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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버킷 리스트'가 유행을 탔던 적이 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을 미뤄가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을 미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은 또 얼마나 팍팍할까.

'죽기 전에'라는 단서만 붙어도 우리의 마음은 어느덧 비장해지고 간절해진다.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게 죽음이라는 말이 선소리가 아니라 진언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죽기 전에'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참 오묘하다. 본인이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죽기 직전, 꼭 듣고 싶었던 한마디
 
책 <천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책 <천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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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의 저자 고칸 메구미는 16년간 의료 현장에서 100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본 간호사이다. 저자가 말하는 주제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후회 없는 죽음. 그리고 그 시작점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자주 고민하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야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사랑해도 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간 후회 가득한 죽음만 있을 뿐이다.

죽음은 때로 삶에 용기를 준다. 이제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우리는 평소 절대 하지 못하던 행동을 한다. 꼭 그 일이 화려하고 과시적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족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저자가 간호하던 60대 환자는 간암 말기로 곧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곧 말을 할 수 없게 될 거란 걸 알았던 저자는 일부러 그의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사모님이 참 다정하시네요. 때로는 고맙다고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러나 환자는 "음, 그런 말을 뭘 벌써 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내는 애초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환자가 죽은 후 환자의 아내는 저자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그날... 간호사님의 말을 듣고, 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먼저 '고마워요'라고 했어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환자 또한 눈을 감기 직전 "고마워"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 말 한마디로 그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원망이나 미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뇌는 주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뇌가 남에게 하는 말인데도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인식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의 영향이 자기 자신에게도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은 그 말을 들었을 때처럼 평온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실제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언어의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환자는 100세가 다 되어가는 상황에 힘겹게 연명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가 이토록 삶에 매달리는 것은 아내를 먼저 보낸 두 아들의 간절한 부탁, "엄마는 오래 사셔야 해요. 꼭 100살까지 사세요"라는 말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최후의 호흡인 하악 호흡을 시작했다. 저자는 아들들에게 "지금 환자 분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하실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차남은 항상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못해 드려서 화가 났을 거라고 걱정했다.

저자는 평소 환자가 얼마나 따뜻하게 의료진을 대했는지를 떠올리며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 '나, 열심히 했지?'라고 말하고 싶으셨을 거예요. 칭찬받고 싶으셨던 걸지도 몰라요."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전혀 표정이 없던 환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저자는 환자가 운명하는 순간 '그곳에 불행은 없었다'라고 적었다. 죽음이 이토록 온화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죽음에 너무 겁먹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음을 전하는 말 한마디로도 죽음의 공포는 말끔히 지울 수 있다.

죽음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일 것인가
 

죽음에 지나친 동정을 보내는 것도 지양할 태도이다. 뉴스의 단골 소재인 고독사를 살펴보자. 대부분 불쌍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나는 본인이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나 추억이 가득한 곳에서라면 홀로 죽는 것도 전혀 고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일도 아니다. 그곳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안정감을 주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장소는 자신이 선택했을 것이고, 원래 어디서 죽든 간에 죽을 때는 오직 혼자다.
 
어떤 환자는 투석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투석이 필요한 사람이 투석을 중단하면 대개 2주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래서 방문 간호사가 매일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집을 방문했는데 그는 버럭 화를 냈다.

"매번 내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오지 좀 마세요! 혼자 지내고 싶어서 집에 왔는데 매일 찾아오면 피곤하잖아요." 그리고 사흘 뒤, 약속된 날짜에 간호사가 찾아갔더니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혼자 죽었다고 해서 그가 과연 불행에 몸부림치면서 죽었을까?

한 사람의 죽음은 개인의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죽음은 생생히 각인된다. 한 여고생은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그날 아침 말싸움을 하다 "엄마야말로 죽어버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은 그녀에게 후회로 남았다. 만약 후회가 후회로 끝났다면 그녀에게 엄마의 죽음은 부정적인 의미로 머물렀을 것이다.

그녀는 엄마를 잃은 뒤 사람들을 신중하게 대했다. '내게 남은 날이 오늘뿐이라면 지금 이 말을 해야 후회가 남지 않겠지?'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친구에게 이 말을 하고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다정함을 익혀갔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스스로 죽음의 의미를 바꾼 사례가 되겠다.

죽음은 사람을 가장 무력하게 만든다.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선택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는 명사이지만 그 앞에 '행복한', '평화로운'처럼 어떤 형용사가 붙을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죽음이 슬프고 우울한 일이라면 천 개의 죽음을 목격한 이 책의 저자는 음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그 어떤 글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긍정적이다. 죽음이 곁에 있기에 삶이 기쁘다는 지혜를 마음에 새긴 덕일까?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은이), 오시연 (옮긴이), 웅진지식하우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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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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