며 서서히 분위기를 올릴 때쯤 A가 도착했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온 줄 알았다. 딱 보아도 살이 5kg 이상은 빠진 것 같았다. 늘 셔츠를 뚫고 나올 것 같은 뱃살은 온 데 같이 없었고, 후덕한 턱선은 닿으면 벨 것 같이 날카롭게 변했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건넸다. 하지만 눈길도 보내지 않고, 안 마신다며 옆으로 치우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몹시 궁금했다.

A는 우리가 묻기도 전에 담담히 본인 이야기를 꺼냈다. 두 달 전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모두 수치가 좋지 못했고, 특히 고혈압 직전의 수치여서 식이요법 등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약을 먹어야 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고 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부터 독하게 건강 관리를 했다고.

우선 맵고, 짠 음식을 멀리하고, 습관처럼 먹었던 야식도 끊었다. 더구나 술고래가 금주도 시작했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나고 나니 살이 급속도로 빠졌고, 지금은 10kg가량 감량을 했다고 했다. 매운탕 국물에서 생선 살만 쏙쏙 발라내는 모습에 내가 알던 친구가 맞나 싶었다. 

A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건강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얼마 전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라 다초점 안경을 맞추었다는 B, 이미 고혈압을 진단받아 약을 먹고 있는 C, 벌써 5년 전부터 고지혈증약과 통풍약을 복용하고 있는 나까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몸에 대해 성토를 했다.  

한편 이렇게 건강이 우리 술자리의 주된 화제가 된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전까지 크게 건강에 관해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냥 스치듯 건강 잘 챙기자는 말만 오갔었다. 우리도 이제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된 것인가. 슬픔이 가슴 속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양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친구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문득 철없던 시절의 그때가 떠올랐다. 

20대, 30대를 거쳐 40대 우리들 이야기 

20대 때는 주로 연애 이야기,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불투명한 미래, 험난한 취업 문, 고된 회사 생활이 주된 안줏거리가 되었다. 어찌 보면 가장 많이 실패를 반복했던 시기였는데, 젊음이란 무기로 넘어져도 꿋꿋하게 일어섰다. 친구와의 만남도 잦았고, 싱싱한 간은 미친 듯 부어라 마셔라 해도 금세 회복을 선사했다. 아마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에 비슷한 처지의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듯하다.
                   
30대는 결혼이 가장 큰 화두였다. 하나둘 결혼을 하면서부터 만남이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어쩌다 만날 때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주된 대화는 답이 없는 결혼 생활, 육아, 더욱 고된 회사 생활이었다.

20대의 흥겨움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본격적인 삶의 참모습을 소주잔에 담아 마셨다.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감도 느꼈다. 20대 때는 모두가 찌질했다면 이때부터 조금씩 회사의 수준, 집 평수, 자동차의 종류 등으로 서로간의 격차를 인식하기도 했다.  

40대는 '안정'이란 단어가 조금씩 그 자리를 채워갔다. 물론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하고, 불투명한 유리처럼 흐릿했다. 회사에서는 중간 이상의 위치가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면 요즘 신입 사원은 어떠니, MZ 세대는 다르다느니 하는 것 보면 우리도 이제 꼰대가 되어가나 싶다.

젊은 시절 우리의 주된 이야깃거리는 더는 입에 오르지 않았다. 대화의 초점이 나 자신에게로 다시 향하는 듯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어두워지다가도 골프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다가 건강 이야기로 시무룩해지고, 정치 이야기로 분노를 표출하는 등 전형적인 아저씨들 모습을 닮아갔다.

우리는 늘 그 자리에서 그대로일 것 같았는데 세월의 화살은 피할 수 없었다. 시간 흐름 속에서 함께 차곡차곡 나이를 쌓아갔다. 하지만 친구가 있었기에 의지할 수 있었고, 그 길이 덜 외로웠다.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서도 그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겠지. 삶이 뭐 별거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자는 친구
 
친구는 삶의 굽이마다 버팀목이 되어준다.
▲ 친구 친구는 삶의 굽이마다 버팀목이 되어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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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2차를 크게 외치던 C는 슬쩍 A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냥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다들 의아해했지만,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 같이 밖으로 나가 근처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답도 없는 정치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수다 꽃을 피웠다.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던 중 불쑥 A가 한마디를 던졌다. 

"다들 아프지 말고. 건강 관리 잘 해. 우리 오래오래 만나야지." 

평소 감정 표현도 없고, 무심한 녀석이 툭 하고 던진 한 마디가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가슴속에 머물렀다. 친구 말이 맞았다. 건강해야 오래도록 만나지. 이제 이런 인사말을 한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단순히 술 한 잔하면서 허허실실한 존개가 아니라 삶의 굽이마다 힘들 땐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함께 넘어온 전우들이었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이라도 얼굴 보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얼마나 익숙하고 마음 편한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도 그 자리에선 숨 쉬듯 나왔다. 그 오랜 세월이 서로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거친 삶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친구의 바람처럼 건강도 잘 챙기면서 이 좋은 인연 오래오래 이어갔으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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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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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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