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주말(11.19~11.20), 전북 장수군 인근지역에서 열린 '전북 가야'를 공감하기 위한 답사 프로그램이 절찬리에 종료됐다. 가야시대에 존재했던 제철 유적과 고분 및 봉화대를 둘러보는 '백두대간 속 가야이야기' 프로그램에는 해설을 맡은 곽장근 교수와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고조선 유적 답사회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가야문화는 영남지방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 시작된 고고학적 발굴성과에서 고대의 자연 경계인 백두대간(장수 육십령고개)을 넘어 장수에 화려한 가야문화가 존재했었다는 게 확인됐다.

1차 답사(2021.9.4)에 이은 2차 답사단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역사에 관심 있는 분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현장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북 가야는 전북 남원시, 장수군 등 7개 시군에서 학계에 보고된 120여 가야 봉화에 근거를 두고 '전북 가야'라고 이름 지었다. 전북 가야는 가야의 지배자 무덤으로 알려진 가야 중대형 고총 420여 기, 횃불로 신호를 주고받던 120여 가야 봉화로 상징된다.

인류 역사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과 철이다. 소금은 의식주의 기본이었고, 철은 경제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일 뿐만 아니라 국방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전북에서 생산된 소금과 철은 초기철기시대부터 마한, 백제, 가야, 후백제가 발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전북 가야의 정치 중심부는 운봉고원과 진안고원에 위치한 장수군이다. 운봉고원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가야 소국 '기문국'은 4세기 말엽에 등장해 6세기 초까지 존속했다. 백두대간 서쪽 금강 최상류 장수군에 기반을 둔 '반파국'은 4세기 말엽에 등장해 6세기 초에 백제에 의해 멸망했다.

전북 가야의 핵심 3요소 중 하나인 제철 유적
 
제철유적을 둘러보는 고조선유적답사 단원들
 제철유적을 둘러보는 고조선유적답사 단원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고조선유적답사단원들에게 2회에 걸쳐 전북 가야를 설명한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는 전북 가야의 핵심 3요소로 고총과 봉화, 제철유적을 들었다. 철은 국력의 상징이고 수많은 고분이 존재했다는 건 강력한 지배 세력이 존재했다는 걸 의미한다. 가야 봉화는 지배자에게 국가의 안위를 보고하는 비상 통신수단이라는 취지다.

첫날(19일) 덕유산 국립공원에 위치한 무주 구천동 제철유적 2곳을 돌아본 답사단은 전라북도, 진안군,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제동유적 폐기장 일대를 방문했다. 대량리 노인회관 인근 밭에 널린 슬래그는 동을 제련하고 남은 부산물로 코발트 색깔들이었다.

2021년 3~4차 조사에서 발견된 제동로는 동광석에서 동을 1차적으로 추출하기 위한 제련로(製鍊爐)로 국내에서는 처음 조사되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슬래그, 노벽편 등 동 부산물로 구성된 대형 폐기장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현재 제동로 동쪽에 위치한 폐기장에는 숯, 슬래그, 노벽편 등이 확인되고 있는데, 오랜 기간 농부들이 농경지를 경작해 유적지가 대부분 훼손되어 0.4m 가량만 남아 있어요."

대량리 마을에서 생산된 동은 청동거울, 청동불상, 보검으로 탄생했다. 백두대간 동쪽 운봉고원에 큰 관심을 두었던 근초고왕과 무령왕, 무왕은 백제를 중흥으로 선도했다. 백제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들은 운봉고원 일대의 철산지를 장악했고, 운봉고원 서북쪽 아막성에서 백제와 신라가 20년 동안 벌인 전쟁은 철을 장악하기 위한 철의 전쟁이다.

8개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 장수군 장계면... 가야의 중심이라는 증거
 
오성리 봉화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곽장근 교수. 곽장근 교수는 전북가야 유적을 찾기 위해 40년 동안  배낭을 메고 전북 인근 산하를 돌아다녔다.
 오성리 봉화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곽장근 교수. 곽장근 교수는 전북가야 유적을 찾기 위해 40년 동안 배낭을 메고 전북 인근 산하를 돌아다녔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봉화는 주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는 비상 통신 수단이다. 전북 동부지역에는 120여 개소의 가야 봉화터가 존재하며 장수군(22개소)을 비롯해 남원시, 진안군, 무주군, 완주군, 임실군, 충남 금산군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이들 8갈래 봉화의 최종 집결지가 장수군(장계면)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은 가야 정치세력의 중심지가 장수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근거가 된다.

