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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 당시 자신이 겪은 참상을 증언하고 있는 고 이광영씨의 생전 모습.
 1989년 2월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 당시 자신이 겪은 참상을 증언하고 있는 고 이광영씨의 생전 모습.
ⓒ MBC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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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총상 전두환 재판 증인, 숨진 채 발견"

24일 '전두환 사망'으로 가득찬 포털사이트 뉴스란 한편에, 5.18 피해자인 고 이광영씨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가 걸렸다. 전두환씨는 23일 오전 90세에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고, 피해자 이씨는 "다 묻고 간다"는 유서를 남긴 채 68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 자신의 고향 부근에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의 총탄에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일생을 책임자 처벌을 위한 '증인'으로 살아왔다. 유족 측에 따르면 사망 시각은 전씨가 사망하기 직전인 23일 새벽으로 추정된다. 그는 끝내 생전에 '전두환 사망' 소식을 듣지 못했다. 유족 측의 동의를 얻어 그의 유서 내용을 공개한다.
 
나의 가족에게.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친구와 사회에 미안하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

2021년 11월 22일 이광영 
 
1980년 광주, 1989년 국회 청문회, 그리고 2019년 법정

1953년 전남 강진군 군동면 금사리 출생인 고 이광영씨는 1980년 5월 당시 승려 신분으로 석가탄신일 준비를 위해 광주를 찾았다. 그런 그가 적십자 대원으로 변한 것은, 그해 5월 19일 공수부대가 시민을 상대로 자행한 폭력을 목도한 이후부터다.

생전 이씨는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은 물론, 전두환씨가 죽는 날까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부인한 헬기 사격을 국회와 검찰, 법원 등에서 30년간 일관된 내용으로 증언해왔다. 달라진 것은 그의 머리 색깔 뿐이었다. 아래는 국회 속기록에서 찾은 1989년 2월 23일 당시 그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5월 21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월산동 로터리에서 갑자기 광주공원 쪽으로 헬기가 다라락 하고 오더라고요. 자기 총을 다다다다 하고 난사를 합니다. 아스팔트에 불똥이 탁탁탁탁 하고 튀더라고요. 아이고 기사가 지그재그로 운전했지요. 바로 위에 헬기가 있고 가로수 밑에 우선 숨었어요.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지더라고요.

여학생 하나가 그 총에 맞아 쓰러졌어요. 그 애는 비명을 지르고 해서 보니, 어깨를 관통했더라고요. 차에 바로 싣고 헝겊을 하나 대 손으로 피를 꽉 막으면서 가까운 병원에 간다는 것이 적십자 병원에 갔습니다. 가 보니, 의사들한테 이 사람은 헬기에 총을 맞은 사람이니 치료해주시오, 할 여유가 없었어요. 응급실을 보니 피가 흥건하고 부상자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증언 현장마다 그는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이씨는 광주 구시청 사거리에서 공수부대에 피해를 입은 부상자를 구하다 척추에 총을 맞았다. 총알은 허리띠를 뚫었다. 매시간 진통제 없인 잠들 수 없는 삶이 시작됐다. 그가 27살 때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당시 청문회 현장에서 피 묻은 허리띠를 들어보였다.
 
총 맞은 부분이 척추 L3 부분입니다. 혁대 부근이거든요. 여기가 총탄이 들어간 자국이고, 혁대를 뚫고 (총알이) 나왔습니다. 빨래를 해서 피를 닦으려고 그랬습니다만, 이렇게 피가 묻어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M16총탄이 들어간 자국입니다. 여기가 지금도 피가 안 지워지고 있어요. - 1989년 2월 23일 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을위한 청문회 증언 중

유족 측인 이씨의 동생은 생전 이씨가 책임자 규명이 더딘 상황을 늘 원통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발포명령자도 나오지 않고, 책임자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진상이 역사 속에 묻히고 있는 상황을 원통해 하셨다"면서 "요즘엔 체념하시다시피 하셨고, 유서엔 모든 걸 내려놓고 가신다고 쓰셨다"고 전했다.

이씨가 평생 부상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도 말했다. 그는 "약 먹는 숫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약제 일자가 초과돼 주지 않아 못 먹다가, 도저히 고통을 참을수가 없어 (정부 허가를 통해) 예외 규정으로 별도로 조제해 약을 드셨다. 때문에 위도 다 망가지셨다"라고 토로했다.

2019년 5월 13일, 이씨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회고록'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다시 증인으로 섰다. 30년 전과 같은 증언을 했지만, 당시 상황을 증명할 물증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증거로 채택되진 못했다. 1심 재판부는 그럼에도 여러 목격자들의 진술과 군인들의 진술을 종합해 "5월 21일과 5월 27일, 헬기 사격을 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 재판에서 전두환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사망과 동시에 공소기각 돼 1심 형사재판의 유죄 판결은 효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헬기사격' 증인들의 증언은 24일로 결심 기일을 맞은 민사 항소심 재판에서 다시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타적 삶과 평생의 트라우마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다친 남현애·이광영씨(오른쪽)가 2019년 5월 13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헬기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다친 남현애·이광영씨(오른쪽)가 2019년 5월 13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두환 회고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헬기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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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비오 신부 측의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선생님의 죽음은 전두환의 죽음과 대비된다"고 씁쓸해했다. 김 변호사는 "회개없이 천수를 누린 가해자의 삶과 달리,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피해자의 삶을 한국 사회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구조대로써 이타적 삶을 삶았음에도, 국가 폭력의 희생자로 삶을 마감하셨다"고 말했다.

한편, 고 이광영씨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이씨는 오는 26일 발인, 광주 영락공원을 거쳐 광주 5.18민주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씨의 동생은 이날 통화 말미 이렇게 전했다.

"누군가는 발포 명령을 내렸고, 중간에 명령을 이행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이 있다. 처벌을 떠나 진실규명이라도 좀 어떻게든 했으면 한다. 형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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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기자입니다. 서류보다 현장을 좋아합니다. 제보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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