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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노동자·빈민·민중들을 위해 헌신해 온 대전 대덕구 대화동 빈들장로교회 김규복 목사(69)가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받았다. 그는 1980년 12월 15일 군검찰에 의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었다.
 평생을 노동자·빈민·민중들을 위해 헌신해 온 대전 대덕구 대화동 빈들장로교회 김규복 목사(69)가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받았다. 그는 1980년 12월 15일 군검찰에 의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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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동안 5.18정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때와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피고인에게 검찰은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장에 요청했다.

25일 오전 대전지법 317호 법정(형사8단독 차주희 판사)에서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에 대한 재심이 열렸다. 김 목사가 1981년 계엄법·포고령 위반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지 40년 만의 일이다.

1971년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김 목사는 입학하던 해 진보적 동아리 '한국문제연구회'에 가입하면서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3년 9월 김대중 납치사건에 관한 유인물을 뿌렸다는 혐의로 서대문경찰서에서 약 2주간 가혹한 고문을 당해 학업을 포기한 채 6개월 동안 자가치료를 해야 했다.

1975년 봄에는 대정부투쟁 주동자로 체포되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강제 입영에 의해 군대를 다녀온 후 1979년 복학,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이후 도피생활 중 체포되어 1980년 12월 15일 군검찰에 의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구치소에서 60일 만에 출소했다.

옥중에서 김 목사는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 신학자인 본회퍼의 저서들과 신구약 성경을 읽고 신학을 결심했다. 대전신학대학교와 장로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 빈들장로교회를 개척, 노동자·빈민·민중들을 위한 목회를 해왔다.

올해 3월 대전지검은 김 목사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대전지법 차주희 부장판사가 재심 개시를 결정함으로써 이날 재판이 열리게 됐다.

이날 재판에서 김 목사는 "당시 전두환씨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위를 주도했다. 그리고 결국은 5.18까지 연장됐다"며 "저로서는 당시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했고, 그 이후에도 5.18정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저는 만약 다시 그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그 때와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진정 이 나라가 참된 민주화가 되고, 민중들이 존중되는 세상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술이 끝난 뒤 검찰은 구형을 요구하는 재판장에게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달라"고 밝혔다.

김 목사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12월 9일 오후 1시 55분 317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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