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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미국 평화봉사단 단원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왼쪽부터).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미국 평화봉사단 단원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왼쪽부터).
ⓒ 당사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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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자유인의 상태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가 죽었을 때 감옥에 있길 바랐다."

"1980년 그의 행동은 너무나 많은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그 고통과 죽음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전두환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전두환 당신은 내게 '고이 잠드소서, 전두환 장군(Rest in Peace, General Chun)'이란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던 외국인들은 '학살자' 전두환씨의 죽음에 이와 같은 평가를 내놨다. <오마이뉴스>는 1970~1980년대 미국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었던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와 전씨가 사망한 23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관련 기사] 5.18 40주년 특집-이방인의 증언 http://omn.kr/1pv4d )

"다신 그런 일 없도록 역사 기억해야"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Covert Action>에 실리기도 했다.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에 실리기도 했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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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돌린저는 1980년 5.18 때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돕고, 자신도 직접 사진을 찍어 외부에 전달한 인물이다. 그는 "5.18과 잔혹한 독재의 희생자, 그리고 한국의 국민들을 생각해 봤을 때 (전씨가 사죄와 고백도 없이 죽은 건) 공정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5.18의 진실은 대한민국과 세계 시민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고, 전씨는 민주주의를 향한 광주와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계속 목격했어야 했다"라며 "그의 만행으로 혜택을 본 사람들이 누군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5.18과 잔혹한 독재의 희생자들을 위한 충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전씨가 (무기징역 선고 후 사면돼)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살도록 허락되지 않았어야 하는, 그와 그의 정권이 국민들에게 한 짓을 반성하며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어야 하는 이유다"라며 "우리는 그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그 과정과 역사를 기억해야 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1971~1974년 광주에서 활동한 도널드 베이커는 1980년엔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던 중 광주의 소식을 듣고 곧장 이동해 5월 27일 5.18 마지막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현재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전씨가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했다면 나는 조금이나마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을 것이다"라며 "화장실 가는 길에 쓰러져 죽었다는 건 안타깝지만, 그가 자신의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고통 받던 국민들에게 사죄하지 않았으니 나 역시 굳이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나주에서 일하고 있었던 폴 코트라이트 역시 5.18 당시 광주 시내 곳곳을 다니며 참상을 목격했고, 당시의 경험을 담아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 (Witness Gwangju)>을 쓰기도 했다. 그도 "전씨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광주·전남 사람들에게 사죄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의 모습은 너무도 부적절했다"라고 비판했다.

"아름다운 천에 묻은 얼룩,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것"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주디스 챔벌레인,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주디스 챔벌레인,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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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광주시민과 한국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요청했다. 아래는 이에 대한 그들의 답변이다.

- 도널드 베이커 "나는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한다. 때문에 광주의 친구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사는 최종 심판관이다. 전씨는 1980년 짧은 승리를 거뒀을지 모르지만, 불명예스럽게 죽었고 대한민국이란 아름다운 천에 묻은 얼룩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반면 여러분은 그가 여러분으로부터 빼앗으려 했던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되찾았다. 광주시민, 그리고 한국의 모든 국민들은 최후의 승리자이며, 여러분은 이 점을 확신해도 된다."

- 데이비드 돌린저 "5.18 학살의 주범이 죽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제 더욱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실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 전씨의 죽음은 5.18 이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그리고 5.18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빨리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 폴 코트라이트 "광주의 정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그것은 회복력과 자부심, 연민이 깃들어 있는 정신이다. 전씨는 이제 '과거사'이지만 광주의 정신은 한국인들 사이에 여전히 살아 있고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 정신을 한국뿐만 아니라 미얀마와 같이 멀리 떨어진 이들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 구상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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