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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작은 카페가 새로 생겼다. 카페 테라스에는 아직도 축하 문구가 커다랗게 적힌 화환이 놓여 있다. 생화는 몇 송이만 사용하고 대부분 조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몇 달이 지나도 처음과 비슷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볼품없어진 화환이 카페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나는 이제 그만 치웠으면 좋겠는데 주인은 카페 오픈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모양이다.

역시 개업 축하용으로 들어온 서양란이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 분홍빛의 고운 꽃을 피운 상태여서 카페 안으로 들여놓고 한참 꽃을 즐기면서 키워도 될 법한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선물용으로 들어온 서양란은 꽃이 지고 나면 영락없이 폐기처분 되는 신세다. 그나마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길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서양란은 키우기 어렵다?

서양란을 반려식물로 키우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특별한 날 선물을 주고받는 용도로 쓰이다보니까 내가 직접 선택해서 키우는 건 드물다. 독특하고 뚜렷한 개성 때문에 마니아층은 형성되어 있다. 희귀한 난을 찾아 농장 투어를 하거나 원종을 사서 모으는 수집가는 일부다. 일반적으로 서양란이라고 하면 값이 비쌀 거라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꽃이고, 키우기 어렵다는 고정 관념이 강하다.
 
서양란은 품종이 광범위하다. 독특한 색감과 모습을 지닌 희귀한 상품을 찾는 마니아층도 있다. 이 꽃은 파피오페딜룸이다.
 서양란은 품종이 광범위하다. 독특한 색감과 모습을 지닌 희귀한 상품을 찾는 마니아층도 있다. 이 꽃은 파피오페딜룸이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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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이 되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서양란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다. 다른 반려식물과 비교해 봐도 그럭저럭 중간쯤 되는 가격대다. 비싼 화기를 사용하거나 고급스러운 포장, 장식이 들어간 경우에는 가격이 올라가지만 식물 자체의 가격은 비싸지 않은 편이다. 호접란의 경우 한 포트에 만 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서양란이라고 하면 무조건 크기가 크고 꽃망울이 주렁주렁 달린 화려한 모습이 최고였다. 개업이나 승진, 축하 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화분도 큰 것을 선택해 화환과 경쟁할 정도로 몸집을 부풀렸고 리본도 큼직하게 달았다. 그러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면서 크고 비싼 서양란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크기에 집착하는 서양란의 시대는 저물었다. 식물이나 꽃 상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기를 얻기도 하고 속수무책으로 떠밀려 나기도 한다. 식물의 드라마는 조용하지만 격렬하다. 서양란은 크기를 버리고 우리 곁에 가까이 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꽃이다.

사이즈를 최대한 줄여서 너무 크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집에서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생활밀착형 스토리가 필요해졌다. 특히 미니호접란은 크기가 반으로 줄어드니까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 든다.

서양란은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주로 유럽에서 개량되었다. 인공교배종이 많아 700속 25,000종이 알려져 있다. 극지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계의 대가족이다. 추위에 강했다면 모든 대륙에서 자라는 식물군이 되었을 것이다. 흔히 동양란은 향이 있고 서양란은 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서양란 중에도 향이 나는 식물이 많다. 

착생식물이어서 일반적인 흙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껍질이나 이끼, 푸석푸석한 토양에서 자란다. 아예 공중에서 뿌리를 드러낸 채 자라는 반다라는 품종도 있다. 추위에 약한 것과 착생식물이란 것만 숙지하고 있어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그늘지고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적당한 바람도 필요하다.

사망하는 이유 1위는 과습이다. 예전에는 서양란을 심을 때 나무껍질을 자주 사용했는데 요즘에는 수태를 선호한다. 주의할 점은 한 번 물을 주면 수태가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물 주는 시기를 길게 잡아야 한다.

아주 서서히 죽어가서 눈치 채기 힘든데 어느 순간 잎이 물컹해지면서 맥없이 쑥 뽑힌다. 내가 잎을 쏙쏙 뽑아본 경험이 제법 있다. 잎 표면의 쭈글거리는 형태를 보고 이쯤 되면 뽑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늘 적중하곤 했다. 꽃과 잎에도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물 주는 호흡만 딱딱 맞춰도 키우는 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적당한 무심함이 필요한 호접란

서양란 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품종이 호접란이다. 나비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고 행복이 날아든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호접란은 차분하고 전통적인 공간에는 찰떡으로 잘 어울리고 막상 들여놓으면 모던한 공간이든, 빈티지 공간이든 어디든 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좀 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초록식물에 익숙하다면 화려한 색감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연한 색이나 흰색 정도는 괜찮다. 개량한복을 입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첫 나들이는 경복궁으로 시작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동네 공원에도 가고, 카페에도 자연스럽게 다니게 된다. 서양란도 첫 시작은 낯설지만 몇 번 보면 익숙하고 편안해진다.
 
 우리가 자주 보는 호접란의 모습이다. 겨울에 보는 화사한 색감은 기분 좋다.
  우리가 자주 보는 호접란의 모습이다. 겨울에 보는 화사한 색감은 기분 좋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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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란은 대표적으로 꽃을 즐기는 식물이다.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신난다. 두툼한 잎들은 아래쪽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고 주욱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진한 자주색이나 분홍색, 노랑색, 큼직하고 화려한 색감의 꽃을 피우는데 봉오리 때부터 탄탄한 느낌을 준다. 활짝 피어난 모습으로 세 달 정도까지 꽃을 볼 수 있다. 꽃잎도 단단한 편인데 마치 펄을 바른 것처럼 광이 난다. 얼굴이 큰 편이라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지지대를 세워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나는 호접란을 키울 때마다 꽃이 지고 난 뒤가 문제였다. 우아한 꽃을 당연하듯 바라보다가 꽃이 다 지고 나서 잎만 덜렁 남으니 정말 밋밋해졌다. 봐줄 만한 게 별로 없다. 화려했던 만큼 꽃이 진 빈자리가 컸다. 어쩌겠는가. 꽃대를 싹둑 자른 뒤 초록식물들 틈에 적당하게 자리를 잡아주고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물을 주곤 했다.

적당한 무심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거의 반년이 지났을 때 초록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꽃대가 고개를 슥 내밀었다. 뿌리도 거의 함께 꿈틀거리면서 돋아났다. 죽은 날짜 받아놓은 것처럼 방치해 둔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꽃망울이 몽글몽글 맺혔다. 거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 한 번의 경험이 너무 짜릿했다. 늘 죽이기만 하다가 그런 반전을 겪다니. 호접란을 다시 본 계기가 되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다가 때가 되면 이게 바로 나다, 본모습을 드러내는 엄청난 생명력. 단단한 한방이 있는 녀석이다. 올 겨울에는 노랑색 호접란을 들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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