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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유족(산내학살사건유족회장). 그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살해한 당시 군인과 검찰도 밉지만, 반환소송에 가압류까지 하며 5년 동안 괴롭혀온 육군본부와 검찰도 못지않게 밉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미경 유족(산내학살사건유족회장). 그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살해한 당시 군인과 검찰도 밉지만, 반환소송에 가압류까지 하며 5년 동안 괴롭혀온 육군본부와 검찰도 못지않게 밉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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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금과 형사보상금을 함께 지급받았더라도 이중지급이 아니다'

1950년 군경의 민간인집단학살로 인해 사망한 유족에게 국가배상금과 형사보상금이 함께 지급됐더라도 이중지급이 아니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는 25일 오전 육군본부와 검찰이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사건 유족인 전미경 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환수 소송에서 형사보상금은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전 씨는 2013년 재심을 통해 6.25 전쟁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부친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전 씨의 부친(고 전재흥, 당시 24세)은 6.25 전쟁 당시인 1951년 2월 21일 당시 우익인사인 나 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판결 12일 만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유족인 전 씨는 지난 2013년 소송에서 부친이 나 씨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자료를 제출, 뒤늦게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부친이 1950년 7월 10일 나 씨를 살해했다고 했지만 정작 나 씨는 두 달 후인 같은 해 9월 28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또 나 씨가 사망 시점에 전 씨의 부친은 그 마을에 살지도 않았다.

법원은 당시 경찰의 고문과 가혹 행위를 통한 자백만으로 유죄가 인정됐다며 유족에게 형사보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무죄 판결로 받은 민사 배상액은 1억 600여만 원, 형사보상금은 3700여만 원이다.

잘못된 판결에 따른 목숨값은 모두 1억 9700여만 원에 불과했지만, 육군본부와 검찰은 지난 2016년 뒤늦게 '국가 배상금과 형사보상금은 이중지급되어서는 안 된다'며 형사보상금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육군본부와 검찰은 또 환수금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유족인 전 씨의 집과 토지를 가압류해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기까지 했다.

전 씨는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군·검에 의해 처형된 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며 " 그런데 목숨값으로 받은 꼴랑 몇천만 원까지 내놓으라고 소송을 제기하고 온 집안에 빨건 딱지를 붙어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누명으로 총살을 당해 유해도 찾지 못한 채 골령골에서 70년 넘도록 방치돼 왔다"며 " 형사보상금은 물론 국가배상금까지 다 내놓을 테니 아버지를 살려내라"고 하소연해 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이날 최종 '국가배상금 외에 지급된 형사보상금은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며 전 씨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전 씨는 이날 대법원 승소 판결 직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결국 육군본부와 검찰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가 아닌 소송을 안겨줬다"며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살해한 당시 군인과 검찰도 밉지만, 반환소송에 가압류까지 하며 5년 동안 괴롭혀온 육군본부와 검찰도 못지않게 밉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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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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