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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안내판 지도를 놓고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 여덟 곳을 설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안내판 지도를 놓고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 여덟 곳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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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자리가 가장 많이 희생된 제1학살지, 그리고 저 도로에 지금 차가 올라가고 있는 것 보이죠? 저 지점에서 시작해 200m를 달리면 그 200m 구간이 또 하나의 구간인데, 그곳이 2학살지입니다. 아까 시작한 지점에서 지금 차가 달리고 있는 예, 저기까지…"

도무지 의아했다. 달리는 차를 빗대 설명 할 만큼 무슨 무덤이 200m나 된다니… 설명이 이어졌다.

"이쪽 골짜기를 따라서 3, 4, 5 학살지가 산 쪽으로 붙어 있고, 그리고 저 골짜기에 6, 7, 8학살지까지 이 곳에서부터 약 1.5km 정도 됩니다. 1에서 8학살지까지 합쳐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최소 4천명에서 많게는 7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20일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산내 골령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현장. 호남통일교육센터는 이날 통일체험학습 프로그램의 첫 답사지로 한국전쟁 전후 남한 내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집단 희생지로 알려진 대전시 동구 산내 골령골 학살지를 찾았다.

식장산과 만인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학살지는 산내에서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충북 옥천 군서면으로 연결되는 곤룡터널 전에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한 눈에 봐도 매우 외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심규상 기자가 한국전쟁 전후 남한 내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집단 희생지로 알려진 대전시 동구 산내 골령골 학살지를 섦여하고 있다. 이 곳에서만 최소 4천명에서 많게는 7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규상 기자가 한국전쟁 전후 남한 내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집단 희생지로 알려진 대전시 동구 산내 골령골 학살지를 섦여하고 있다. 이 곳에서만 최소 4천명에서 많게는 7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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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 설명은 20여년 넘게 학살지를 취재해 온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맡았다. 심 기자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1995년 이 지역에 유해가 널려있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살펴보고 깜짝 놀란 그는 그때부터 인근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오마이뉴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파헤쳐 왔다.

처음 조사에 나설 때만 해도 주민들은 이것저것 자꾸 묻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

"주민들이 사람들 만나기 꺼려해서 '왜 그러느냐' 했더니, '경찰이 여기 묻고 다닌 사람 있으면 무조건 신고해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무도 이곳에 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뼈가 널려있어도 신고도 못하는 그런 형태더군요."

북한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은 이승만 정권 때인 1950년 6월말부터 그 이듬해인 1951년 초까지 대규모의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희생자들은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제주 4‧3사건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정치범과 대전 충남지역 인근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들이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인과 경찰 등을 동원해 북한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을 이곳으로 끌고 와 피의 살육극을 벌였다.

1차 학살은 1950년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에 걸쳐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1400여명이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다. 이어 2차 학살은 1950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독립운동가 이관술을 비롯해 4.3 사건 관련자,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1800여명 이상, 3차 학살은 2차 학살이 자행된 다음 날인 1950년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영등포, 서대문, 수원형무소 가석방자들, 공무형무소, 청주형무소 재소자, 서산, 태안, 부여. 강경, 홍성, 서천 보도연맹원 등 약 1700명~3700명이 무참히 학살됐다.
 
제1 학살지 표지석 앞에서 현장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 호남통일교육센터는 통일체험학습 일환으로 20일 남한 내 최대 민간인 학살지 골령골 현장을 찾았다.
 제1 학살지 표지석 앞에서 현장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 호남통일교육센터는 통일체험학습 일환으로 20일 남한 내 최대 민간인 학살지 골령골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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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기자는 제1학살지 표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은 2000년에 직접 써서 세웠던 비입니다. 20여년 전에는 최소 3천명 희생된 것으로 기록했는데, 지금은 희생자가 최대 7천명으로 20년 전 이걸 쓸 때로부터 다시 배 이상 희생자가 늘어났습니다."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학살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육군 정보국은 당시 학살 현장을 촬영해 본국에 보고했는데, 주한 미국대사관 소속 육군 무관 에드워드 중령이 1950년 9월 23일자 워싱턴 미 육군 정보부에 보고한 '한국에서 정치범 처형' 보고서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처형 명령,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려온 것"

"서울이 함락되고 난 후, 형무소의 재소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수천 명의 정치범들을 몇 주 동안 처형한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중략)
이러한 처형 명령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려온 것이다. 대전에서 벌어진 1800여 명의 정치범 집단학살은 3일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1950년 7월 첫째 주에 자행되었다."

 
영국 데일리 워커(Daily Worker) 알렌 위닝턴(Alan Winnington) 기자가 학살 직후인 1950년 8월에 현장을 찾아 촬영한 당시 모습. 손과 발이 밖으로 노출되는 등 매장조차 다 되지 못한 생생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영국 데일리 워커(Daily Worker) 알렌 위닝턴(Alan Winnington) 기자가 학살 직후인 1950년 8월에 현장을 찾아 촬영한 당시 모습. 손과 발이 밖으로 노출되는 등 매장조차 다 되지 못한 생생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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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이어질수록 신음과 깊은 탄식이 이어졌다.

"이 사진은 당시 주한 연락사무소 에버트 소령이 찍은 것인데, 좀 끔찍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구덩이 앞에 엎드려 눕힌 다음, 한 발로 등을 밟고, 한 발로 총을 뒷머리에 겨눠서, 뒷머리에 바짝 붙여 사격했습니다. 왜 그렇게 붙여 사격했느냐는 증언도 들었는데, 총구를 띄어서 쏘면 골수가 바짓가랑이 옷에 튀어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서 쐈다고 해요."

