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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 누구나 늙고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내 부모가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설득당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치매와 늙음 등에 대해 깊고 따스한 받아들임의 경지(?)에 이른, 주로 책을 통해 접했던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덜컹거리는 과정들을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특별함이라면, 이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강고한 틀을 부수고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함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낯설고 혼란스러워진, 그래서 이 현실로부터 유배되었다고 느끼는 치매환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치매를 통해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새김질하는 저자의 사유를 함께 따라가는 길이 따뜻했다.
▲ <유배주인 나의 왕>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낯설고 혼란스러워진, 그래서 이 현실로부터 유배되었다고 느끼는 치매환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치매를 통해 우리 사회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새김질하는 저자의 사유를 함께 따라가는 길이 따뜻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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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오스트리아 작가인 아르노 가이거의 <유배 중인 나의 왕>을 읽었다. 약 15년 간 치매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처음에 저자는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린 무기력해 보이는 아버지를 향해, 화를 내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빈정거렸다. 제발 정신 좀 바짝 차리라며 아버지를 다그쳐댔다.

한참이 지나 아버지가 보이는 여러 행동들이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서 될 일이 아님을, 상상도 못했던 일이 아버지에게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를 비난하고 교정하려는 데 집중했던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어설픈'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마치 살아있는 듯이 말하는 아버지, 50여 년 전 스스로 짓고 쭉 살아온 자신의 집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집에 가야겠다는 말을 5분마다 반복하는 아버지, 이런 부모에게 우린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우리 대부분은 사실을 '제대로' 인식시키려는 의지에 불타서 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화와 짜증으로 그 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제 저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이 집이 당신의 집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자문해본다.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죽은 이들을 조금씩 살려내면서 죽음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중이었음을 받아들인다. 또한 집에 간다고 할 때 그 말에는 낯설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염원이 담겨있음을 몇 년 만에 알아차린다. 그렇게 아버지는 유배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아픈 공감과 함께 둘의 관계도 이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달라진다. 서로의 뺨을 손으로 만지고, 어깨를 걸고 손을 잡으며,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유난히 농밀해지는 행복'이라고 당시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이야기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다. 병원에 의식불명 상태로 3년간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간병했던 딸이 자신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그 간병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글을 읽으며 '도대체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였던 걸까?'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녀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결코 짧지도 쉽지도 않았을 그녀의 시간 역시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유난히 농밀해지는 행복'의 시간이었을까? 남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전혀 안 되는 둘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오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도, 함께 살아가는 내 어머니에 대해, 나에 대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더듬더듬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의 늙어감에 대해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늙어가는 우리네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어설프고 쉽지 않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대치, '~해야 한다'는 나의 사고의 틀 때문에 화와 짜증이 벌컥 일어나는 순간들을 겪는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목표지향적인 우리 사회'에 잘 길들여진 존재임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득 문득 확인한다. 그렇게 어머니라는 거울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냉정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많은 순간들과 그 속에 묻어있는 삶의 진실들이 내 가슴에 잔잔한 파문들로 남아있다. 여기서 다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 질문이 가진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자신이 가졌던 습관적 신념체계에 대해 '과연 그럴까?'라고 돌아보는 질문, 타인을 다그치는 질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질문, 이런 열린 질문은 목표, 성장, 발전 등 삶의 한 단면만이 삶인 양 이야기되는 기우뚱한 우리 삶을 균형과 여유의 길로 이끌어줄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무실래요?'라는 질문과 '주무실 시간이에요'라는 정답 같은 말에 차이를 보이는 주인공의 반응은 질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이고도 단순한 예이다. 이것은 단지 치매환자에게서 드러나는 특수성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서 받고 싶은 대접일 것이며, 치매환자의 경우는 보통 그 반응이 좀 더 솔직하고 직접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인 것 같다.

불안하고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삶이라는 길 위에서 질문할 여유와 솔직할 용기를 조금씩 배우며 오늘도 어슬렁거려 보련다~!

유배중인 나의 왕

아르노 가이거 (지은이), 김인순 (옮긴이), 문학동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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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을 지리산 자락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멀리 한라산과 가까이 파란 바다를 보며 지낸다. 아직은 조금 비현실적인 듯한 풍경들 속에서 이사와 정리와 청소로 이어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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