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대기아차 직접 고용 촉구 단식 농성중인 김수억
 현대기아차 직접 고용 촉구 단식 농성중인 김수억
ⓒ 정택용

관련사진보기

 
5년 6개월이랍니다. 22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김수억을 한 3년은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눈물 겹습니다.

김수억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서로 '빵살이' 끝나고 나온 후였습니다. 저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건으로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나왔을 때였습니다. 전 몇 개월 안 되는 한참 짧은 살이였지만 그는 한참 긴 살이였습니다. 그는 비정규직 최초로 기아자동차 라인 점거 파업 책임을 지고 들어가 2년 6개월여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후였습니다. 

첫 빵살이도 아니었습니다. 1995년 학생 시절 '전두환·노태우 광주 학살자 처벌하라'라고 외치며 싸우다 첫 구속되어 감옥에 살다 나왔다고 했습니다. 김영삼 때였습니다.

2005년에는 현대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최초로 비정규직 노조 만들었다는 까닭으로 두 번째 구속되어 살다 나왔습니다. 2007년부터는 1년 6개월 동안 공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수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노무현 때였습니다. 2009년 1월 구속되었을 때는 이명박 때였습니다.

첫인사도 거리였습니다.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희생자 합동분향소였습니다. 당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에서 스물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온 후 더 이상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지 않냐고,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다시 한번 이명박 정부와 격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친구들이 꼭 김수억을 만나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희망버스 운동을 보며 가슴이 뛰었다고 했습니다. 참 겸손하고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금세 죽이 맞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노동법 전면 개악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는 충북 영동과 아산에 1, 2공장이 있던 유성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그리고 유성기업의 최대 납품처인 현대차 재벌 등이 공모해 유성기업 민주노조 죽이기에 나섰습니다. 세월이 흘러 국회 국정감사, 검찰개혁위원회, 경찰청 과거 인권침해 사건 조사위 등을 통해 그 전모의 일부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엄호하기 위해 함께 도원결의해 '유성기업 희망버스' 운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그마한 꼬투리만 잡혀도 가중처벌을 당해야 하는 누범 기간 중이었고, 나는 재판 중에 보석으로 가석방된 상태였지만 함께 총대를 메기로 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나고는 박근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다시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동자 모임'을 결성해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잊지 못할 그날 밤

2014년 5.18 하루 전인 5월 17일의 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추모행진 과정에 종로2가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추모대열을 벗어나 박근혜가 있는 청와대를 향해 가기로 했습니다. 3000여 명이 동시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동십자각 바로 앞 현대차 정문 앞에서 몰려든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혀야 했습니다.

이만 돌아가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세월호에서 죽어간 이들의 비명을 기억하며 끝까지 연좌하기로 했습니다. 긴 대치 끝에 경찰이 사람들을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다음날인 5.18 세월호 추모대회에서 동을 뜨기로 했던 걸 핑계로 등을 보이며 뛰어야 했습니다. 김수억은 연행되었습니다.

어느 집 기와 담장을 뛰어넘었던가 봅니다. 그 낯선 가정집 창고로 숨어 들어가 숨죽이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진압하는 소리, 끌려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108명이 연행되었습니다. 진압이 모두 끝난 후 혼자 '살아남은 자'가 되어 뛰어내리며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네온사인 휘황한 종로 거리를 거쳐 대책위 사무실로 가던 그날의 참담함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날 5.18 세월호 추모대회에서는 67명이 연행 당했지만 우리는 전날 연행 당해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들이 모두 잡혀 들어간 '세월호 만민공동회' 사무실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규탄 성명을 내고, 민변과 상의해 연행자 접견단을 꾸리는 등 끌려간 동지들, 시민들 지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 또한 5월 27일 추모대회 때 종로2가 보신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방송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결국 연행되면서 조금의 미안함은 덜었습니다.

5년 만에 김수억은 간신히 복직이 되어 작업복을 입고 그리운 동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5년 만에 받은 첫 월급을 모두 털어 김수억은 노구에도 젊은 우리들과 함께 모든 현장을 함께 지켜주시던 백기완 선생을 모시는 스승의 날을 열어 주었습니다. 정규직 복직 약속을 하고는 다시 먹튀 한 사측에 맞서 12년째 싸우고 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들이 점거하고 있던 기륭 신사옥 안에서였습니다.

"니들이 진짜 나의 친구들"이라며, 정말 고맙다며 굵은 눈물 뚝뚝 흘리시던 선생님과 그 곁에서 상기되어 함께 눈물을 참지 못하던 김수억을 잊지 못합니다.

늘 대열의 맨 앞에
 
'비정규직 이제 그만' 행진
 "비정규직 이제 그만" 행진
ⓒ 정택용

관련사진보기

 
2016년 겨울엔 함께 광화문 광장에 있었습니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항쟁의 마중물이 되자는 결의로 그해 11월 4일 전격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캠핑촌을 꾸렸습니다. 그해 10월 24일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발견되었다는 JTBC 방송이 최초 방영되고 열흘도 채 안 되던 날이었습니다.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이 결정되던 때까지 그 겨울 내내 우리는 촛불 광장에서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김수억은 그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개혁까지 가야 한다며 검찰청에서 국회를 돌아 광화문 광장으로 오는 '이재용 구속과 재벌개혁을 위한 대행진'을 제안하고 2차에 걸쳐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늘 대열의 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촛불항쟁이 끝난 2017년, 우리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을 함께 만들고, 이어 비정규노동자들의 연대체인 '1100만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을 만드는 일에 함께했습니다. 누가 대신 대변해 주는 비정규직 운동이 아니라, 비정규직 스스로 당사자가 되고 대표가 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간 투쟁해온 김수억과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 차헌호, 지엠대우비정규직 황호인, 교육공무직본부 이태의, 기륭전자여성비정규직 유흥희 등 여러 현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앞장서 주었습니다. 그 운동의 첫 시작으로 그간 비정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 왔던 대검찰청과 국회 등에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의견과 요구를 알리는 4박 5일의 대행진도 했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운동이었습니다. 전국에서 1000여 명의 비정규직 대표단을 꾸리고, 그것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서 당일 새벽에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님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수억과 그의 친구들은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일에 모든 사력을 다해 사회적 투쟁에 나섰습니다.