40년 동안 배낭을 메고 가야 유적을 찾아다녔던 곽장근 교수가 일행을 안내한 곳은 장수군 산서면 오성리 산 1-2번지에 있는 오성리 봉화터다. 봉화대 10여 미터 아래에는 봉화대를 지키며 비상시 불피울 봉화군이 기거했던 숙소터가 발굴되고 있었다.

길이 8m, 높이 2.2m인 봉화대는 나무 뿌리가 파고들어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지만 옛 모습이 잘 남아 있었다. 조선시대 5봉수로의 출발지 중 하나인 여수 돌산 봉수대의 규모보다 크고 웅장한 오성리 봉화대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곽장근 교수의 얘기다.

"1500년 동안 숲속에서 잠자고 있던 봉화가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죠.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한 어르신이 찾아와 장수군 산서면 오성리 산 정상에 가면 봉화대가 있으니 찾아가보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커다란 나무 뿌리가 틈을 벌려 무너져 있었지만 해발 600미터 정상까지 자연석이 아닌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쌓은 봉화대는 강력한 지배 세력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학술자료를 찾기 위해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10여 미터 아래 봉화군 주거공간에서는 부싯돌들이 여러 개 보였다.

후백제 축성술 90%를 원형 보존하고 있는 합미산성

오성리 봉화대 답사를 마친 곽장근 교수가 일행을 안내한 곳은 장수읍 용계리 산110-27번지에 있는 합미산성이다. 장수와 임실을 잇는 자고개에서 방어가 유리한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합미산성은 둘레 392m로 2개의 문지와 3개의 '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치'란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쏘기 위하여 성벽 밖으로 여기저기 내밀어 쌓아 놓았던 돌출부를 일컫는다.

가야가 산성 터를 닦고 백제에 이은 후백제 때 완성한 합미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국가 기간산업인 철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쌓았다.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집수시설 3개소, 배수로,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후백제 시대에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도 820m 정상부에 위치한 합미산성에서는 군량미를 보관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후백제 축성양식인 줄쌓기, 품자형쌓기, 들여쌓기를 한 성벽은 원형 모습을 90% 보존하고 있어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품자형쌓기'란 한자의 품(品)자 처럼 성벽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유적공원 사업 중인 동촌리 고분군
 
전북도지정 문화재에서 국가사적지로 지정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장수읍 동촌리 일대는 천지개벽하고 있었다. 지난 9월 1차 답사 때는 나무와 숲에 둘러싸여 있어 언덕인 줄로만 알았었다.  유적공원화 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전북도지정 문화재에서 국가사적지로 지정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장수읍 동촌리 일대는 천지개벽하고 있었다. 지난 9월 1차 답사 때는 나무와 숲에 둘러싸여 있어 언덕인 줄로만 알았었다. 유적공원화 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장수읍 동촌리 산 26-1번지 마봉산 자락에는 총 83기의 중대형 고분들이 자리하며 6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가야문화권 최초로 편자가 출토되었으며 둥근고리자루칼, 은제이식, 성시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두 달여 전 답사단이 1차 방문했을 때 언덕처럼 보였던 고분군은 천지개벽하고 있었다. 고분 위에 자라는 나무를 자르고 산책로와 잔디를 심어 옛 모습을 보이자 엄청난 위용이 드러났다. 현재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아 유적 공원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외국에서 온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들을 안내했던 곽장근 교수의 얘기다.

"외국에서 온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들이 전북 가야 고총들을 둘러보고 너무 좋다며 극찬했습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고 자연미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진정성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일행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탑동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이 논밭을 파보면 탑과 관련된 유물들이 발견되어 탑동마을이라 불린 마을은 배산임수의 명당자리로 장수가야의 추정 왕궁 터다. 마을 뒤편으로 가니 절터에서 파낸 장대석이 널려 있었다.
     
전북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탑동마을 주민들이 논밭에서 발견한 탑 파편들을 모아 탑을 쌓았다.
 전북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탑동마을 주민들이 논밭에서 발견한 탑 파편들을 모아 탑을 쌓았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203번지에는 '알봉'이라 불리는 직경 30m의 큰 고분이 있다. 답사단원들은 경주 고분만큼 커다란 고분의 존재에 놀랐다.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203번지에는 "알봉"이라 불리는 직경 30m의 큰 고분이 있다. 답사단원들은 경주 고분만큼 커다란 고분의 존재에 놀랐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계남면 화양리 203번지에는 알봉이라 불리는 직경 30m 이상의 큰 봉우리가 있다. 2011년 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에서 전파를 이용한 물리탐사를 통해 석재 인공시설물이 확인되었지만 알봉을 신성시하는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더 이상의 학술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 없는 내일도 없다. 전북가야는 백제, 후백제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타임캡슐 같은 곳이다. 관련 지자체와 학계의 지원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전북가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