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련사진보기

 
'N번방 사건' 그 이후, 우리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한 달 전 성 착취 영상 유통 채널 '온리팬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30대 남성이 해외 동영상 플랫폼 '온리팬스'에서 성 착취 영상을 판매하다 덜미가 잡혔는데, 피해 여성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N번방 사건'이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지만 디지털 성 착취물 유통 채널의 변화만 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다.

소라넷, 웹하드, 텔레그램, 그리고 온리팬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해서 존재해왔고 사라지지 않았다.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된 이래로 수요와 공급이 계속해서 있어왔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어떤 동영상 플랫폼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이 유통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불안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닌 실존적 공포로 다가온다.

지난 12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이효린 사무국장을 만나 디지털 성범죄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사성은 사이버 공간 전반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결성된 여성인권 운동단체로, 피해 지원 활동부터 정책 입법 운동, 그리고 성 인식 개선 교육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효린 국장은 이곳에서 피해 지원 활동을 전담하다 현재는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현장에서 여성들의 착취 영상은 일종의 사업 아이템으로서 작용하곤 한다. 비교적 최근 발생한 '온리팬스 사건'도 마찬가지다. '온리팬스'는 유료 구독으로 수익을 얻는 동영상 플랫폼으로, 구독자가 지불한 금액이 높을수록 높은 수위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여성의 신체 이미지들이 일종의 재화이자 상품으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효린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플랫폼에서 여성의 신체 이미지가 상품과 재화로 취급되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거래하는 방식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도 사실 성착취 산업화의 상을 띄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조주빈이 돈을 벌었으니까요."

나아가 '왜 여성의 신체가 재화로 작용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여성의 신체가 사회에서 음란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성의 신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지금 이 사회에서 음란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상품화되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성매매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모든 문제가 종국에는 여성이 거래되는 문제와 맞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의 특성

디지털 성범죄는 여타 다른 성범죄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이 갖고 있는 특성을 기반으로 피해는 더욱 극심해진다.

"분명히 디지털 성폭력이 기존에 있었던 여성 폭력과 뿌리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구분하게 되는 이유는 발생 공간에서의 특성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물리적이지도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고 데이터화 되고 전파성이 있고. 이런 특성이 폭력 양상에 그대로 반영되거든요."

실제로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기반으로 피해자가 피해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누가 가해를 저질렀는지 특정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이후 피해가 과거에 있던 일로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형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이중적 고통을 받게 된다.

"한번 피해 영상이 유포되면 끝나지 않는 피해라는 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높은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디지털 성범죄가 어쩌다 새롭게 생긴 범죄 유형은 아니다. 성폭력과 가부장제 등의 현존하는 여성혐오가 온라인 공간이 갖고 있는 특성을 기반으로 더욱 강하게 발현되는 것뿐이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건 외계인이나 아바타가 아니라 그냥 우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와 온라인 공간의 문화는 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온라인의 경우, 익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자극적이고 거침없이 (디지털 성범죄가) 발현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대한 실효성은 있을까? 그동안 사이버 성범죄를 다루는 정부 정책은 몇 차례 발표됐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법 자체는 강화되었지만 감경요소로 인해 실질적인 처벌은 약한 경우가 많다. 낮은 양형기준과 판례 등이 감경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 이효린 사무국장은 보다 포괄적이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행법으로 성폭력을 처벌할 수 없는 모든 사이버 성폭력의 법제화와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17년도에는 촬영, 유포에만 초점을 맞춰 정책이 개정됐어요. 변형 카메라 규제, 카메라 등록제 도입 등. 그런데 이 방식으로 폭력의 양상이 축소되지 않았거든요. 애초에 본질이 거기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20년도에 처음 소비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는 처벌법이 만들어졌어요. 수요적 측면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거죠."

즉,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해 범죄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에 있어서 모든 법들이 계속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를 반복하잖아요. 언제나 뒤늦게 현실을 쫓아가는데 앞으로는 보다 포괄적이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모든 운동 조직은 자기 소멸을 목적으로 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련사진보기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 등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의 실천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환경 문제, 너무 심각하잖아요. 환경 문제 해결하기 위해 시민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분리수거하고 음식물 쓰레기 적게 배출하고. 이게 전부 실천적 노력이잖아요. 이게 당장 내일 이 지구를 깨끗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거 우리 다 알잖아요. 알면서도 나부터 실천하는 거거든요.

사이버 성폭력도 마찬가지예요. 사이버 성폭력도 사회 문제거든요. 디지털 성범죄를 구조적 문제로 바라봤을 때 시민의 역할이라는 게 대단히 새롭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해를 저지르지 않는 것, 타인에게 어떤 폭력과 피해를 경험하게 하지 않는 것,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지지해주고 그 사람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이 모든 게 실천적 요소가 될 수 있어요."


꼭 시민들이 전문성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향한 발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마침내 디지털 성범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남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성들의 노력과 도움 없이는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남성 동료들을 만나서 이 문제에 함께 동참하도록 손을 내밀고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 조주빈이 이례적으로 높은 판결을 받게 된 것도 이러한 관심과 참여의 예시로 볼 수 있다. 물론 법률적 쟁점에서 여러 유의미한 판단들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공론화와 참여가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하는데 일정 부분 작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주빈의 형량은 이후 유사 사례가 발생했을 때 강도 높은 처벌을 가능케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더 이상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상향 평준화되어 기준을 형성한다면 더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기대해볼 수 있죠."

더 많은 관심과 단호한 목소리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사성 이효린 사무국장.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함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이효린 사무국장에게 한사성의 최종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모든 운동 조직은 자기 소멸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요?"

현재 한사성 핫라인에는 한 달 평균 서른 건에서 마흔 건의 피해 지원 요청 전화가 온다고 한다. 모두 신규 상담 전화다. 사이버 성폭력 근절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언젠가는 한사성이 제 할 일을 마치고 거룩한 소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사성에 더 이상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 않는 날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야기 듣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