충분치 않았지만 진상조사위가 꾸려지고, 발전소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되었습니다.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이루어냈습니다. 정치권이, 국회가 나서서 해준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요구와 투쟁에 밀리면서 끝내 핵심 조항을 유보시키거나 지우거나 개악하는 데 앞장서는 게 청와대와 국회, 정치권의 역할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뒤로도 단 한 번도 쉰 적 없이 달려왔던 김수억은 2019년, 서울고용노동청사 앞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단식이 벌써 40여 일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멈춰라', '그만둬야 한다', '병원으로 가자' 험악한 말들이 오갔지만, 그는 대법원의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불법파견 판정 후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현대기아차 자본과 이를 비호하고 있는 국회, 노동부 등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가겠다는 그를 반강제로 병원으로 끌고 간 것은 47일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20kg이 넘게 빠져 홀쭉한 그의 몸을 옮기는 건 그리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좀 당신은 쉬어야 한다는 말을 김수억은 한 번도 듣지 않는 고집쟁이입니다. 2020년엔 수십 년 동안 논의만 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늘 또 다른 결의를 밝혔지만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거나 감옥 가지 않을 만큼의 책임이 늘 그에게 주어졌고, 그는 그게 늘 불만이었지만 묵묵히 그게 어떤 일이든 맡겨진 모든 실무에 대한 책임을 다해 왔습니다. 그는 지금도 '1100만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의 소집권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촛불항쟁 왜 했나 싶습니다
 
33일차 단식장에서
 33일차 단식장에서
ⓒ 정택용

관련사진보기

 
그런 김수억을 이 정부가 잡아넣겠다고 합니다. 검찰 구형 5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지난 10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9호 법정에서였습니다. 그간 김수억이 했던 모든 훌륭한 일들, 선한 일들을 모두 병합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왔던 게 고작 7건밖에 안 된다니 도리어 검찰에 섭섭하겠습니다. 병합되지 않은 재판도 하나 진행 중이고, 이후 추가로 뜰 것도 몇 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며칠 후인 11월 30일 서울지법 서관 509호에서 2차 구형이 예정되어 있고, 그 다음 기일엔 선고입니다.

그만 끌려간 게 아닙니다. 그의 친구들인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자동차판매 대리점 등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17명도 끌려갔습니다. 17명의 비정규직들에게 때린 검찰 구형을 합하면 총 22년 6개월입니다. 죄목이 대부분 무슨 공동주거침입에, 특수건조물침입미수 등입니다. 민원 전달하러 갔던 대검찰청 방문, 국회 방문, 청와대 앞 방문 등이 대부분입니다.

약간 예의가 없긴 했나 봅니다. 그러나 그간 검찰과 법원이, 국회가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힘없는 '개돼지'들에게 했던 행태를 생각하면 주권자의 다수인 1100만 비정규직들의 대표자들이 목소리 좀 높이는 게 무슨 큰 잘못이겠습니까.

무슨 큰 소란이나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검찰 공소장이 적시하고 있는 그날들에 해당 대검찰청에, 국회에, 청와대에 무슨 위험과 업무의 어려움이 있었던 건지요. 특수공무집행방해로 폭행당했다고 신고하게 한 전경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잘 출근했고, 그날 이후 한 달 이내에 병원 치료 한 번 받지 않은 게 변호인단의 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촛불항쟁 왜 했나 싶습니다. 이 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왜 여전히 죄인이어야 합니까. 왜 삼성 이재용은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석방으로 풀어주면서 비정규노동자들은 이렇게 기를 쓰고 잡아넣으려 합니까.

왜 전두환·노태우를 처벌하려 싸우던 김수억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이어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에서까지 다시 구속의 기로 앞에 서야 합니까.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사실은 허울 아닌지요.

생각하니 박근혜 퇴진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5개월여 동안 노숙농성하며 싸웠던 그는 이 정권 들어 다시 47일을 단식해야 했고, 저는 도합 71일을 굶어야 했군요. 다른 대안을 못 세웠으니 반성이나 하며 입 다물고나 있어야지 했지만,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보다 못한 노동자, 시민들이 나서서 '5년 6개월, 22년 6개월'에 항의하는 서명과 탄원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벌써 1만여 명이 함께 해주셨다는군요. 며칠 안 남았지만 함께 마음들 조금씩이나마 얹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바로 참여 가능합니다. 

☞ 항의의견서함께(https://url.kr/2ibxlm)
 
김수억 구명 운동
 김수억 구명 운동
ⓒ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관련사진보기

 
그들이 도대체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유의미한 일이라도 했는지 알 수 없는 협잡꾼들의 이름을 매일 언론 지상을 통해 보고 듣게 되는 것도 참 고역입니다. 여기 '1100만 비정규직 이제 그만', 우리 모두를 대신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싸워오다 현재 재판 중인 열 일곱 분의 성함을 남겨 둡니다.

김경학 · 김남규 · 김선영 · 김수억 · 남기웅 · 박ㅇㅇ · 박희용 · 신성원 · 오수일 · 윤성규 · 이명노· 이병훈 · 이원석 · 이태의 · 정민기 · 지현민 · 황호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