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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고 책 제목과 한 줄 느낌을 써오는 숙제를 내줬다. 자연스러운 하루 일과로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고, 짧게라도 자신의 언어로 자기 생각을 꾸준히 표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내준 숙제였다. 우리반에 한 아이는 이 숙제를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한 번도 빠짐 없이 성심성의껏 해왔다. 아이 공책에는 조금 남다른 점이 있었다.

공책을 펼치면 아이가 쓴 글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항상 아이 글 아래에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아이 엄마가 써주신 것이었다. 엄마는 아이 글을 읽고 난 소감이나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한두 줄 정도로 써주셨다. 나는 숙제 검사를 할 때마다 매번 아이의 글과 엄마의 댓글을 함께 읽었다. 세로획의 끝을 살짝 꺾어 정성스럽게 썼던 아이 글씨와 크고 시원시원했던 엄마 필체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학부모님이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자녀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 아이 학습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엄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부모님은 꽤 바쁜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이었다. 나는 상담 기간에 학부모님을 뵙게 되었을 때 아이 글에 댓글을 써주시는 어머님의 노력을 언급하며 존경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학부모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겸손한 어투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는 딱 그것만 해요. 평소 일이 많아 아이를 제대로 잘 챙겨주지 못해요. 저도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선생님 교육방침도 그러하신 것 같아 다른 건 못 해줘도 이것만은 하자고 마음먹고 하는 거예요."

학기 초 발표를 시키면 눈물부터 그렁그렁 맺히던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점차 바뀌어 갔다. 표정이 편안해지고, 먼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와서 말을 건네기도 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까르르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좋아했고 누구보다 학교생활을 즐거워했다.

달라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한 줄 정도만 써도 되는 숙제였는데도 아이 글은 점점 길어졌다.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아이의 생각은 깊어지고 표현은 풍부해졌다. 아이는 수시로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고, 언제나 가방에는 읽고 싶은 책을 넣어 다녔다.
 
아이 독서록입니다.
 아이 독서록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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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탄탄한 독서 습관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그중 엄마의 댓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댓글을 통해 아이에게 관심과 응원을 끊임없이 보냈다.

이것은 아이가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데 충분했고 결국 아이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나는 '댓글 달아주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와 함께 발맞추어 나가며 힘이 되어주는 부모의 역할과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교사이자 2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직장생활로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반 아이들을 챙기는 것만큼 내 아이를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로서 빼놓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다.

아이가 학교 숙제로 매일 쓰는 짧은 독서록에 댓글을 달아주는 일이다. 날마다 꼬박꼬박하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 독서록을 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필사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건 댓글 한 줄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독서록에 댓글을 달아줍니다.
 아이의 독서록에 댓글을 달아줍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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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댓글은 무엇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나는 일단 힘을 빼고 부담 없이 쓰려고 했다. 부모로서 그럴듯한 말을 멋지게 해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일상에서 대화하듯, 문자를 주고받듯, 편하게 썼다.

작은 것이라도 아이의 생각과 표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아이가 쓴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쓰기도 했다. 책을 가운데 놓고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기에 할 이야기는 자연스레 많았다. 다음은 내가 아이 독서록에 남긴 댓글들이다.

"엄마도 이 책 읽고 너무 감동 받았어. 도현이랑 나란히 누워 매일 읽고 싶은 책이야."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살고, 다음 세대에게 100년을 넘겨준다는 도현이 생각이 너무 훌륭하다. 도현이는 어른보다 깊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들기 전, 가필드 책을 펼치는 도현. 그렇게 재밌니?"
"좋아하는 것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네. 사진과 상상이라니! 도현이는 행복해지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아이야."


댓글의 핵심은 가르침이 아니라 사랑과 지지의 표현이다. 댓글은 아이에게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자기 생각을 존중해준다는 의미로 가닿아야 한다. 사실 댓글은 그저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 응원을 전하는 통로의 역할만 해도 좋다.

아이 글 아래 '잘했어', '열심히 했구나', '수고했어', '멋지다', '사랑해', '네가 자랑스러워' 등의 문장을 부모의 손글씨로 적어주기만 해도 아이 마음에는 사랑이 스며들어 안정감을 느끼고 아이의 자존감은 올라간다.

나는 몇 달 전 서울대생의 인터뷰 기사 '나는 왜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불행했나'를 보다가 크게 공감되는 말이 있어 메모장에 따로 적어둔 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학습 코치가 아닌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었다.

인터뷰이는 자녀 입장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부모의 역할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와 학부모를 만나본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그렇다. 부모의 따뜻하고 다정한 응원만큼 아이에게 좋은 교육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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