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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편집자말]
죽음을 생각해본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다 괜찮으니까, 죽이지만 말라고요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나요? 마지막이 어떨지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편지를 쓰던 23일 전두환씨가 숨졌기 때문입니다. 이틀 전인 21일은 혜미씨와 저를 이어준 편집자 이환희씨의 1주기 기일이었고요.

똑같은 죽음, 같은 마지막인데도 어떤 이는 오래 추모되고, 어떤 이는 조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살아온 내용이 어땠는지를 평가하기 때문 아닐까요.

지난 편지를 받은 11월 초 저는 의미 있는 기자회견에 다녀왔어요. 9일, 법원의 성본변경청구 허가를 환영하는 내용이었죠.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김지예·정민구 부부가 아이에게 엄마 성을 주기로 하고 법원에 이를 신청했고, 이게 이례적으로 빠르게 결정난 걸 축하하는 자리였거든요.

성평등을 위해선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아이 성의 기본값은 남성이어서 엄마 성을 따르려면 절차가 복잡해요(민법 781조 부성우선주의 조항 때문입니다). 저도 회견에 갔고 부부를 만나 얘길 들었는데, 벅차더라고요. 세상이 조금은 바뀌는가 싶어서요(관련 기사: 6개월 아기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며... 너답게 살길).
  
아직 한국에서 아이 성의 기본값은 남성입니다. 김지예·정민구 부부가 아이에게 9일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아직 한국에서 아이 성의 기본값은 남성입니다. 김지예·정민구 부부가 아이에게 9일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의 성·본 쓰기"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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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페미니즘' 외치는 정치인들, 페미니즘 정의는 알까

그런데 역시, 기쁨은 짧고 고통은 깁니다. 이후 정치권의 페미니즘 논쟁을 보며 고구마 세 개를 잇달아 먹은 것 같았거든요. 윤석열 후보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같은 반여성인권적 공약을 한 게 엊그제인데, 이재명 후보가 숟가락을 얹었죠. "페미니즘 멈추면 지지하겠다"는 등 남초커뮤니티 글을 공유하고 여가부 개편을 쏘아올리면서요.

그뿐인가요. 한 30대 남성이 애인을 19층에서 밀어 죽인 사건을 공유하며 "페미니즘이 싫으면 여성을 죽이지 말라"고 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글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반박 근거로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가져왔지만, 교제살인(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열에 아홉은 남성이라는 현실은 외면했습니다. 살인이란 근본 문제는 놔두고 변호에 나선 걸 보면, 그는 남성이 '가해자'로 몰리는 게 싫었을 뿐 여성들 죽음은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나 봅니다.   
 
11월 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서 '헤어지자 폭행', '헤어지자 살해' 등을 검색한 결과값입니다. 가해자(피의자)의 90% 이상이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입니다.
 11월 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서 "헤어지자 폭행", "헤어지자 살해" 등을 검색한 결과값입니다. 가해자(피의자)의 90% 이상이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입니다.
ⓒ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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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Feminism), 이는 그간 남성이 중심인 사회 전분야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입니다. 핵심은 '기회의 평등'이에요. 한국 여성이 남성 임금의 약 70%밖에 못 받는, 미국 여성이 흑인 노예남성(1870년)보다도 50년 늦게 참정권을 얻은 이 기울어진 현실을 바꾸자는 거죠. 

어떤 이는 페미니스트를 여성 우월주의자로 보는 듯하지만,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가 남녀 2000명을 웹조사한 데 따르면 이들이 누구인지 더 선명해집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답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장애인·노인 등 다른 소수자에 더 관대했습니다. 정치에 적극 참여하며, 그러면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 믿죠(한국리서치 9월3~7일 조사, 전체기사 보기). 