처참한 학살 직후 모습 영국 <데일리 워커> 통해 세계 알려져

말을 잊은 답사단 사이에서 또 한 차례 탄식이 이어졌다.

설명에 의하면 골령골 민간인학살 사건은 특이하게 학살이 이뤄진 직후 <데일리 워커>(Daily Worker)라는 영국 언론을 통해 세계에 보도됐다. 알렌 위닝턴(Alan Winnington) 기자가 1950년 8월에 이 현장을 찾아 당시 마을 주민들로부터 직접 학살 얘기를 취재했고, 이후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 보도를 통해 학살 전 모습뿐만 아니라, 학살이 벌어진 이후 현장 모습까지 사진에 남아있게 됐는데, 그 사진에서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다.

"여기에 보시면 발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죠. 왜 그랬을까요? 대충 묻은 것입니다. 워낙 많은 시신을 묻다 보니 흙이 부족하고, 그래서 발과 손이 삐져나와 있고, 그리고 아래서부터 시신이 거꾸로 박혀 있습니다."

또 한 차례 울음 같은 탄식이 흘렀다.
  
학살 현장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거나 각종 폐 쓰레기로 방치돼 왔다. 일부 유해 발굴이 이뤄진 곳에는 경계를 나타내는 줄이 쳐져 있다.
 학살 현장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거나 각종 폐 쓰레기로 방치돼 왔다. 일부 유해 발굴이 이뤄진 곳에는 경계를 나타내는 줄이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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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발굴지 현장에는 곳곳에 경계를 표시하는 줄이 쳐 있었다. 지난해부터 2022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유해가 나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2015년, 2017년 일부 이뤄졌던 유해를 포함해서 지난 11월 기준 1248구에 이른다.

"오늘도 유해 한 주먹을 주었습니다"

충격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안내를 맡은 심 기자는 바닥에 있던 하얀 봉투를 집어 들어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꺼내 펼쳐 놓았다. 이내 우리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여러분을 기다리면서 현장을 돌아다니던 중 오늘도 유해 한 주먹을 주었습니다. 제가 올 때마다 유해를 줍는데, 이거는 두개골 뼈입니다. 하도 유해발굴 현장을 쫓아다녀 저도 이제 유해를 보면 어느 부위인지 대충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정강이뼈 일부이고, 이것은 M1 소총 탄피입니다. 이것은 유해발굴 현장에서 주로 나오는 병인데 형무소에서 페니실린이나 약병으로 쓰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금니 치아이고, 송곳니 치아 2점. 그리고 부위를 알 수 없는 부식된 뼈들…"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지 현장에서 발견한 희생자 유해들... 오랫동안 현장이 훼손된 현장에선느 지금도 미처 수습되지 못한 유해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지 현장에서 발견한 희생자 유해들... 오랫동안 현장이 훼손된 현장에선느 지금도 미처 수습되지 못한 유해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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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일도 끔찍한데, 다음 말이 더 기가 막혔다.

"그런데 이것은 약과입니다. 발굴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이곳은 농사를 짓거나 쓰레기를 막 버린 장소였습니다. 제가 올 때마다 이런 유해들, 치아를 한 주먹씩 줍곤 할 정도로 현장이 7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훼손돼 왔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이 다행스러운 거죠."

현장 안내판에는 바코드를 통해 올해 진행된 유해 발굴 당시 현장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안내돼 있다. 향후 이곳엔 '진실과 화해의 숲'이란 이름으로 향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평화, 인권교육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유치 경쟁?... 산내 골령골 학살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대상자들 중엔 20세 미만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대상자들 중엔 20세 미만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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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에 의하면, 골령골에는 크게 8개의 희생자들이 집단 매장된 8개의 구덩이가 있지만, 사실 그동안 유해 발굴은 엄두를 내지 못해 왔다. 그러다가 2016년 정부가 전국 민간인 희생지에 대해 단일 추모 공원을 건립하기로 하자 시민사회단체가 나서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 공모에 참가하게 됐다. 전국에 10개 지역이 경쟁(?)을 벌였는데, 산내 골령골이 전국 단일지역으로 최종 결정됐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민간인학살 매장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선정된 곳만 300여 곳이라더군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주장을 행안부에 하고 있는데, 전국 단일 시설은 이곳에 하더라도 광역단위별로 전라도, 경상도, 도 단위에도 평화 위령 시설을 갖추고, 또 30명, 50명씩 골짜기 골짜기에도 조그만 암매장지가 많이 있으니 그런 곳에 정부 차원에서 표지석이나 위령 시설을 세워 연계망을 갖추도록 해야죠. 여기 한 곳 마련해 놓고 우리는 할 일 다 했다고 하면 되나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유치 경쟁을 벌어야 했던 골령골 학살지 현장. 짙은 안개처럼 그날 우리들의 한숨은 길고 무거웠다.
 
길이 1.5km에 달하는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 행전안전부는 이 곳에 '진실과 화해의 숲'을 조성해 추모와 평화 인권교육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부터 본격적인 유해발굴 사업에 나서고 있다.
 길이 1.5km에 달하는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 행전안전부는 이 곳에 "진실과 화해의 숲"을 조성해 추모와 평화 인권교육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부터 본격적인 유해발굴 사업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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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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