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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지난 11월 5일, 말레이시아산(産) 일회용 의료 고무장갑에 대해 수입정지 처분인 '위반상품억류명령(WROs, Withhold release orders)'을 내렸다. 최근 1년 2개월 동안 미국으로부터 수입정지 처분을 받은 말레이시아 고무산업 관련 기업은 세계 최대 고무장갑 제조업체인 톱 글로브를 포함한 주요 회사들이 망라돼 있다.

미국 관세청은 말레이시아산 고무장갑에 대해 위반상품억류명령을 내린 이유를 생산 과정에서 강제노동으로 의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령은 이주노동자 채용과정의 비윤리성, 채무를 빌미로 한 속박, 과도한 초과 근무, 신분증 압류, 기숙사의 적절성, 언어·신체적 또는 정신적 학대와 보호 장비 미착용 등과 같은 노동생활환경을 살핀 결과이다.

전 세계 의료용 고무장갑 시장규모는 45억 달러(5조 3541억 원)를 웃돈다. 세계 시장 6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1/3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일회용 멸균 고무장갑 수요가 30% 급증함에 따라 탑 글로브를 위시한 말레이시아 4대 고무장갑 제조업체들의 이익은 2020년 8월 기준으로 385억 링깃(약 11조 원) 증가했다.

탑 글로브는 전년 동기 4배가 넘는 분기 순이익(8400만 달러, 999억 4320만 원)을 기록하며 연초부터 탑 글로브 주가는 5배가 치솟았다. 2020년 장갑 수출로 52억 달러를 벌었던 말레이시아는 최근 연이은 자국산 고무장갑 수입금지로 고속 성장하던 산업에 먹구름이 끼었다.

미국이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이유야 겉만 보고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말레이시아산 제품 수입 금지조치 이후 태국산 중고 의료용 장갑이 수입 유통되며 논란이 될 정도로 심각한 물품 부족을 겪으면서도 금수 조치를 해제하지 않는 대목에서 강제노동이 국가 간 무역에 장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이주노동자 강제노동을 수입 금지 사유로 명시한 점은 한국에서도 잘 살펴봐야 할 사안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미 2014년 인신매매 보고서(Trafficking in Persons Report)를 통해 한국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의 징후를 보이는 노동조건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 혹은 국내 특정 기업 제품을 수입 금지 할 수 있는 명분을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이주노동자 노동력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는 제주산 농수산물이 언제든지 미국 금수 조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 국무부만 아니라 그동안 유엔사회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인권기구들은 반복적으로 사업장 변경 제한으로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과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국제노동기준 수립 및 이행 감독 등을 수행하는 유엔(UN) 산하의 노동 분야 전문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역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고용허가제 개선을 거듭 촉구해 왔다.

이런 가운데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부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다. 10일 자 경향신문의 발표로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진들은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사유와 횟수 제한 폐지를 제안했다.

연구진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 노동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노동법을 무력화하고,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고용허가제는 시민단체에 의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한국은 올해 ILO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고, 2022년 4월 발표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 ILO 사무총장에 강경화 전 외교장관이 출마한 상태다.

이런 점을 떠올리면 국내 외국인력 정책이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있는지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 변화를 검토하겠지만, 기업과 시민 인식 개선 또한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는 강제 노동시켜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주노동자 노동권도 인권이다

덧붙이는 글 | 서귀포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 문화센터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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