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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금구천을 거닐다 보면 흔하게 목격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금구천변 산책로 한켠에서 윷놀이, 화투를 치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이다.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울 때를 제외하고 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비슷한 풍경은 또 있다. 면 지역 마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다. TV를 틀어놓은 방에서 화투를 치거나, 앉거나 누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 풍경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올해 1월, 옥천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 고령인구인 셈.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옥천군은 '초초'고령화사회라 봐도 무방한 것이다.

동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노인들과 이런 수치가 겹쳐지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옥천에 사는 노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이토록 많은 노인인구에게, 과연 지역은 살기 좋고 행복한 공간일까.

여가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 노인층
 
충북 옥천군 안내면 북대1리 위복옥씨의 일과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농막 이기열씨의 일과 ⓒ 월간 옥이네
 
옥천군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은 2007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인구 5만4608명 중 65세 이상은 1만972명. 고령 인구 비율 30%를 넘어선 현재(9월 기준)는 5만215명 중 1만5529명으로, 총인구는 줄고 노인인구는 증가했다.

14년 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음에도 지역 노인들이 건강하게 여가를 보내거나 사회활동을 할만한 기반은 여전히 많지 않다. 옥천읍에 복지관이 있지만 노인 전용 복지관이 아닌 데다 "복지관 이용 노인 70~80%가 읍에 거주한다"는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사회참여팀 이한경 팀장의 말처럼 읍면 전역을 포괄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나마 2006년 복지관 분관이 만들어진 청산면을 제외하면 다른 면 지역은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정도만이 노인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개인 교통수단이 없고 건강상 이유로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노인들에게 마을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경로당 등은 사실상 거의 유일한 여가 시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코로나19 이후 대부분 폐쇄 조치 되면서 지역 노인, 특히 면 지역은 '여가 사각지대'에 처한 상황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읍면 노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여가문화 시설은 경로당이다. 응답자의 47.8%가 여가를 경로당에서 보낸다고 답했는데, 이는 도시 응답자(21.8%)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노인복지관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6.8%로 도시 응답자(10.4%)보다 낮았다. 노인을 위한 기본적인 사회·문화활동 제공 기관이 부족한 만큼 경로당, 마을회관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문화활동 제공 기관 부족은 자연스레 여가생활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진다. '2020 옥천군사회조사보고서'에서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가생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 65세 이상 응답자의 상당수가 '불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65세 이상 응답자 503명 가운데 37.2%(187명)가 '(매우·약간)불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매우·약간)만족'한다는 응답자는 16.6%(83명)에 불과했다.

여가생활 만족도는 지역 노인의 삶의 행복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건강 또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경제 활동이나 특별한 사회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가 활동이 노인들에게 더없이 중요하다. 건강과 곧바로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가생활 받쳐줄 경제활동 지원도 필요
 
충북 옥천군 초고령사회 진입 후 고령 인구 추이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읍면별 고령 인구 비율(%) ⓒ 월간 옥이네
 
지난해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은 코로나19로 1년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을 휴관해야 했다. 복지관 이한경 팀장은 "코로나로 여러 차례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며 문을 닫은 기간이 더 길었는데, 휴관 이후 어르신들을 다시 만날 때마다 눈에 띄게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로당도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9988행복지키미로 일하는 추홍일(71, 군북면 용목리)씨도 "마을에 코로나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지시거나 돌아가신 분이 많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은 사회활동 유무에 따라 건강이 크게 나빠질 수 있어 지속적인 활동과 이를 위한 지원이 필요한 것.
 
특히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 수도 증가하는 만큼 치매 예방을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중요해진다(2020년 기준 옥천군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 환자는 12.11%). 게다가 옥천의 경우 70대 이상 1인 가구 비중이 42.4%(2020년 기준)로 매우 높다. 60대까지 포함하면 64%가 1인 가구에 해당한다. "마을 사람들 거의 다 혼자 살아요. 다 독거노인이야"라는 면 지역 이장의 말도 익숙하다.

이런 가운데 홀몸노인 5명 중 1명이 우울증 고위험군에 달한다는 사실(2020 옥천군 독거노인 정신건강상태 설문조사)은, 읍면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문화활동의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여가 생활을 받쳐줄 경제 활동도 필수. 지역 노인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경제적 문제'를 꼽은 만큼(2020 옥천군 사회조사보고서) 건강한 사회활동을 위한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오늘날 지역 노인에게 닥친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시골 어르신들도 '테레비'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 http://omn.kr/1w4es
 
[참고자료]
옥천군, <2020 옥천군 사회조사 보고서>(2021년)
보건복지부,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2020년)
<옥천신문> 1107호, '면 노인, 경로당밖에 갈 데가 없다'(2011년)
김수지, '노인차별 경험이 노인의 여가 시간 사용과 고독감에 미치는 영향', <보건사회연구> 40(4), 211-244p(2020년)
 
월간옥이네 통권 53호 (2021년 11월호)
글 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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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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