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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빈소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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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의 빈소는 '학살에 사죄하지 않았다'는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그에게도 공이 있다'는 측근들의 애도가 뒤섞인 풍경이었다. 현장은 여느 유명인들의 장례식장과 달리 취재진을 제외하곤 조문객의 수가 많지 않아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씨가 사망한 23일, 유족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특1호실에 빈소를 차리고 오후 5시께부터 조문객을 받았다.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낮 동안에도 칼바람이 계속됐던 이날, 전씨의 시신을 옮기는 운구차량은 그가 사망한 지 6시간여 만인 오후 3시 15분께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다. 운구차량은 취재진을 피해 가듯 장례식장 정문 옆 주차장 입구가 아닌 병원 본관 입구로 에둘러 진입해 안치실로 향했다. 이 때문에 정문 앞에서 운구차를 기다리던 기자들 40여 명이 한꺼번에 차량 뒤꽁무니를 따라 뛰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빈소 관계자는 이날 밤 10시까지 5시간 동안 조문객 300여 명이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자녀 재국·재용·효선씨와 배우자 이순자씨가 상주로 손님을 맞았다. 고인의 최측근인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장,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은 유족보다 먼저 도착해 빈소를 마련했다. 미국에 거주 중인 삼남 재만씨는 귀국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 밖 "역사 반성 없는 자 살 가치 없다"
  
20살 청년 안아무개씨가 직접 쓴 손 피켓을 들고 전씨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20살 청년 안아무개씨가 직접 쓴 손 피켓을 들고 전씨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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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심판 국민행동본부가 23일 오후 6시경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정문 앞에서 전두환씨를 규탄하는 회견을 열었다.
 전두환 심판 국민행동본부가 23일 오후 6시경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정문 앞에서 전두환씨를 규탄하는 회견을 열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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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를 규탄하는 시위는 빈소가 차려질 무렵부터 열렸다. 올해 수능을 치렀다는 청년 안아무개(20)씨는 밤을 꼬박 새울 심정으로 오후 5시 반께 장례식장을 찾아 5시간 가량 1인 시위를 했다.

안씨는 스케치북에 직접 '반성하지 않는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문구를 써서 들었다. 그는 "전두환씨는 자신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이 열리는 동안에 광주에 내려오지도 않고, 광주시민에 사과할 기회를 줬음에도 스스로 걷어찼고 또 이렇게 사망했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왔다"며 "전직 대통령이라는데 기본적인 그 책임을 다 산산조각 냈다"라고 비판했다.

안씨가 시위를 시작한 지 30여 분 후, 맞은편 장례식장 정문에선 '전두환 심판 국민행동' 회원 예닐곱 명이 "그를 명복할, 애도할 마음은 단 1%도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씨가 "5·18 학살과 헌정유린, 삼청양민학살, 형제복지원과 군 강제징집 녹화 선도공작의 참담한 고문 및 인권유린과 탄압, 노동운동 탄압 등 5공화국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의 만행에 단 한 마디 사죄도 없이 떠남으로써 국민을 허탈한 심정에 빠뜨렸다"고 규탄했다.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도 회견에 참여해 "전씨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1980년 5월이 오기 전 청계노조 조직부장으로 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이) 와서 목에 보자기 씌워서 마음대로 잡고 검거했고, 어머니와 성동구치소에서 함께 있을 때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 각종 가혹행위를 했던 전두환의 만행을 잊을 수 없다"며 "41년 전 아들들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기고 시신을 받았던 (광주민주화운동) 부모들의 심정을 꼭 기억해달라"라고 말했다.

하나회·육사 출신 조문 행렬, "북한군 침투설" 막말까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빈소에 부인 이순자씨가 들어서고 있다.
▲ 전두환 빈소 도착한 이순자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빈소에 부인 이순자씨가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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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들의 발길은 밤 10시까지 계속 이어졌다. 특히 육군사관학교 출신 측근들이 눈에 띄었다. 전씨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에 속했던 고명승 전 육군 대장은 조문 후 빈소를 나서려다 두 번이나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는 빈소를 나오자마자 '5·18 유족에 사과할 생각 없느냐'고 질문하는 취재진 십수 명에 둘러싸이자 다시 빈소로 몸을 피했다. 결국 한 시간 가량 후 빈소를 다시 나와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건물을 빠져나갔다.

자신을 '육사 19기 후배'라 밝힌 노아무개씨는 전씨의 5·18 광주 학살의 책임에 관한 생각을 묻자 "국민이 생각하는 그대로"라고만 답하며 말을 아꼈다. 조문을 온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은 취재진이 '5·18 피해자에 사과할 마음이 없냐'고 묻자 이들을 밀치고 화장실로 피하기도 했다.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신윤희 전 육군 헌병부단장, 전씨 비서실장을 지낸 이영일 전 의원, 전씨가 2년간 칩거했던 백담사 주지 스님 등도 빈소를 찾았다.

이날 정·재계, 종교계, 언론계 등에서 보낸 조화는 70개가 넘었다. 재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임기주 한맥그룹 회장 등이 보냈다.

언론계에선 김민배 TV조선 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중앙일보·JTBC) 회장,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등이 조화를 보냈다. 원내정당으로선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조화만 확인됐다. 이준석 당 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 정진석 국회부의장, 김기현 의원, 강창희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보냈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빈소를 직접 찾았다. 밤 9시 30분께 모습을 보인 윤 의원은 30분 가량 빈소에 머물다 나갔다. 그는 자기 주변에 몰린 취재진의 질문에 '다음에, 다음에 해요'라는 말만 남기고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빈소 내 세워진 조화.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낸 조화다.
 빈소 내 세워진 조화.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낸 조화다.
ⓒ 안희재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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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앞은 몰려든 유튜버들이 내지르는 고성에 종종 소란스러워졌다. 취재진이 밤 9시 15분께 빈소를 나서던 이순자씨를 둘러싸고 '5·18 희생자에게 하실 말씀 없으세요'라고 묻자, 현장에 있던 유튜버 네다섯 명이 "어떤 놈이야", "전두환과 5·18이 무슨 관계냐", "빨갱이들아", "빨갱이가 여기 왜 왔느냐"라고 소리쳤다. 유튜버들의 격한 행동은 기자들이 조문객에 5·18에 대한 사과를 언급할 때마다 반복됐다.

조문객 대부분과 유족은 역사적 과오엔 침묵했다. 오히려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허위라고 판명한 '북한군 침투설'을 다시 꺼냈다.

그는 빈소를 나서며 만난 기자들에게 "그때 한국에 300여명이나 되는 (북한군이) 남하해 일으킨 사건 아니겠어?"라며 "만일 그걸 수습하지 못했다면 내가 국민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역사가 어떻게 됐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밝혀 현장이 술렁였다.

한편, 전씨의 장례는 오는 27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24일엔 오전 9시부터 조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관은 25일 오전 10시, 발인은 27일 오후 8시다. 장지는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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