"당신이 온라인에서 어떤 페미니스트를 보거나 전해 들었건, 우리 시대의 '보통 페미니스트'는 소수자를 더 포용하고, 세금을 덜 싫어하며, 참여의 가치를 안다. 간략히 말하면, 좋은 시민이다." (천관율 <얼룩소> 에디터)
  
<얼룩소>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관대하고 정치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웹조사 결과 중 일부 갈무리
 <얼룩소>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관대하고 정치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웹조사 결과 중 일부 갈무리
ⓒ 얼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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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남성에게 물었다, 왜 죽였냐고

교제살인을 다룬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에는 여성들의 안타까운 마지막이 기록돼 있습니다. 3년 간(2016~2018) 108명 여성이 제각기 다른 남성에 의해 죽었어요.

왜 죽였을까요? 각각의 살해 이유를 모아보면 씁쓸합니다(책 244~274쪽).

"말다툼을 하다가 화나서. 싸우다 격분해서. 여자가 전화를 안 받아서. 여자가 헤어지자고 해서. 나한테 쌀쌀맞게 대해서. 돈 갚으라는 말에 화나서. 여자가 내 뺨을 때려서. 내 말을 안 들어서. 여자가 집에 늦게 들어와서. 자주 외출해서. 내 사과를 안 받아줘서. 여자가 술을 자주 마셔서. 내 전 여자친구를 욕해서. '도박 그만하라'는 말에 화나서. 내 얘기에 대답하지 않아서. 여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총 108명 남성이 사귀거나 사귀었던 여자를 죽였다는 겁니다. 소송까지 안 간 사례('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통계)를 합치면 이런 죽음은 더 많을 텐데요. 이쯤 되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주민번호 2번(혹은 4번)으로 시작하는 것, 남성보다 월급을 적게 받고, 임신·출산·육아로 커리어가 끊기는 것. 밤길 집에 오는 게 두렵고, 헤어질 때 '안전이별'을 검색해야 하는 것. 합쳐서 소위 '2등 시민'으로 사는 것, 다 괜찮으니까 죽이지만 말라고요.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요.

얼마나 더 
  
이준석 대표는 '스토킹 살인'과 페미니즘이 무슨 상관이냐는데, 정말 그럴까요?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진다면 이런 죽음도 줄어들 겁니다. 적어도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나 늦은 귀가가 살해 이유가 되진 않겠지요. 미국 소도시 덜루스(Duluth) 경찰은, 스토킹·가정폭력 등 발생시 가해자 남성을 72시간 의무 구속한다고 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스토킹을 살인의 전조 증상이라 보고 사전에 강하게 차단하는 거죠.

얼마나 더 죽어야 할까요? 마포구에서 남자친구에 맞아 죽은 스물다섯살 황예진씨를 포함해, 얼마나 더 죽어야 교제살인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까요. 이런 '여성 살인(Femicide·페미사이드)'으로 몇 명이나 죽는지 알 수 있을, 여성 폭력 관련 정부의 공식 통계는 언제 만들어지게 될까요. 
  
서울 마포구 교제살인(데이트폭력) 피해자의 가족이 올린 국민청원입니다.
 서울 마포구 교제살인(데이트폭력) 피해자의 가족이 올린 국민청원입니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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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미씨, 저는 최근 꾸준히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데요. 지난주엔 아홉살 하굣길에 한 할아버지가 저를 성추행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터졌습니다. 20년도 더 된 일인데 떠올리는 건 여전히 힘겹고, 골목길 그 아이가 불쌍해서요. 그런데 지금도 비슷한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처벌받게 됐다는 것 정도일까요.

편지를 쓰고 집에 오는 길, 바람이 무척 차네요. 어디에 있건 당신은 평안하길 바랍니다. 우린 오래 잘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11월 25일은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죠. 이순자님 유고작 '실버 취준생 분투기'. 평생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산 이분은 황혼 이혼 뒤 글쓰기를 시작하셨는데, 안타깝게도 8월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해요. 노년 여성의 삶을 진솔히 쓴 이 글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2021년 11월 23일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를 응원하며, 성애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덧붙이는 글 |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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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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