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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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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는 말, 서비스직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진상, 갑질 등의 용어가 아무리 뉴스에 오르내려도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오죽하면 아르바이트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일하는 동안 인류애를 상실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일까.

그럼에도 생계 때문에 그 누구도 일을 쉽게 그만둘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버틴다'는 말이 그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까.

"나는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는 작가 박주운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그는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콜센터에서 5년을 근무했다. 5년 동안 월급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오른 대신 각종 수당이 깎인 탓이다. 그는 아웃소싱 소속이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응대율을 달성하려는 대기업의 압박 속에서 아웃소싱 업체는 상담원을 콜받는 기계로 취급했다.
 
고객사에게 콜센터 운영을 위탁받은 아웃소싱업체는 절대 을이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응대율로, 상담원의 근무 환경, 복지, 애로사항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저 1인분의 몫을 하며 콜을 받는 인력이 필요할 뿐.
 
콜센터 상담원이 당하는 언어 폭력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가 상처받은 말이 유난히 가슴 아프다. "하세요", 이 세글자이다. 저자가 공연 날짜를 안내해드린 후 "전화예매 해드릴까요?"라고 묻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이후 어떤 정보를 안내해드려도 그 고객은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보다 심한 말을 한 손님도 부지기수였을 텐데 왜 그 말이 저자를 화나게 했을까. 그 말에는 상담원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그는 나이 서른이 넘는 나이에도 대소변을 볼 때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자리를 비운 시간이 10분 이상 지체되면 팀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끄러운 변명을 낱낱이 늘어놓으며 그는 모멸감을 피할 수 없었다.

괜히 방광염과 치질에 시달리는 상담원이 많은 게 아니었다. 그가 들려준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누군가 콜센터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용변을 보고, 벽에도 마구 묻혀놓은 것이다.
 
동료들과 어떤 놈이 벽에 똥칠을 해놨다고 한참을 웃었는데,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상담원이 폭발해 저지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화장실도 자유롭게 가지 못하는 억압을 표현한 것일지도. 웃을 일이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융통성 없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일할 때도 원칙에 따라 응대했다. 한 번은 예매자 정보 확인을 위해 고객이 알려준 정보대로 전산을 조회했는데 생년월일 중 한 자리가 달랐다. 저자는 개인정보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고객에게 다른 정보를 계속 물었다. 하지만 고객은 성질을 부리며 그냥 안내해 달라고 했고 고객과의 기싸움이 10분 넘게 이어졌다.

결국 고객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 다른 상담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 상담원은 "예매하실 때 생년월일 한 자리를 잘못 입력하셨나 보네요~"라며 융통성을 발휘해 고객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저자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끝내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러자 고객이 하는 말은 이랬다. "내가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융통성이 없으면 사회생활하기 힘들어요". 저자는 차라리 욕을 하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분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 사연은 비단 상담원만 겪는 일이 아니라서 더욱 공감이 갔다. 나는 진상 손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이 사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말단 직원이 원칙에 따라 응대해도 사태를 키우면 높은 직급의 직원이 오고, 그 직원은 어떻게든 손님의 비위를 맞춰준다.

거기서 끝이면 그만인데 원칙을 고집한 사람은 융통성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그리고 사과를 강요받는다. 그게 직원의 잘못인가? 원칙대로 한 것이 잘못이라면 원칙을 만든 사람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럴 거면 차라리 말단 직원에게도 "고객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세요"라고 교육해주면 좋을 것을.

친절한 상담원 씨

콜센터 직원들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지나치게 친절한 걸까. 가끔은 과도하게 친절하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저자 또한 '왜 과장되고 어색한 억양으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콜센터에서 직접 일해보고 나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매달 두 번 씩 상담원의 통화 이력을 무작위로 골라 청취하고 점수를 매기는 상담품질 평가가 이루어진다. 말하는 속도와 발음이 정확한지,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중간에 끼어들지 않는지를 체크한다. 고객의 불만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는지, 고객의 말에 적절히 호응하고 맞장구를 치는지도 평가 항목이다.
 
저자는 이러한 평가 방식을 '실질적인 도움으로 고객을 만족시켰는지보다 피상적인 평가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적극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 상담원보다 기계적으로 응대하며 평가 기준만 잘 지킨 상담원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서비스를 향상시키려고 마련한 평가 기준이란 것이 오히려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는 셈이다. 상담 내용보다 상담 형식에 방점을 둔 평가 방식은 지나치게 겉치레에 치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부과되는 마당에, 그 기준이 합리적이든 말든 상담원으로서는 최대한 기준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다. 상담원도 듣는 고객도 불편한 '친절한 말투', 언젠쯤 '자연스러운 말투'로 바뀔 수 있을까?

반대로 콜센터 직원이 퉁명스럽게 응대해서 기분이 나쁜 고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사정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콜을 많이 받으라고 닦달하는데 전화 예매 같은 경우 기본으로 10분이 넘게 걸린다.

예매 수수료가 높다고 해서 상담원에게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전화예매를 많이 했다고 해서 보상도 없다. 이러다보니 통화가 길어줄수록 상담원의 태도가 퉁명스러워진다. 이를 두고 상담원의 인성 운운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2018년 10월 '감정 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저자는 어느 정도 체념한 듯 '상담원의 아픔이 사라지는 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밝혔다.

저자의 글이 인권위원회 블로그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위로와 공감을 바랐지만 댓글의 내용을 기대를 빗겨갔다. 자기는 더 힘든 상황에서 일한다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결코 '콜센터 상담원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서로 알지 못하는 문제를 하나씩 고쳐보자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고 했다. 힘들면 관두라는 조언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어떤 직종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없애는 게 자연스러운 해결법 아닌가. 왜 종사자가 그 직종을 떠나야 하는 걸까.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은이), 애플북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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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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